한두 살 젊어진다…이탈리아의 건강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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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음식주간…올해 주제는 佛 남부 풀리아주의 지중해 식단
이탈리아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가 있다. 흔히 ‘3C’라고 불리는데 축구(Calcio), 수다(Chiachiere), 그리고 음식(Cucina)이다.

기원전 4세기에 <계절에 맞는 최상의 재료>라는 요리책이 나올 정도로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음식 문화는 자부심 그 자체이자 몸속 깊이 새겨진 유전자나 다름없다. 장화 모양의 위아래로 긴 지형, 지중해와 아드리아해 등 삼면에 바다를 끼고 있고 알프스와 돌로미티산맥이 둘러싸고 있으니 그야말로 산해진미가 도시마다 넘쳐흐른다. 음식으로 잘못 논쟁을 벌이면 정치인이 낙마하고, 교황마저 비난의 화살을 받는 나라가 바로 이탈리아다.19세기 미국으로 건너간 이탈리아 이민자들 덕에(?) 피자와 파스타가 세계인의 음식이 됐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말한다. 그건 진짜 이탈리아 음식이 아니라고. 그 지역에서 나는 가장 신선한 제철 재료로, 가공한 조미료를 최소화해 만드는 건강한 자연식인 정통 이탈리아 음식은 따로 있다. 이탈리아문화원과 이탈리아 요리학회는 전 세계를 돌며 ‘이탈리아 음식 주간’을 매년 주최하는데, 올해는 ‘풀리아의 음식 문화’가 주인공이다.

우리나라에선 다소 생소한 동남부 풀리아(Puglia)에서 ‘건강한 이탈리안 정통 음식’을 알리기 위해 유명 셰프와 풀리아 부주지사 등이 최근 한국을 찾았다. 이탈리아 최대 올리브 생산지이자 부라타 치즈의 원산지로, 천연 재료를 고집하는 요리법으로 ‘지중해 식단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잦은 외식으로 지친 요즘 세대에게 제철 식재료로 건강하게 만드는 요리하는 기쁨을 전하고 싶었다는 이들과 한국에서 활동 중인 스타 셰프 파브리치오 페라리가 함께했다.

"더" "그만" 마늘 놓고 설전…사이좋던 두 셰프, 요리 앞에선 격렬했다
유명 셰프 바워만의 쿠킹쇼

伊 남부 풀리아 지역음식 선보여
'흑백요리사' 페라리가 보조 맡아
금기시됐던 조합 '콩·해산물·치즈'
두 셰프 손에서 '작품'으로 재탄생

토마토소스 피자 위에 파인애플을 올린 미국식 하와이안 피자를 보며 머리를 쥐어뜯는 남자. 이 이탈리아 셰프는 외친다. “산미 있는 토마토에 산미 있는 파인애플을 더하면 맛의 조화가 파괴되잖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에서 자주 보이는 밈(meme)이다. 이탈리아인의 음식 철학에 관한 영상은 먹거리가 넘쳐나는 요즘도 끝없이 만들어지고, 퍼져 나간다.지난 20일 서울 신사동 하이스트리트이탈리아 건물 안에서도 식재료와 맛 품평이 끊이지 않았다. 제9회 세계 이탈리아 음식 주간 행사로 마련된 ‘크리스티나 바워만 셰프의 쿠킹쇼’에서다. 이 주간에는 전 세계 이탈리아 대사관이 이탈리아 요리를 기념하고 알리는 행사를 동시에 연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셰프인 바워만의 첫 방한 쿠킹쇼에는 파브리치오 페라리 셰프가 보조 셰프 겸 사회자로 함께했다. 페라리는 넷플릭스의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출연해 이름을 알린 지한파 셰프다.

바워만 셰프는 이탈리아에서 음식으로 가장 유명한 풀리아주 출신.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반도에서 힐(heel)과 같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바워만 셰프가 이날 선보인 요리는 홍합과 칸넬리니 빈을 곁들인 카바텔리 파스타다. 카바텔리 파스타는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손수제비 모양으로, 손가락 등으로 눌러 빚은 홈이 소스를 잘 잡아준다. 바워만 셰프는 “오늘 이 레시피를 고른 이유는 콩과 해산물, 치즈를 함께 사용해 풀리아의 지역색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재료 조합은 원래 이탈리아에서 금기시됐기 때문에 풀리아 외 지역에서 이렇게 요리했다면 순교자처럼 여겨졌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이런 특색 있는 조합도 미식학에서 인정받고 있지요.”

콩을 사용하는 이유에 관한 설명도 이어졌다. 바워만 셰프는 “이탈리아는 전통 요리를 보존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이탈리아 젊은 세대는 고기 위주의 외식을 많이 하는 게 안타까웠다”며 “그래서 풀리아의 지중해식 요리를 만들 때는 고기보다 생선과 콩 같은 채소를 재료로 선택한다”고 말했다.

바워만 셰프는 이날 파스타에 소금을 넣지 않았다. 그 대신 홍합 삶은 물로 간을 맞췄다. 그는 “나는 대부분의 요리에 소금을 쓰지 않는다. 소금을 넣으면 그냥 짜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워만 셰프가 홍합 즙을 파스타에 더 많이 부으려 하자 페라리 셰프가 극구 말리기도 했다. 한국인은 짠맛에 민감하다는 게 이유였다. 바워만 셰프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시아 사람은 이탈리아 요리를 짜다고 생각하는데, 된장 등 장의 짠맛과 다른 것 같다”며 “이탈리아 사람은 간장의 염도를 견디기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이날 요리에 마늘과 페페론치노를 사용할 때 두 셰프의 토론은 극에 달했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식문화를 비교하면서다. 바워만 셰프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요리에 마늘을 많이 쓴다고 알고들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며 “이탈리아 마늘은 향이 강해 조금만 넣어도 풍미를 더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 마늘은 이탈리아 마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며 “이탈리아 마늘 한 쪽은 미국 마늘 다섯 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페라리 셰프는 “한국 사람들은 마늘을 좋아한다”며 갑자기 마늘과 올리브오일이 담긴 냄비에 마늘을 더 투하했다. 놀라서 그를 쳐다보는 바워만 셰프에게 황급히 “한국 마늘도 (이탈리아 마늘에 비하면) 엄청 부드러운 편이어서 열 쪽을 더 넣어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매운 걸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며 페페론치노를 소량만 썰어 넣은 바워만 셰프에게 “한국 사람은 매운맛 엄청 좋아한다”며 “더 넣어 보자”고 설득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요리에 진심인 이탈리아, 그리고 먹방과 맛집 투어에 진심인 한국 식문화 전문가인 두 사람은 쿠킹쇼 행사 이후에도 밤을 새워가며 음식 이야기를 할 것만 같았다.

"K푸드 중 김치전 가장 좋아해…김장하는 법도 배웠죠"
佛 여성 셰프 중 첫 미쉐린 원스타…크리스티나 바워만 인터뷰

“요리할 때 장갑 끼는 것을 싫어합니다. 스무 번씩 손을 닦아가며 요리할지라도 맨손 요리를 선호하죠.”

지난 20일 서울 신사동 하이스트리트이탈리아에서 만난 크리스티나 바워만 셰프(58)는 강렬한 인상만큼이나 뚜렷한 요리 철학을 드러냈다. 이탈리아 풀리아주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바워만 셰프는 채식주의자가 아니지만 채식을 즐긴다. 그는 “어려서부터 입이 짧아 부모님이 고기반찬을 주면 겨우 씹다가 중간에 뱉었다”고 말했다. 고기보다 생선과 채소가 더 많이 사용되는 풀리아주 지중해식 요리가 입맛에 딱 맞았던 이유다.

그는 한국 음식 중에서도 김치전과 녹두전처럼 채소를 기본으로 한 음식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김치가 특유의 향 때문에 해외에서 많이 사랑받지 못하던 시절에도 바워만 셰프는 김치 담그는 법을 직접 배울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미국에서 처음 김치를 사서 뚜껑을 열었을 때는 이상한 향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 먹다 보니 그 맛을 즐기게 됐어요. 이탈리아에 돌아와서도 김치 제조법과 숙성법을 배워 각종 요리 행사에서 소개했는데, 스테이크 소스를 만들 때 김치 국물을 활용하는 등 요리에도 여러 차례 접목했죠.”

바워만 셰프는 외국어와 법학을 전공하고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던 중 요리의 매력에 빠져 프랑스 파리의 르꼬르동블루,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컬리너리아카데미에서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뒤에는 로마의 일콘비비오트로이아니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고 2006년부터 지금까지 글라스호스타리아에서 헤드 셰프로 근무 중이다.

2010년 이탈리아에서 여성 셰프로서는 유일하게 미쉐린 원스타를 받은 뒤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여성 셰프 육성에도 힘쓴다.

지난해엔 포브스가 선정한 ‘이탈리아 발전에 기여한 성공한 여성 경영자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수제비와 홍합의 컬래버, 메주처럼 숙성시킨 치즈…한국을 닮은 원조 지중해 식단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요리

귀 모양의 파스타면 '오레키에테'
쏙 들어간 부분이 소스 잘 흡수해

음식 간할땐 소금 대신 홍합 활용
표주박 닮은 치즈 '카치오카발로'
끈으로 매달아 공기 중에 발효시켜

지중해성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 덕
수백년 된 올리브나무6000만그루
유네스코는 2010년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모로코 등의 지중해 식단을 무형 문화유산으로 인정했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 올리브유, 각종 해산물과 견과류로 구성된 ‘건강함’이 문화적으로도, 영양학적으로도 가치 있다고 인정받았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풀리아는 ‘지중해 식단의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요리라는 뜻의 ‘쿠치나 포베라’에 뿌리를 둔 풀리아 전통 요리는 제철 현지 식재료를 전통 레시피에 따라 요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풀리아로 미식 여행을 떠난다면 가족이 운영하는 소박한 ‘트라토리아’에서 만든 파스타부터 미쉐린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에서 맛보는 코스 요리까지 다양한 식당을 경험할 수 있다.

(1) 귀 모양의 파스타 오레키에테

풀리아식 홍합밥 파타테 에 코체(위부터), 풀리아주에서 수확한 올리브, 벽에 매달아 숙성하는 카치오카발로 치즈. Getty Images Bank
길쭉한 스파게티 면은 잊어라. 이탈리아 파스타 종류는 150가지가 넘는다. “나 오늘 파스타 만들어 먹을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무슨 파스타?”라고 반문할 것이다. 풀리아주 대표 파스타는 오레키에테. ‘작은 귀’라는 뜻의 오레키에테는 말 그대로 귀를 닮았다. 듀럼 밀가루와 물 등 최소한의 재료만 사용해 손으로 직접 말아 만든다.

조리 과정에서 소스가 오레키에테의 오목한 부분에 들어가면 풍미를 한껏 더해준다. 얇게 썬 송아지 고기를 롤 형태로 말아 라구 소스에서 천천히 끓여 만든 라구 디 브라치올레를 곁들여 먹기도 하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치메 디 라파(무청 토핑)와의 조합이다.

(2) 해상도시에서 맛보는 홍합

바다를 접하고 있는 풀리아의 대표적인 해산물은 홍합(코체·cozze)이다. 타란토 지역에서는 홍합과 달콤한 토마토가 들어간 미니 파스타 튜브를 맛있게 섞은 투베티니 콘 레 코체가 유명하다. 풀리아 주도 바리에서는 홍합을 쌀과 감자와 함께 오븐에 구운 리소 파타테 에 코체를 즐겨 먹는다. 홍합을 끓인 물로 파스타의 간을 맞추는 등 홍합은 천연 소금의 역할도 한다.

(3) 벽에 매달린 치즈 ‘카치오카발로’

풀리아에는 넓고 비옥한 평야와 고원 지대가 모두 있어 우유, 양젖, 염소젖을 기반으로 다양한 치즈를 만든다. 그중에서도 ‘카치오카발로’는 독특한 숙성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소젖을 주재료로 만드는 이 치즈는 형성된 치즈를 끈으로 묶은 뒤 공기 중에 매달아 숙성시켜 만든다. 표주박과 비슷한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포돌리코 소의 젖으로 만든 카치오카발로 치즈는 ㎏당 수십만원에 달할 정도로 비싸다. 포돌리코 소가 세계에 2만5000여 마리밖에 없는 희귀 품종인 데다 1년에 두 달만 젖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부라타 치즈도 풀리아의 대표 치즈 중 하나. 부라타 치즈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 풀리아주의 안드리아라는 도시다. 부라타 치즈 겉부분의 모차렐라는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고 속은 크림처럼 고소해 샐러드, 피자와 잘 어울린다.

(4) 지중해 식단의 ‘꽃’ 올리브 오일

세계 주요 올리브오일 생산국인 이탈리아. 풀리아는 이탈리아 최대 올리브 생산지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올리브 나무를 키운 곳으로 유명하다. 지중해성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 덕에 수백 년이 된 올리브나무 6000만 그루 이상이 자라고 있다. 웬만한 거리의 가로수는 올리브나무. 3000살이 넘은 올리브나무를 보러 많은 관광객이 풀리아를 찾는다.

풀리아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올리브를 수확하고 냉압착 방식으로 오일을 추출한다. 이렇게 생산된 올리브 오일은 지중해 음식에서 여러 재료가 잘 어우러지게 도와준다.

풀리아 부주지사의 원픽, 현지인만 아는 명소는…트레미티 섬

“이탈리아 풀리아는 어디를 가도 ‘안 예쁜 곳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대부분의 장소가 관광지로 알려져 비밀스러운 곳이 거의 없는데요….”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하이스트리트이탈리아 건물에서 만난 라파엘레 피에몬테세 풀리아 부주지사(사진)는 ‘현지인만 아는 명소’를 알려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피에몬테세 부주지사에게 “한국인은 여행할 때 ‘현지인만 가는 곳’에 대한 로망이 있다”며 다시 물었다.

한참 생각하던 그는 조심스레 “그래도 하나 추천하자면 가르가노국립공원의 일부인 트레미티 섬을 소개하고 싶다”며 “아름다운 바다와 평온한 분위기를 자랑해 특히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최적의 장소”라고 했다. 이어 “트레미티 섬에 가면 풀리아 주민과 한국인 여행자만 만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풀리아주 트레미티섬. 이탈리아관광청 제공
매년 이맘때 열리는 이탈리아음식주간 행사에서 올해는 풀리아 지방 음식이 메인으로 소개됐다. 풀리아는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 등에 비하면 한국인에게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풀리아가 차지하는 위상은 다르다. 부라타 치즈, 이탈리아 스시 등이 기원한 ‘음식의 본고장’으로 인정받는 지역이다.
피에몬테세 부주지사는 가장 좋아하는 향토 음식으로 ‘오레키에테 알레 치메 디 라파’ 파스타를 꼽았다. 이 파스타는 귀 모양의 오레키에테 면에 무뿌리로 만든 소스를 얹고 칠리페퍼를 넣어 매콤하고 독특한 풍미를 자랑한다. 또 다른 요리로는 빵코토를 추천했다. 풀리아 중에서도 포지아 지역 향토 음식이다. 커다란 빵 덩어리의 속을 비우고 감자, 치커리와 같은 채소, 토마토, 올리브 오일 등을 채워 냄비에 익혀서 먹는 요리다.

피에몬테세 부주지사는 “풀리아는 음식이 맛있기로 가장 유명하지만, 경치가 아름답고 전통음악과 춤도 잘 알려져 있다”고 했다.그는 “‘노테 델라 타란타’라는 전통음악 축제가 있는데, 이는 풀리아의 전통춤인 타란텔라와 오케스트라를 결합한 공연으로 매년 8월 살렌토 지역에서 열린다”고 소개했다.

김리안/한경제/김인엽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