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흑자 파티, 한국은 사업 접을 판"…생각보다 심각한 상황 [성상훈의 배터리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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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배터리 공급망“이대로면 사업을 접어야 하는게 아니냐는 내부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 유일 음극재 업체인 포스코퓨처엠의 영업팀 관계자는 최근 음극재 판매고와 관련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장 가동률이 평균 30%대까지 떨어지고, 일간 기준으로 10%대를 기록하는날도 생기면서 사업 철수를 고민해야하는 단계까지 왔다는 얘기입니다. 포스코퓨처엠이 만약 사업을 철수하면 국내에선 음극재를 생산하는 업체가 한 곳도 없게 됩니다.
○국내 소재업체는 '적자', 中은 흑자
배터리 4대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음극재의 위기는 한국 2차전지 벨류체인이 처한 현 상황을 상징합니다. 중국업체들은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값싼 전기료 및 인건비 등에 힘입어 투자를 늘리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국내 업체들은 별다른 정책적 지원없이 생사기로에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14일 한국경제신문이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질 등 2차전지 4대 핵심 소재분야의 국내 및 중국 주요업체의 실적을 비교해본 결과, 국내 업체는 8곳 중 7곳이 적자였습니다. 반면 중국업체는 적자기업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포스코퓨처엠은 3분기 음극재 분야에서 39~4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면 중국 음극재 업체인 샨샨과 BTR은 같은기간 각각 686억원, 684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분리막 기업 SKIET는 3분기 73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SKIET는 매분기 600~700억대 수준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해 매출 2184억원, 영업손실은 매출보다 큰 2805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SK그룹은 올해 초부터 적자가 쌓이고 있는 SKIET의 회사 매각을 시도했지만 인수 대상을 찾지못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국내 분리막 회사 더블유씨피 역시 3분기 19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습다. 그 사이 중국업체 창신신소재는 722억원, 씨니어는 236억원의 흑자를 봤다.
전해질 분야에선 한국의 엔켐이 3분기 71억원의 손실을 볼 동안 텐츠재료는 456억원의 흑자를 남겼습니다.
국내 배터리 벨류체인 중 가장 견고하다고 평가받는 양극재도 고전하고 있습니다. 3분기 에코프로비엠이 412억원, 엘앤에프 72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포스코퓨처엠 양극재 부문이 약 12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롱바이(487억원), 후난위넝(389억원), 베이징이스프링(369억원) 등 중국 경쟁업체은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국내업체조차 한국 소재 외면
문제가 심각한건 국내 배터리 셀사들조차 중국 소재 비중을 늘리고 있다는 겁니다. 국내 배터리 셀업체 1위 LG에너지솔루션은 삼원계 양극재를 제외하곤 나머지 소재분야에선 중국 제품의 비중을 늘리고 있습니다. 삼성SDI와 SK온도 마찬가지다. 중국 제품들이 20~30% 이상 싼 가격에 시장에 풀리면서 셀업체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개별 기업들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중국과의 치열한 가격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배터리 생산비용을 낮추려면 중국 공급망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국내 배터리셀사 역시 CATL 등과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 배터리 소재업체 관계자는 “국내 셀 업체들이 비용을 낮추기 위해 소재는 물론 배터리에 들어가는 작은 부품하나도 검증 받은 중국산으로 바꾸고있다”며 “생존 경쟁에서 소부장 제품의 국적을 따질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中정부는 조단위 보조금 투입
정책적 지원 유무가 한중 소재 가격경쟁력 차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미국 씽크탱크 등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에만 배터리 및 전기차 산업 분야에 64조원의 재정지원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업계에선 배터리 소재 분야에만 보조금 등으로 조단위가 투자됐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조금은 물론 세금 감면, 현금지원은 물론 저금리 대출과 토지 등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값싼 전기료와 인건비 등의 영향도 큽니다. 산업 전기료는 한국이 중국보다 60~70% 이상 비쌉니다. 인건비는 2배 이상 비쌉니다. 중국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특근을 가득채워서 일하고도 월 200만원 이하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 소재업체의 경우 중국의 이같은 경쟁력에 맞설 정책적 지원이나 환경적 이점이 거의 없습니다.
배터리 공급망의 부실은 경제안보와 직결되는 문제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2차전지는 반도체 등에 이어 국내 산업의 최대 미래먹거리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터리 벨류체인이 무너지는 경우 극단적으로 말해 중국이 소재 하나만 통제해도 국내 배터리사 전체를 흔드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업계 전문가들은 생산 및 구매보조금 등을 검토해야할 단계라고 강조합니다. 미국 ,중국, 일본은 이미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소재 생산비에 일부를 보조금으로 지급하거나 국내 셀업체가 국내 소재를 구매할때 구매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입니다.
투자부담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세액공제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 나옵니다. 국회(김상훈 국민의힘 의원)는 이미 지난 7월 미국 인플레이션 방지법(IRA)의 투자세액공제 제도를 본따 이익이 나지않더라도 투자비용 일부를 현금으로 환급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제대로된 논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가 현재 격변상황을 겪고 있는 만큼 진중한 논의가 이뤄지기는 어려워보입니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셀사와 달리 소재 업체들은 내구력이 상대적으로 약해 현금 고갈이 투자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크다”며 “산업정책부재로 중국과의 격차가 벌어지면 나중에는 따라가지도 못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