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딱 보면 안다'는 관심 화법

여의도를 주무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오늘은 ‘사이다 화법’ 덕분이다. 경기지사 시절 국회에서 ‘조직폭력배 연루설’을 추궁당하자 “이래서 의원 면책특권을 없애야 한다”고 당당히 역공했다. 지지자들은 열광했지만 ‘말만 사이다’임은 진즉에 드러났다. ‘면책특권 제한하자’는 국민의힘의 간단없는 요구에 묵묵부답이다.

끝없는 모 여배우와의 스캔들도 ‘그럼 제가 다시 바지를 내릴까요’라는 직설화법으로 돌파했다. ‘중요 부위에 점이 없음을 병원에서 입증받았음’을 강조한 것이다. 논란은 수그러들었지만 민망함은 국민 몫이다.그는 “대중이 내 언어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자평한다. 그런데 거대 야당 대표가 된 뒤에는 화법이 꽤나 달라졌다. 사이다 발언과 반대되는 동문서답을 애용한다. “총선기획단을 친명계로 채웠다”다는 지적에 “정부가 정책 집행 시 더 진지해져야 한다”고 엉뚱하게 답하는 식이다. 공격적인 되치기도 잦다. 돈봉투 의원 탈당 문제를 묻자 “(물의를 빚은 국민의힘) 김현아 의원은 어떻게 돼가나요”라고 반문했다.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는 뒤집기 화법은 큰 실소를 자아냈다.

엊그제 거래소를 방문해서는 ‘관심 화법’을 선보였다. 자신의 휴대폰에 삼부토건 주가 차트를 띄우고는 ‘딱 보니 주가조작’이라고 했다. “딱 보니 100만”이라며 조국 옹호 집회를 뻥튀기하던 모 방송사 보도국장의 어이없는 언행이 연상된다. 관심법 도사도 아닐진대 그래프를 보고 주가조작을 단언할 수는 없다. 김건희 여사의 삼부토건 주가조작설을 확산하고 싶었겠지만, 당국 조사와 투자자의 재산에 직접 영향을 끼칠 부적절한 발언이다.

관심 화법은 일방소통의 전형이다. 불통으로 비판받는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 “딱 보면 견적 나온다”며 수사 중인 이재명 대표를 범죄자 취급했다. 이런 화법과 사고가 극단적 대치 정국을 부른 요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자기 확신을 강요하기보다 설명하고 설득하는 태도가 품격 있는 정치를 만든다. ‘딱 보면 안다’는 말은 화술이 아니라 세뇌용 주술이다. 경청하는 리더십이 그립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