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다는 착각 vs 올바르다는 환상…비트코인을 보는 엇갈린 시각 [한경 코알라]

김민승의 ₿피셜
코인, 알고 투자하라!
한국경제신문의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코알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발행하는 코알라를 받아보세요!
무료 구독신청 hankyung.com/newsletter

트럼프 당선, 리버럴 질서의 종말

트럼프의 승리는 예견된 일이었다. 선거 한 달 전부터 코인 베팅 예측시장인 폴리마켓은 주별 투표 결과까지 정확히 예측했다. 하지만 주류 지식인들과 언론은 이를 '있을 수 없는 일'로 치부했고, 트럼프 지지나 당선 예측은 선거 당일까지도 '반지성적' 행위로 낙인찍혔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그레이는 "트럼프의 재림은 소련의 붕괴와 그 지정학적 결과에 비견할 만한 역사적 전환점을 의미한다. 바로 리버럴한 세계 질서의 결정적 종말이다"라고 평했다.

'진보(liberal)'를 표방하던 민주당은 '올바름'을 핑계로 많은 것을 부당하게 억압했고, 그 과정에서 상대를 '악(惡)'으로 규정했다. 국경, 인종, 젠더 이슈와 더불어 크립토는 이번 대선의 핵심 쟁점이 되었다.

워런의 안티 크립토 군단

미국 민주당 안티 크립토 기조의 대표 주자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다. 하버드대 교수 출신의 저명한 법학자인 그는 '반 크립토 군단(anti-crypto army)'을 만든다고 공언할 정도로 강경한 가상자산 반대론자이며, 디지털 자산 자금 세탁 방지법 등을 통해 업계 전반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추진했다. 바이든 행정부와 SEC의 강력한 규제, '코스탈 엘리트'와 주류 언론의 지지, 대선 시기 '안티-트럼프' 기조가 더해지며 워런이 주도한 민주당의 안티 크립토 정책은 '정치적 올바름'이나 '워키즘'과 함께 맹위를 떨쳤다. SEC의 과잉 규제(overreach)에 대해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미국 민주당의 현실 괴리

민주당은 이주노동자와 유색인종을 자신들의 지지 기반이라 여겼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본국 송금에 크립토를 활용한다는 현실을 외면했다. 소액을 자주 본국에 보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한 송금은 기존 은행보다 저렴하고 빠른 방법이었다. 하지만 민주당과 워런은 크립토 송금을 자금 세탁이나 테러 지원 수단으로 매도하며, 악을 징벌하는 심판자적인 자세를 취했다. 테러단체의 송금과 이주노동자들의 본국 송금을 동일시한 민주당의 안티 크립토 정책은 이주노동자와 유색인종에게 큰 불편을 안겼다.

워런은 테라 루나와 FTX 사태에서도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테라 루나 사태의 피해자들은 사기꾼의 꼬임에 넘어간 멍청이가 아니었다. 취업난과 살인적인 물가상승 속에서 테라 UST와 앵커프로토콜이 약속한 연 19% 수익률에 기대를 건 평범한 시민들이었다.FTX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시기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미국인들은 달러 가치 하락에 대비해 가상자산을 선택했고, 미국 명문가 엘리트가 운영하는 거래소처럼 보이는 FTX에 자금을 맡겼을 뿐이다.

SEC는 많은 미국인이 테라 루나와 FTX에 투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일부러 불명확한" 태도를 유지하며 이들의 역외 영업과 미국인들의 이용을 방치했다. 2022년 크립토 업체들이 줄파산하며 가상자산 가격이 장기 급락한 ‘컨테이전(contagion)’ 사태 후 미국 행정부와 민주당은 미국인 투자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 미비 책임을 인정했어야 했다. 대신 그들은 이를 '크립토는 악'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하며 악에 맞서 싸우는 투사, 악을 벌하는 심판자적 태도를 견지했다.

정의로운 투사인가, 투사인 줄 아는 억압자인가

절대악을 설정하고 이에 맞서 싸우는 투사가 되는 것은 명분과 선명성을 얻는 손쉬운 방법이다. 중세 유럽에서 종교가 그랬고, 냉전 시대의 이념이 그랬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선과 악은 흑백처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투사가 진정한 불의에 맞설 때 그 투쟁은 정의롭다. 그러나 투쟁의 대상이 불의가 아니라면 그저 싸움일 뿐이며, 거대한 투사가 권력을 동원해 싸우면 그 자신이 불의이자 거대악이 된다.
미국 민주당이 그랬다. 집권당인 민주당은 행정부와 SEC를 앞세워 워런이 '불의'라고 규정한 크립토를 탄압했고, 그 자체가 불의가 되었다. 미국 크립토 업계와 투자자들은 이에 가장 미국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저항했다. 그들은 전국 각지에서 공화당을 물심양면으로 전폭 지지했고, 결국 백악관과 상·하원 모두를 공화당이 장악하는 '레드 스윕'으로 이어졌다.

관점을 전환하라

민주당 참패의 핵심은 관점 전환의 실패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집권당이면서도 끝까지 '거대악에 맞서는 투사' 행세했고, 자신들의 권력 행사는 정의롭다고 믿었다. 이는 사회 전반에 부작용과 피로감을 일으켰다. 위치가 바뀌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져야 하는데, 집권 여당이 되고서도 야당 투사의 관점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젠더, 인종, 크립토 등 모든 면에서 민주당과 해리스 캠프는 4년 전과 지금의 차이를 읽지 못했다. 해리스는 트럼프의 과오만 지적했을 뿐,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할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바이든 임기 4년 동안 변화한 유권자들의 민심을 읽지 못한 것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가상자산 투자자가 778만 명을 넘어선 지금도 2017년 긴급대책 때와 같은 시각이다. 가상자산은 '나쁜 것'이고, 어떻게 규제하고 단속해야 나쁜 짓을 막을 수 있을지만 고민한다. 금융당국과 정계는 여전히 악에 맞서는 투사, 악을 심판하는 판관이라는 선명하고 편리한 관점에 머물러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정체성 정치와 다를 바 없다.

정치는 배척과 투쟁이 아닌,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대안과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다. 엘리트와 언론의 비난 속에서도 미국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선택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미국의 정치 지형도, 한국의 시장 환경도, 가상자산의 위상도 크게 변화했다. 이제는 관점의 전환이 절실하다.
김민승 코빗리서치센터장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