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사법제도와 국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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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 발전에 걸맞은사법의 질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 경제 규모와 사회 발전 수준에 걸맞은 효율적인 재판과 사법 운영은 국가 발전에 필수적이다. 사법제도는 설계만 잘하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소프트파워 혁신이 될 수 있다. 반면 사법제도가 국가 발전과 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때 기업과 사회의 발목을 잡는 중대한 걸림돌이 된다. 유럽은 변화한 환경에 대응하고 효율적이고 현대화된 사법을 위해 2002년 유럽평의회 산하 기구로 ‘효과적 사법을 위한 유럽위원회(CEPEJ)’를 설립했다. 매년 회원국의 사법 시스템을 분석해 사법 운영에 대한 평가, 사법 기구와 사법제도 개혁 방안 등을 권고하고 있다. 법조인 양성제도, 소송 기간, 사법적 결정 집행 등을 검토하는 데 아직 별다른 관심이 없는 우리 현실은 아쉬운 대목이다.
'효율적 사법 운영' 요구 늘어
법조 일원화 도입 10년 됐어도
신규 법관 임용 기준은 '불명확'
현안 떠오른 '재판 독립성'
신뢰 회복 위한 사법개혁 시급
김종민 S&L 파트너스 변호사
사법의 질 제고를 위한 1차 과제는 법관의 임용과 교육, 인사제도다. ‘누가 재판하는가’라는 문제가 핵심이다. 법조 일원화 정책이 시행된 지 10년이 되었지만 5년 이상 법조 경력자 중에서 선발한다는 것 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신규 법관을 임용하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과거 사법연수원 수료생 중에서 임용할 때는 2년간 지도교수가 연수생의 자질과 소양, 업무 역량 등을 관찰해 임용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었다. 현재 선발 방식이 과거보다 나아진 것인지는 의문이다. 특히 우리의 법관 선발에서는 전문성과 다양성 확보가 취약하다. 프랑스는 일반 경쟁 외에 약 25% 법관을 제한경쟁시험으로 선발한다. 일정 경력 이상의 공무원, 변호사, 법학박사 학위 소지자 등 법조 관련 직역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전문성과 다양성 확보와 함께 순혈주의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부적격 법관 퇴출과 관련해 10년마다 재임용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번 임용되면 자동승진하고 사실상 정년을 보장받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프랑스는 고위직, 1급, 2급 사법관으로 계급이 나뉘어 있고 직급별 법관이 맡을 수 있는 보직도 법률에 규정돼 있다. 연공서열에 따른 자동승진은 없고 독립된 승진심사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 2년마다 1회씩 법원장과 고등법원장이 산하 법관에 대한 근무평정을 한다. 직무 적합성, 기획력, 추진력 등 30여 개 항목으로 나눠 평가하는데 당사자에게 평정 결과를 열람시켜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준다. 법원장 추천제로 소속 법관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 우리와 너무나 대비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재판의 독립성 확보가 최대 과제다. 문재인 정권 시절 법복을 벗자마자 집권당 국회의원과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변신한 ‘법복 입은 정치인들’은 사법 신뢰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중요 사건 판결을 선고할 때마다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담당 판사의 출신지와 성향까지 언론에 보도되는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과열된 진영 논리가 근본 원인이지만 1심 재판에만 4년이 걸린 조국 전 장관이나 임기 만료 후 당선 무효형이 확정된 윤미향 전 의원처럼 국민의 불신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은 사법부가 유념할 부분이다. 정치적 중립성 강화를 위해 검찰, 경찰과 함께 법관 퇴임 후 최소 5년 이상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특단의 조치도 검토할 만하다.
프랑스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법은 큰 파리는 잡지 못하고 작은 파리만 잡는 거미줄”이라는 말을 남겼다. 한비자는 “거울이 흔들리면 밝지 못하고 저울이 흔들리면 바르지 못하니 법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법치 부재는 부패를 초래하고 공권력 불신으로 이어진다. 신뢰에 기반한 사회제도가 부패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그 중심에 사법제도가 있다. 사법개혁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사법부에만 맡겨놓을 사안도 아니다. 국가 인프라 혁신을 위한 시스템 개혁 차원에서 범국가적 상설 기구를 설치해 본격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사법 절차가 공정하지 않으면 가진 자가 더 큰 이익을 보는 사회가 된다. 효과적인 사법, 인간적인 사법, 현대화된 사법, 국민에게 더욱 다가가는 사법을 위해 모두가 노력할 때 희망의 사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