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유럽은 반성이라도 한다

김현석 글로벌마켓부장
미국 뉴욕 증시의 S&P500지수가 지난달 29일 6032.38로 올해 들어 53번째 신기록을 세웠다. 올 들어 지금까지 상승률은 27%를 넘는다. 연간 수익률이 2년 연속 20%를 넘게 된다면 1998~1999년 이후 처음이다.

미국 경제의 르네상스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고물가로 기준금리를 연 5% 위로 올렸지만 경제성장률은 지난 2분기 3%(연율), 3분기 2.8%를 기록하는 등 선진국 중 가장 높다. 인공지능(AI) 투자 덕분인지 생산성이 개선돼 임금발(發) 물가 걱정은 줄었다. 이에 Fed는 완화적인 금융정책으로 전환했다. 미국 증시가 치솟은 이유다. 내년 1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해 감세와 규제 완화, 정부 효율화에 돌입하면 성장은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25년 미국에는 붐이 오고, 세계는 침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붐, 세계는 침체

이런 미국과 자주 비교되는 게 인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비슷했던) 유럽연합(EU)이다. EU 증시도 올해 꽤 올랐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하에 힘입어 지금까지 6.6% 상승했다. 하지만 미국에 비해선 역사적으로 저조한 성과다. 성장이 뒤처져서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20년대 들어 미국 경제는 연평균 2.3% 성장했지만 EU 경제성장률은 1%에 그쳤다”며 “그러다 보니 2020년부터 미국 주식에는 1조1000억달러가 순유입됐지만 EU 증시에선 3000억달러가 순유출됐다”고 분석했다.

사실 EU의 국내총생산(GDP)은 2008년에만 해도 14조2000억달러로 미국(14조8000억달러)과 비슷했다. 하지만 작년엔 15조5000억달러에 그쳐 미국(27조4000억달러)의 57%에 불과했다.

EU는 반성하고 있다. 그 결과물이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가 만든 ‘유럽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다. 미국과의 차이를 분석하고 EU가 바꿔야 할 점을 통렬히 지적했다. 격차가 커진 것은 근로자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노동시간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늦은 디지털 전환, 높은 에너지 비용, 분산된 연구개발(R&D) 등이 모두 생산성 저하의 배경이다. 이에 8000억유로에 달하는 빚을 내서라도 첨단기술 투자를 늘리고, 느린 의사결정 체계 등 체질도 바꿀 것을 주문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이유

EU가 미국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생산성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2010년대 연평균 1.3%에 불과하던 생산성 상승률은 지난 1년간 2.5%에 달했다. 대표적 사례가 석유다. 미국은 2007년 하루 510만 배럴을 생산하던 원유를 올해 하루 1340만 배럴 뿜어낸다. 더 많은 곳을 채굴해서가 아니다. 혁신에 투자해서다. S&P글로벌에 따르면 미국 석유회사는 10년 전에 비해 40% 적은 인력으로 60% 더 많은 석유를 파낸다. 채굴 현장은 압력, 열 등 온갖 데이터를 수집하는 카메라와 센서로 가득하다. 시추에서 운송까지 더 많은 장비가 소프트웨어에 의해 자율 제어된다. 이에 따라 대표적 셰일오일 산지인 텍사스 퍼미안분지의 손익분기점은 2012년 배럴당 90달러에서 올해 40달러로 떨어졌다. 이는 EU가 부러워하는 낮은 에너지 비용으로 귀결된다.

한국도 EU와 처지가 비슷하다. 트럼프 당선 이후 유로와 함께 가치가 가장 많이 떨어진 통화가 원화다. 하지만 ‘한국 경쟁력의 미래’와 같은 보고서를 만든다는 얘기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