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적용 확대…리딩방·가상자산도 포함

선물거래 사기단에 추징금 명령한 원심 확정
보이스피싱 넘어 전기통신금융사기 대상 넓혀
사진=한경DB
전기통신수단을 이용한 금융사기 피해자에 대한 피해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보이스피싱 범죄뿐만 아니라 주식 리딩방, 가상자산 관련 범죄 등까지 법 적용 범위가 넓어질 전망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전기통신 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선물거래 사기 조직 총괄 운영자 A씨 등 조직원 7명에게 징역 3~8년, 추징금 총 94억여원을 명령한 원심 판결을 지난달 28일 확정했다.피고인들은 2021년 5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서울 강남구 일대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투자 리딩 업체 직원을 사칭해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 "고수익이 보장되는 투자처가 있다. 리딩을 해주는 대로만 따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며 회원을 유치했다. 이후 원격접속 프로그램으로 회원들의 컴퓨터에 HTS 프로그램을 직접 설치해주고, 단체대화방에 들어오게 했고 수익을 내준다며 회원들이 HTS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하도록 했다.

하지만 피고인들은 금융위원회로부터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않아 투자중개업 등 금융투자업을 할 수 없었고, 이들이 제공한 HTS 프로그램은 시중 증권사의 선물계좌와 연계되지 않아 선물거래를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결국 회원들이 맡긴 투자금은 고스란히 선물거래 사기 조직의 계좌로 들어갔다. 범행을 주도한 A씨가 편취한 금액만 26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심 재판부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 피고인들의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른 전기통신금융사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전화 또는 인터넷 메신저 등 전기통신수단을 이용한 금융사기 피해자가 소송절차를 거치지 않고 피해금을 신속히 돌려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 법에 따라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자는 사기이용계좌의 지급정지를 신청할 수 있고, 지급정지된 사기이용계좌의 예금채권에 대해 채권소멸절차를 진행해 피해금을 환급받을 수도 있다,1심 재판부는 "전기통신금융사기에서 제외되는 행위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를 수단으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경우'라고 해석함이 타당하다"며 "'합법적인 해외선물거래를 할 수 있는 HTS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내용으로 피해자들을 기망한 행위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행위가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해당한다고 보고, 1심과 달리 피고인들에게 추징금을 명령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전기통신금융사기의 제외 대상을 두는 이유는 통상적인 대가관계에서 자금을 송금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경우에서도 송금인에게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규정한 신속하고 강력한 구제 수단을 부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법자의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상고심 재판부는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를 전기통신금융사기에서 제외하는 이유는 보이스피싱이 아닌 온라인상에서의 재화나 용역에 관한 일반적인 거래를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규율 대상에서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원심이 이 같은 취지에서 전기통신금융사기에서 제외되는 행위를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해 이와 대가관계 있는 재산상 이익을 취한 행위'에 한정된다고 본 것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