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野의 횡포…'예산 감액안' 예결위서 사상 첫 강행 처리

4조1000억 일방적 삭감

野, 특활비 680억 줄이겠다고
합의없이 수백兆 예결위서 처리

민주 "법정시한 내 처리해야"
與 "檢 특활비 삭감은 분풀이"
본회의 올릴지는 우원식에 달려
< 與 퇴장 속 예결위 통과 >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박정 예결위원장이 야당 단독으로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검찰·경찰의 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 등 약 4조1000억원을 일방적으로 삭감안 ‘감액(減額)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수백조원 규모의 한 해 나라 살림살이가 정부와 여야 합의 없이 다수당에 의해 예결위 문턱을 넘은 건 헌정사상 처음이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방탄용 예산”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활비에 막힌 680조원

국회 예결위는 29일 전체회의를 열어 총수입 651조5000억원, 총지출 673조3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민주당 주도로 의결했다. 총수입은 정부 예산안보다 3000억원 줄었고, 총지출은 4조1000억원 삭감됐다. 당초 정부는 총수입 651조8000억원, 총지출 677조4000억원 규모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의 예비 심사를 거쳐 예결위로 올라왔고, 예결위는 지난 18일부터 증액·감액 심사를 했다. 대부분의 비쟁점 예산은 여야가 합의를 봤지만, 민주당이 전액 삭감을 주장한 대통령비서실 특수활동비와 검찰·경찰·감사원 등 사정기관 특활비·특정업무경비 등을 놓고 이에 반대하는 여당과 정면 충돌했다. 민주당은 이들 예산과 관련해 세부 지출 내역이 확인되지 않는 “깜깜이 예산”이라며 삭감 주장을 폈고, 국민의힘은 “사용 내역 제출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민주당은 일종의 비상금인 정부 예비비 4조8000억원에 대해서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대왕고래 프로젝트(505억원) △용산 어린이정원 조성(416억원) △신재생에너지 보급 지원(1563억원) △원전 생태계 금융 지원(1500억원) 사업도 삭감을 요구했다. 대신 ‘이재명표 사업’인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예산 2조원 편성 등을 주장했다. 민주당은 금리 상황 등을 들며 국고채 이자상환 비용 5000억원도 삭감했다.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예결위 활동 종료 시한(11월 30일)과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12월 2일)이 다가오자 민주당은 자신들이 주장한 예산 삭감만 반영한 감액 예산안을 이날 강행 처리했다. 예산 증액은 정부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국회 권한으로 감액만 반영한 반쪽 예산안을 처리한 것이다.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허영 의원은 “법정 시한 내에 예산안 처리를 하려고 했지만 정부에 예산 증액동의권을 부여한 현행 제도의 한계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대표의 분풀이를 위해 검찰 특활비 예산을 일방적으로 삭감했다”고 주장했다. 기획재정부는 “야당이 책임감 없이 민생을 저버리는 무리한 감액 예산안을 제시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처리했다”며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벼랑 끝 전술’의 결과는

민주당은 지난해 예산 심사 때도 쟁점 사업의 증·감액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자 “감액 예산안을 일방 처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정치권 안팎에선 “의원들이 지역 예산 증액을 포기할 수 있겠냐”는 반응이 나왔고, 감액 예산안 강행 처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을 19일 넘긴 지난해 12월 21일 여야 합의로 처리됐다.지난해와 달리 민주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감액 예산안을 일방 처리한 건 일종의 ‘벼랑 끝 전술’로 평가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해는 협상 전략이었을 수 있지만 올해는 아니다”고 했다. 특히 이 대표가 주장하는 지역사랑상품권 지원 사업 예산(2조원) 확보를 위해서라도 과감한 예산 삭감이 필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예비비로 편성한 4조8000억원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기재부가 3000억원 삭감에서 물러서지 않았다”고 했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기소를 ‘정적 제거’로 규정한 상황에서 검찰 특활비·특경비 예산 삭감도 반드시 관철해야 할 사안이었다는 평가다.

다만 민주당이 예결위에서 일방 처리한 감액 예산안이 최종적으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을지는 미지수다. 이날 예결위를 통과한 예산안도 여야 원내대표 간 협상에서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다수당이 단독으로 만든 감액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기엔 정치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우 의장이 어떤 결정을 할지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다. 우 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는 다음달 2일 본회의 개의 전 만나 예산안 상정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한재영/정상원/박상용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