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횡단을 처벌하자는 게 자동차 회사 아이디어라고? [서평]

미국 사회심리학자의 저작
사회 문제를 개인 잘못으로 떠넘겨
자기 혐오는 인류에 대한 무력감으로 번져
개인을 연결된 존재로 바라봐야
우울과 자기 혐오가 만연한 시대, 어쩌면 요즘 사회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를 싫어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데번 프라이스는 저작 <수치심 버리기 연습>에서 '체제적 수치심'이란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체제적 수치심은 사회적 모순에서 비롯된 부정적 결과가 개인의 책임과 잘못으로 떠넘겨짐으로써 발생하는 부끄러운 감정이다. 개인이 처한 상황은 전부 그의 탓이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개인의 노력 뿐이라고 믿는 신념과도 통한다. 수치심은 인류 진보 전체에 관해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예컨대 환경오염을 비닐봉지를 사용하고 에코백과 텀블러를 쓰지 않는 개인 탓으로 돌리면, 기업들이 끼치는 막대한 환경 피해와 대중을 속이는 그린워싱 등 사회와 정부, 기업의 책임이 어느새 옅어진다. 빈곤을 낳는 사회적 구조,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는 유리천장 등 다른 사회적 문제도 마찬가지다.

책은 사회적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체제적 수치심을 부추겨 우리를 길들여왔는지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사례들을 소개한다. 1920년대 역사상 최초로 자동차가 길에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운전면허가 도입되기 전 미숙한 운전자들이 도로에 쏟아져 나오면서 교통사고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늘어나는 교통사고에 대한 비판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자,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무단횡단'이란 신조어를 발명했다. 보행자 사망 사고에서 자동차의 역할을 축소하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할 방법을 생각해 낸 결과다. 그들은 로비를 통해 무단횡단을 처벌 가능한 범죄로 규정하고 체제의 부재로 부상 또는 사망하는 개인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교통조례를 제안했다.
저자는 수치심이 무서운 이유는 방치할수록 눈덩이처럼 커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체제적 수치심은 개인에서부터 출발해 점차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태도를 남들에게도 똑같이 들이대는 것이다. 이는 마침내 지구적 수치심으로 번진다. 이른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 체화되고, 사회 운영 방식을 개선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믿으며, 인류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무력감이 확산된다.

체제적 수치심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건 '확장적 인식'이다. 개인을 그를 둘러싼 타인과 환경, 이력, 나아가 더 넓은 사회적 조건과 항상 연결된 존재로 보는 관점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자기 혐오와 무력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