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계 미술계는 불황 속에서도 '이 작가들'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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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한빛의 아메리칸 아트 살롱지난 11월 20일 세계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가 탄생했지요? 바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입니다. 소더비 뉴욕은 약 10분간의 치열한 입찰 경쟁 끝에 620만 달러(수수료 포함)에 낙찰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승리를 거머쥔 사람은 저스틴 선(34)으로, 중국계 암호화폐 트론의 창립자입니다. 저스틴 선은 “(카텔란의 작품은) 예술, 밈, 가상화폐 커뮤니티의 세계를 연결하는 문화적 현상을 대표한다. 이 바나나를 먹고 예술사와 대중문화에서 이 작품이 차지하는 위치를 기릴 것"이라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11월 글로벌 미술품 경매시장 침체 뚜렷
"이젠 블루칩도 애매...다이어몬드칩 주목해야"
최근 주요 미술관,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 재조명
▶▶[관련 칼럼]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 바닥 뚫은 글로벌 경매시장 구원투수 될까핫 한 바나나 덕분에 시선이 집중됐지만, 몇 개 작품을 제외하고 11월 뉴욕 경매는 전반적인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 등 3대 경매사의 11월 미술품 판매액은 13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예상치에 부합하는 숫자였지만 지난해 11월보다는 40%, 정점을 구가했던 2022년보다는 60% 감소한 수치입니다.
신문은 원인에 대해 공급과 수요 위축을 꼽았습니다. “경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불확실한 선거 시즌이라 고가의 그림을 팔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팬데믹으로 인한 판매 과열에 더 이상 구매 동기가 없었다”. 그럼에도 팔릴 그림은 팔렸습니다. 모네의 수련이 시리즈 최고가를 달성했고, 초현실주의 작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도 작가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시장이 어려울수록 블루칩?‘시장이 어려울수록 블루칩에 투자하라’는 말이 있죠. 변동성이 크더라도 수익을 얻는 방법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안정적인 자산에 투자하라는 뜻입니다. 수익률이 높지 않더라도 말이죠. 현재 미술시장에서 수익을 내려면 이보다 조금 더 보수적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블루칩도 부족하고 다이아몬드칩 정도 되어야겠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폭발적 추세로 2차시장에서 몸값을 올리던 젊은 작가들(울트라 컨템포러리/레드칩)의 인기는 착 가라앉았습니다. 울트라 컨템포러리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소개하던 소더비의 ‘더 나우’(The Now) 경매는 2022년 5월 23개 작품을 소개하고 총 7,290만 달러의 낙찰액을 기록했는데, 이번 11월에는 10개 작품 1,650만 달러에 그쳤습니다. 그중 40%가 카텔란의 ‘코미디언’이었으니, 시장 상황이 불과 2년 사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는 증거겠죠.일례로 대표적 레드칩 작가로 꼽히는 런던 베이스의 자데 파도주티미(31)의 추상화는 이번 경매에서 78만 달러(수수료 포함)에 낙찰됐습니다. 앞서 이 작가의 사이즈가 같은 다른 작품이 200만 달러에 낙찰되며 작가 최고가를 쓴 것이 지난 3월의 일입니다. 전속갤러리인 하우저앤워스에서 그의 작품이 약 52만 5,000달러에 거래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경매는 프라이머리 가격에 약간의 프리미엄이 붙은 정도입니다. 전도유망한 젊은 여성 추상 작가로 꼽히는 파도주티미의 작업은 2차 시장에서도 인기가 있지만,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라진 작가들의 작업도 많습니다. 매물이 사라지고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것이죠.따라서 모네와 르네 마그리트의 경매 결과는 현 시장의 주소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지난 11월 18일 클로드 모네의 대표작 수련(Nymphéas,1914-1917)은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6,550만 달러에 낙찰됐습니다. 17분간의 경쟁 끝에 소더비 아시아를 통해 입찰한 컬렉터가 낙찰받았습니다. 모네는 인상파 대표 화가로 꼽힙니다. 사실 ‘인상주의’(Impressionism)라는 단어가 모네의 작업에서 따왔습니다. 1874년 파리에서 열린 무명 작가전(Société Anonyme exhibition)에 출품한 모네의 ‘인상, 일출’(Impression, Soleil levant)에서 유래한 것이죠. 느슨한 붓질과 빛을 머금은 대기를 형태 없이 색조로만 표현했습니다.물론 당시엔 혹평을 받았습니다. 평론가 루이 르루아는 ‘벽지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라고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나 당시의 악평에도 불구하고 인상주의의 등장은 미술사의 가장 혁명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힙니다. 폴 세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가와 같은 작가들이 수백 년을 지속해 온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스타일에 반기를 들고 작가들이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한 작업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니까요.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리스티 뉴욕은 지난 11월 19일 이 작품을 1억 2,100만 달러에 판매했습니다. 해당 작품은 1954년 유화로,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던 미카 에르테군(Mica Ertegun)의 컬렉션이었습니다. 빛의 제국은 현재 총 27점이 있는 데 그중 17점은 유화, 10점은 과슈입니다.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 수를 고려하면 시중에서 거래될 수 있는 작품은 10점 이하입니다. 초현실주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데다 이 같은 희귀성까지 더해져 작가 경매기록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이전 최고 기록은 2022년 소더비 런던에서 기록한 7,900만 달러였습니다.이처럼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작품은 블루칩이라는 표현도 부족합니다. 역사가 통째로 부정당하지 않는 이상, 이 같은 다이아몬드칩들의 가치는 우상향 곡선을 그립니다. 지난 9월 ‘2024년 봄 경매 시즌은 얼마나 나빴을까? 재정적으로 최악의 상황’이라는 긴 제목의 리포트를 발표한 JP Mei & MA Moses Art Market Consultancy는 모네를 안전자산으로 꼽았습니다. 1970년 이후 경매에서 반복 거래된 작품의 판매가를 비교한 결과 평균 수익률 7%를 기록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늘 안정적으로 가격이 올라가는 작가를 찾는다면 그것은 모네”라는 것이 모세스의 설명입니다.
다이아몬드칩은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어떤 작가가 다이아몬드칩인 걸까요? 앞에서도 잠깐 설명했지만, 미술사적 의미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미술사를 공부해야만 미술시장을 알 수 있을까요? 물론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술사를 알면 도움이 됩니다. 그보다 빨리 습득하고 싶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 주요 비엔날레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다이아몬드칩’도 만들어집니다. 브랜드가 오랜 기간 헤리티지를 구축해 명품이 되는 것처럼, 미술사적 의미도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걸려 구축됩니다. 이 과정에서 (시장과 상관없어 보이는) 미술관, 비엔날레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유명한 미술관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작가, 비엔날레에서 자주 선보이는 작가에 대해 다양한 평론, 미학 이론이 쌓이고 이에 따라 작가에 대한 평가도 달라집니다. 시장의 평가는 오히려 후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작가를 대변하는 갤러리 혹은 갤러리스트는 판매뿐만 아니라 미술관, 평론가, 큐레이터, 컬렉터까지 두루 관리를 하게 마련입니다. 일종의 선순환인 셈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상주의는 불멸의 주제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창발’의 시점이라는 것이 많은 이들을 끌어들이는 요소가 아닐지 생각합니다. 인상주의 컬렉션이 없는 미술관이나 국가에서마저도 작품을 대여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니까요. 때마침 워싱턴 D.C.의 내셔널갤러리에서는 ‘파리 1874: 인상주의의 순간’(Paris 1874: The Impressionist Moment) 전을 내년 1월 19일까지 진행합니다. 인상주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그 당시의 상황을 헤아려보는 전시입니다.
앞서 설명한 ‘인상주의’라는 단어가 유래하게 된 모네의 ‘인상, 일출’도 전시작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시 파리 미술계를 주도했던 살롱전 그림과 이에 대항하는 무명 작가전 그림을 나란히 보여주며 사회의 급격한 변화가 예술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살펴보도록 구성한 전시입니다. 전시작 중 상당수를 파리에서 빌려왔고, 내셔널갤러리 소장품까지 더해져 150년 전의 생생한 현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최근 미술관이 관심을 두기 시작한 작가군은 누구일까요? 미국계 흑인 작가에 대한 관심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다 살짝 잦아진 요즘, 그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바로 남미 출신 작가들입니다. 글로벌 미술시장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확장하자, 컬렉터들은 기존의 서양미술사와 함께 다양한 형태로 성장했고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와 라틴 디아스포라 작가들이 조명받기 시작한 이유는 이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2023년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 미술관에서는 콜롬비아 출신의 도리스 살세이도(Doris Salcedo)의 개인전을 열었고,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큐레이터는 브라질 출신의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라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워싱턴 D.C.의 허쉬혼미술관에서도 쌍둥이 브라질 작가인 오스제미오스(OSGEMEOS)의 개인전을 미술관 설립 50주년 기념전으로 열고 있습니다.시장도 반응하고 있습니다. FT의 보도(Your walls need some Latin American art)에 따르면, 소더비는 근현대 남미 작가 작품 판매가 코로나19 이전보다 50% 이상 급증, 2020년~2023년 사이 매출이 2억 5천만 달러를 초과했습니다. 시장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다고 합니다. 그 생명체가 움직이는 방향은 예측하기 쉽지 않지만, 힌트는 늘 있습니다. 가장 고루 해 보이는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미술사에 말입니다.
이한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