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에 금융권 비상…외인 사흘 만에 1조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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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그룹 유동성·자본비율 등 매일 비상 점검
금융당국 불안 차단에 총력…지주 회장 포함 점검회의 조율
외국인 사흘간 유가증권시장 1조·금융주 7000억 순매도
금융지주, 유동성·자본비율 등 '비상 점검' 돌입
일부 그룹에서는 리스크 관리 담당 그룹장을 주축으로 위기 대응 회의를 꾸준히 열고 있다. 시장 변동성 확대에 따른 유동성과 자본 비율 관리 어려움이 발생할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노력이다. 외환·주식·채권 등 주요 금융시장 지표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부문별 위험 취약 부문을 선제적으로 점검하고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과 자기자본비율 영향을 조직에 공유하는 분위기다.
각 그룹은 비상계엄 사태 후 쏟아지고 있는 고객 문의에도 적극 대응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고객 자산 위험 관리를 강화하고 불안을 줄이기 위해 고객과 주주 간 소통을 늘기로 있다"고 전했다.이는 탄핵 정국이 장기화할수록 국가신용등급이 하방 압력을 받는 등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다.
앞서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피치는 6일(현지시간)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정치적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의 신용도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3대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이어 피치 역시 정치적 갈등 장기화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을 조명하고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해당 국가의 내란이나 정쟁에 대해 신용평가 시 엄격한 평가를 한다.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면 국채 금리가 뛰는 등 한국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만에 하나 신용도에 타격을 입게 될 경우 한국은 과거 노무현·박근혜 정부 탄핵정국 때보다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더욱 취약하다는 점에서 파장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은행 등 국내 금융사도 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필요한 자금을 차입하는 만큼,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의 차환이 어려움을 겪거나 최악의 경우 불가능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국내 금융사는 결국 자기 돈으로 상환해야 하고,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으면 끝내 채무불이행 사태가 빚어진다. 다만 현 시점까지는 각종 지표가 대체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게 금융사들의 중론이다.
당국, 불안 차단에 총력…금융지주 회장 참석 점검회의 검토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금융위가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 개최 가능성이 있고 확정 시 안내한다는 공지가 있었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와 은행 외화유동성 상황 등을 점검하고, 외화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하는 등 정치적 리스크에 따른 시장 변동성 확대 속 국내외 충격파 대비를 주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 시점에서 금융권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는 원화 가치 하락이다. 앞서 지난 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전날 같은 시간보다 4원10전 오른 1419원20전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종가는 전날에 비해 크게 오르지 않은 선에서 마무리했지만 장중 한때 1429원20전으로 치솟는 등 변동폭이 극심했다.
주간 거래에서 1420원대 환율이 나타난 것은 2022년 11월 4일 이후 2년1개월 만에 처음이다. 앞서 비상계엄 선포 후 지난 4일 새벽 야간 거래에서 환율이 1442원까지 오른 바 있지만 야간 거래는 거래량이 적기 때문에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평가다. 이번에는 주간 거래에서 1420원대로 치솟자 외환당국이 대규모 달러 매도에 나서며 시장에 개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권에선 원·달러 환율이 최고 1450원 수준까지 오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환율 급등은 기업의 매입 외환 물량이 늘어나고, 대기업 위주로 외화 예금을 빼내 은행의 외화 유동성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다. 파생상품 관련 추가 담보 제공 요구(마진콜)도 유동성 부족의 잠재 요인으로 꼽힌다.
외화 표시 자산이나 해외 출자금 중 신용 위험가중자산(RWA) 등이 늘어 금융그룹 전체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주요 금융지주들은 원·달러 환율이 10원 높아지면 자기자본비율이 약 0.01∼0.02%포인트 낮아지는 것으로 추산한다.
환율 상승으로 철강·반도체·석유화학·운송 등 업종과 기업에 자금 조달과 수익성에 문제가 생기면 이들에 대출해준 금융사의 건전성에도 부담이 커진다.
외국인 투자자, 금융주 사흘 만에 7000억 넘게 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비상계엄 사태 직후인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유가증권시장에서 총 1조86억원을 순매도했다. 일자별로 지난 4일 4071억원, 5일 3174억원, 6일 2841억원어치 주식을 내다팔았다.
해당 기간 금융업종에서만 7000억원 넘게 순매도, 매도세가 집중된 것으로 집계됐다. 외국인 투자자의 금융업종 순매도는 지난 4일 2552억원, 5일 2786억원, 6일 1760억원 등으로 총 7098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외국인 금융업종 순매도가 이틀 연속 2000억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이 다른 업종에 비해 원화 가치 하락 등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상대적으로 더 크게 받을 것으로 판단, 자금 회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금융권에선 원·달러 환율이 최고 1450원 수준까지 오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번주 원화 가치는 주요국 통화와 비교해도 가장 약세였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정책과 반도체 경기 우려 등으로 11월부터 투자 심리는 좋지 않았는데,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는 악재가 더해졌다"며 "대만 등은 12월 들어서 주가도 오르고 조금 반등하는 추세인데, 원화 자산은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계속 투자 심리가 악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