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미칼·호텔, 1년 만에 수장 교체…칼 빼든 신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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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부진 책임 물어 혁신 예고롯데그룹 정기 임원인사를 1주일 앞두고 ‘유동성 위기설’에 불거졌다. 대부분은 근거 없는 루머였지만, 시장이 크게 반응했다. 증시에선 롯데 계열사 주가가 급락했고, 채권 시장에선 회사채 금리가 뛰었다. 과거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롯데케미칼, 롯데면세점 등이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 실제 유동성 위기로 전이될지 모른다는 게 투자자들의 우려였다. 그룹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시장이 의구심도 커진 상황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칼을 빼들었다. 임원인사를 통해 대대적인 쇄신과 혁신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이영준, 화학 체질개선 주도할 듯
신임 CEO 12명이 1970년대생
유통·식품 '외부 3톱 체제' 유지
◆케미칼·호텔 대대적 물갈이
롯데그룹이 28일 발표한 임원 정기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적이 부진한 계열수 수장 대다수를 교체한 것이다.롯데 화학군을 이끌었던 이훈기 사장을 1년 만에 바꾼 게 대표적이다. 이 사장은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는 롯데케미칼의 체질 개선을 위해 지난해 투입됐지만, 적자를 줄이는데 실패하면서 이번 인사에서 퇴임했다. 이 사장 후임엔 롯데케미칼의 첨단소재 대표를 맡고 있는 이영준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내정했다.
이 신임 사장은 적자 원인인 기초소재 사업의 비중을 줄이고,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위주로 사업구조를 전환하는 작업을 맡게 됐다. 이 사장이 자리를 옮기면서 공석이 된 첨단소재 대표는 황민재 롯데 화학군HQ 기술전략본부장(CTO)이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해 맡았다. 롯데는 화학군 임원의 약 30%를 퇴임시켰다. 특히 60대 이상 임원의 80%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호텔롯데엔 3개의 사업부(호텔·면세점·월드) 대표를 전부 바꾸는 ‘극약 처방’을 했다. 김태홍 호텔롯데 대표가 1년여 만에 물러나고, 신임 대표는 정호석 롯데지주 사업지원실장(부사장)이 맡게 됐다. 대규모 적자로 구조조정 중인 면세점 사업 대표에는 김동하 롯데지주 HR혁신실 상무가 전무로 승진해 내정됐다. 롯데월드 대표는 권오상 신규사업본부장(전무)이 맡는다. 이밖에 롯데지주의 커뮤니케이션실장에 임성복 부사장이, 롯데이노베이트(옛 롯데정보통신) 대표엔 김경엽 전무가 선임됐다.
◆임원 줄이고 조직 슬림화
이번 인사의 또다른 특징은 기존 임원의 22%가 퇴임한 뒤 상당수 자리에 후임을 채우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롯데그룹의 임원 규모는 작년말 대비 13% 줄었다.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외부 전문가 영입 기조도 이어졌다. 롯데바이오로직스의 경우 다음달 11일 글로벌 바이오 전문가를 새 대표로 영입하기로 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작년 7월 인천 송도에 제 1공장을 착공하고 2027년 상업 생산을 계획 중이다.1970년대생이 경영 전면에 대거 등장한 것도 주목된다. 12명의 신임 CEO가 1970년대생으로 채워졌다. 이 가운데 윤원주 롯데중앙연구소 연구소장, 김승욱 롯데벤처스 대표 등은 1974년생이다.
◆유통·식품 CEO 대부분 유임
대거 물갈이된 화학 및 호텔 사업 부문과 달리 주요 유통·식품 계열사 CEO는 유임됐다. 롯데쇼핑은 김상현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부회장)를 필두로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 강성현 롯데슈퍼·마트 대표 등 ‘외부 출신 3톱 체제’를 유지한다. 지난해 롯데쇼핑이 7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하고, 베트남 하노이의 복합쇼핑몰 ‘웨스트레이크’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등 성과를 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정 대표는 새로운 복합쇼핑몰 브랜드 ‘타임빌라스’, 강 대표는 식료품 전문매장 ‘그랑그로서리’를 중심으로 각 사업부의 체질 개선 작업도 한창 추진하고 있다.식품 부문을 이끌고 있는 이영구 식품군 총괄대표(부회장)와 이창엽 롯데웰푸드 대표도 유임됐다. 롯데웰푸드는 전세계적인 K푸드 열풍을 타고 올해 사상 첫 글로벌 매출 1조원을 노리고 있다.
안재광/이선아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