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무죄 판사 전라도라더라"…위험한 사법의 정치화 [이슈+]

민주주의 위협하는 '사법의 정치화'
입맛 안 맞는 판단에 사법부 겁박
멈추긴커녕 앞장서고 부추기는 여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유력 정치인들의 존망이 사법부 판단에 의해 흔들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사법의 정치화'를 꾀하는 시도가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판단이 나왔다는 이유로 사법부를 매도하는 행위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같은 위험한 시도를 공당(公黨)이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모양새다.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두 개 혐의 1심 선고가 이뤄진 11월 15일(공직선거법 위반), 11월 25일(위증교사)은 사법부를 대하는 여야의 온도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엇갈렸던 날로 기록될 전망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한성진 부장판사)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위증교사 1심인 같은 법원 형사합의33부(김동현 부장판사)는 무죄를 선고했다.민주당은 공직선거법 1심 판결에서 의원직 상실형이라는 결과를 받아 들곤, 비난의 화살을 재판부에 쏟아냈다. "미친 정권의 미친 판결"(박찬대 원내대표), "정적 죽이기에 올인한 대통령과 이에 동조한 정치판결"(한민수 대변인), "오죽하면 서울 법대 나온 판사가 맞느냐고들 하겠나"(김민석 최고위원), "법치 무너뜨린 터무니없는 사법살인, 정치판결"(전현희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에게서만 나온 발언들이 이렇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위증교사 혐의 사건 1심 선고 직후 법원을 나서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민주당 김민석 수석최고위원, 이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 / 사진=최혁 기자
이랬던 민주당의 태도가 위증교사 1심 판결 이후 180도 돌변했다. "진실과 정의의 승리"(박찬대 원내대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었다. 사법 정의가 민주주의를 지켰다"(전현희 최고위원), "검찰 독재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용기 있는 판결"(김용민 최고위원), "재판부의 현명하고 용기 있는 판결에 경의를 표한다"(이건태 법률대변인) 등 사법부에 경의를 표한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국민의힘도 민주당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한동훈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무죄 판결에 "사법부를 존중한다"며 '아쉽다'는 정도로 민주당과 차별화를 꾀하려는 듯했으나, 일부 법조계 출신 인사가 사법부 비난을 주도하면서 사법부 존중 기조가 흐려졌다. 판사 출신인 김기현 의원은 "'거짓말은 했는데 허위 사실 공표는 아니다'라는 해괴망측한 궤변 판결을 연상시킨다"며 "마치 '권순일 시즌2'를 보는 느낌"이라고 했다.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이런 보수 진영을 향해 "자기 생각과 다른 판결을 하면 판사를 실명으로 정치 판사라고 낙인찍는 짓들을 함부로 하며 보수라고 자처한다. 보수는 법치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철학 아니냐"며 "좌파야 이런 제도를 부르주아의 억압의 제도로 보고, 인민재판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보수를 자처하며 하는 짓이 한숨만 나온다"고 지적했다.
2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위증교사 혐의 1심을 앞두고 양당 지지층이 집회를 연 모습. / 사진=최혁 기자
사법부를 대하는 정치권의 태도는 진영 논리로 점철된 각 진영 강성 지지층들에게 고스란히 투영됐다. '사법부 불신'을 부추긴 셈이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모인 네이버 카페 '재명이네 마을'에서는 유죄를 선고한 한성진 부장판사를 향해 "반드시 탄핵해야 할 판레기(판사 멸칭)", "정치 판사X" 등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 중에서는 무죄 선고 직후 법원 앞에서 김동현 부장판사를 향해 "고향이 전라도라 무죄"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가 있었다.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서도 원색적인 욕설이 쏟아졌다.

이종석 전 헌법재판소장은 지난달 17일 6년간의 임기를 마치며 가진 퇴임식에서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를 남겼다. 이 소장은 "정치적 성격의 분쟁이 사법부에 많이 제기되는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나타나면 뒤이어 사법의 정치화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며 "사법의 정치화를 경계하고 재판의 독립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법조계 출신의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모두 문제지만, 특히 사법의 정치화를 경계해야 한다"며 "아무리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할지라도, 법관의 양심에 따른 판단에 영향을 끼치려는 정치적 시도는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재판 결과에 따라서 양당이 일희일비하고, 재판 결과에 따른 반사이익을 정치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하는 게 사실 정치적 무능"이라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