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6억을 어떻게 구해요"…초유의 사태에 '비상' 걸렸다

치솟은 공사비에 수도권 42만호 공급 '빨간불'

건설공사비, 4년 만에 30% 급등
인건비·공사 기간에 영향
"주 52시간 근무제 등 개선해 공사 기간 줄여야"
수도권의 한 재건축 공사 현장 모습. 사진=김범준 기자
서울·수도권에 주택 42만7000호를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8·8 공급대책’ 실현이 불가능해졌다는 지적이 건설업계에서 나왔다. 공사비가 치솟으면서 대부분 지역에서 주택 공급이 불가능해졌다는 주장이다.

2일 건설주택포럼과 한국건설관리학회가 주관한 '공사비 안정을 통한 건설산업 활성화 전략 세미나'에서 이윤홍 한양대 겸임교수는 "정부가 노후계획도시 재정비와 택지개발 등을 통해 42만7000호를 공급하겠다고 (8·8 공급대책을 통해) 발표했지만, 현재는 공사비 때문에 모두 멈췄다"며 "공사비가 치솟으면서 사업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한 공사비지수는 2020년 100에서 올해 9월 130.45로 4년 만에 약 30%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공사비가 급증하면서 사업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사업장도 늘어가는 추세다.

이 교수에 따르면 부산시에서 895실 규모 오피스텔을 짓는 한 사업은 2019년만 하더라도 건물을 짓고 분양해 1631억원의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됐지만, 공사비가 3.3㎡당 650만원에서 930만원으로 뛰면서 사업성이 크게 악화했다. 당초 3.3㎡당 1140만원으로 계산한 토지비를 전액 포기해 0원으로 바꿔도 821억원의 적자를 보게 됐다.

경기 성남시의 한 재건축 사업지도 당초 비례율이 132%에 달하던 비례율이 최근 78%로 하락해 사업이 불가능해졌다. 당초 조합원마다 평균 1억2600만원을 환급받을 수 있었지만, 3.3㎡당 490만원이던 공사비가 85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오르면서 추가 분담금이 5억7800만원 수준으로 늘어났다.이 겸임교수는 "일반적인 조합원은 6억원에 육박하는 분담금을 낼 능력이 없다"며 "늘어난 공사비로 인해 조합원 동의를 얻기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금융비용도 증가해 분담금이 더 치솟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대부분 정비사업장에서 발생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윤홍 한양대 겸임교수가 정비사업 수익성 악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그러면서 "공사비로 인해 사업성이 악화하면서 브리지론(택지 구입 자금)에서 본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며 "브리지론은 2금융권에서 많이 사용했는데, 본 PF로 넘어가질 못해 금융비용이 불어나면서 전체 사업비의 20%를 금융비용이 차지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공사비가 급증한 가장 큰 원인은 인건비다. 이 겸임교수는 "주 52시간제가 도입됐고 오후 5시 이후로는 콘크리트 타설이 금지됐다"며 "과거엔 근로자들이 저녁 6시까지 일했지만, 현재는 규제에 맞추다 보니 오후 4시가 넘으면 일을 마무리한다. 이에 따라 공사 기간이 평균 8개월 늘어났다"고 말했다. 인건비를 낮추고 공사 기간을 줄여야 공사비도 하락할 것이라는 주장이다.함께 발표에 나선 김영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정비사업 평균 기간이 13.7년에서 15.6년으로 늘어났고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요청하는 건수도 증가하고 있다"며 "이러한 배경에는 공사비 상승이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공사비 검증 요청 건수는 25건에 그쳤지만, 올해는 9월까지 31건을 넘어섰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인건비가 한없이 오르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며 "주 52시간 근무제와 주휴수당 지급보장, 법정휴일의 유급휴일 의무화, 휴일 노동 가산 수당 등으로 인해 공사 기간이 길어졌고 이는 인건비와 공사비 증가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비롯한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편해 공사 기간과 인건비를 줄여야 공사비를 낮출 수 있다고 제언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주 52시간 근무제는 건설 산업 특성을 고려해 유연한 적용 기반을 마련하고 중대재해처벌법도 명확한 적용 기준을 마련해 모호성을 개선해야 한다"며 "공사 기간에 영향을 주는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