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과서' 국어 빼고 사회·과학 1년 늦춘다

교육부, 내년 도입 과목 일부조정…곳곳 암초도

정부 '속도조절' 나섰지만 …
76종 선정…내년 영·수에 적용
교원 연수기간은 3개월에 불과
교육청선 이용료·인프라에 부담

야당 반대로 무산될 수도
교과서 아닌 '교육자료' 규정땐
교육현장 도입 여부도 불투명
정부가 내년부터 초·중·고교에 적용하는 인공지능(AI)디지털교과서(AIDT)의 도입 과목과 시기를 일부 조정하기로 했다. 사회, 과학 과목은 도입을 1년 늦추고 국어, 기술·가정(실과)은 아예 제외하기로 했다. 전면적 AI교과서 도입을 둘러싸고 교육계 안팎에서 나오는 반발을 의식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정부, AIDT 정책 속도 늦춘다

교육부가 29일 발표한 ‘AIDT 검정심사 결과 및 도입 로드맵 조정안’에 따르면 내년 초3~4, 중1, 고1은 원안대로 수학, 영어, 정보 과목을 AIDT로 공부한다. 그러나 2026년으로 예정했던 초등학교 3~4학년 사회, 과학과 중학교 1학년 과학은 도입 시기를 1년 미뤘다. 국어와 기술·가정(실과) 교과는 AIDT 도입을 취소했다.

교육 현장에서 나온 우려를 고려한 조치다. 이날 브리핑을 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어는 문해력 저하 문제, 기술·가정(실과)은 실습 부족 문제로 도입 과목에서 제외하거나 시기를 연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시·도교육감협의회도 지난달 교육부에 AIDT 적용 과목을 조정하자고 제안해 이를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속도 조절은 이미 예견된 사태라는 반응이 나온다. AIDT 정책이 너무 성급하게 진행됐다는 것이다. 촉박한 개발 기간이 대표적이다. 이번 심사에 제출된 교과서 146종 가운데 52.1%만 검정을 통과했다.개발사들은 갑작스러운 국어, 실과 과목 도입 제외에도 당황한 모습이다. 올해 국어 AIDT 개발에 착수한 한 개발사 관계자는 “이미 관련 인력을 새로 채용해 서비스, 콘텐츠를 기획하는 단계였는데, 인력 구조조정을 하거나 회사가 인건비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교사 연수가 부족한 점도 문제로 꼽혔다. 교육계 관계자는 “실물이 공개된 뒤 새 학기까지 불과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아 교사들이 사용법을 숙지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교과서 구독료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일부 시·도교육청에서는 이용료와 인프라 구축 등에 드는 예산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이 부총리는 “총 1조원 이하로 구독료가 책정될 것으로 추계하고 있으며, 필요할 경우 일부를 특별교부금으로 부담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서 지위 잃을 수도

설상가상으로 교과서 지위를 얻지 못할 위기에도 처했다. 야당은 AIDT를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법안을 전날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통과된 안건은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으로 AIDT를 ‘교과용 도서’가 아니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내용이다. 또 AI디지털교과서를 교육자료로 선정할 땐 학교장이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조항도 추가했다. AIDT에 대한 기술 문제와 부작용 우려가 해소될 때까지 우선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AIDT가 ‘교육자료’가 될 경우 학교장 재량에 따라 도입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현장의 사용률은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 교과서 안에 들어가는 콘텐츠의 저작권료도 높아진다. 교과서 검정에 통과한 개발사들은 황당해하는 모습이다. 한 개발사 관계자는 “교육자료로 만들라고 했으면 개발비 단위가 달라졌을 것”이라며 “전날 해당 개정안이 국회 교육위에서 통과되면서 되레 합격한 업체들이 당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국회를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부총리는 “AIDT가 특정 학교에만 활용되면 도입하지 못한 학교와의 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라며 “격차 해소라는 AIDT 본연의 목표를 위해 본회의 통과 전 국회를 적극 설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혜인/박주연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