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은 EU·남미 4개국…세계 GDP 25% 넘는 공동시장 출범

25년 끌어오던 FTA 타결 앞둬
연간 40억유로 관세 절감할 듯
유럽연합(EU)과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MERCOSUR)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마무리했다. 관련 논의를 시작한 지 25년 만이다. 유럽과 남미를 아우르며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5%를 넘게 차지하는 거대 경제 단일시장이 출범할 것으로 전망된다.
7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와 메르코수르 사무국은 전날 보도자료를 내고 “EU와 메르코수르는 획기적인 FTA 체결을 위한 논의를 마쳤다”며 “우리는 공정성과 상호 이익에 기반해 양측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 큰 혜택을 가져다줄 윈윈 협정을 끌어냈다”고 밝혔다. 메르코수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4개국이 무역 장벽을 전면 철폐해 1995년 출범시킨 공동시장이다.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루이스 라카예 포우 우루과이 대통령, 산티아고 페냐 파라과이 대통령은 이날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열린 메르코수르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자리에 모여 FTA 협상 마무리를 축하했다. 양측 FTA 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룰라 대통령은 “25년 만에 거둔 역사적 성과”라며 환영했다.

메르코수르 회원국은 소고기 등 농축수산물의 대(對)유럽 수출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EU는 자동차·의약품을 비롯해 대메르코수르 회원국 수출에서 연간 40억유로(약 6조원) 상당의 관세를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U가 메르코수르 4개 회원국에 수출한 상품 규모는 2023년 기준 557억유로였다.

EU 집행위는 “350개 이상의 EU 제품이 지리적 표시로 보호받고, 유럽의 보건 및 식품 기준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며 “메르코수르 수출업체는 EU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관련 규정을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또 EU와 메르코수르는 공급망 다각화, 재생에너지 기술과 저탄소 연료 개발 촉진 및 무역 특혜 보장, 중소기업 대외 교역 지원, 글로벌 친환경 전환에 필수적인 원자재 확보 등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999년부터 20년간 이어진 EU와 메르코수르 간 FTA 협상은 2019년 원론적 합의에 도달했다. 하지만 EU 측에서 아마존 삼림 벌채 억제와 환경보호 의무 조항 등 새로운 조건을 요구하면서 이후 5년간 난항을 겪어왔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 협정은 경제적 기회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필요성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며 “고립과 분열이라는 반대 방향으로 강풍이 불고 있음을 알지만, 이 합의는 우리에게 대응 방안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0∼20% 보편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이번 협상 타결이 대응책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분석됐다.

협상은 마무리됐지만 최종적으로 협정 체결과 발효까지 적잖은 난관이 예상된다. 협정 발효를 위해선 EU 27개 회원국 모두가 지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식 문서는 향후 온라인에 공개되며, 양측이 최종 법적 검토를 하고 모든 공식 EU 언어로 번역된 후 각 의회 의결을 거친다. 이 과정에만 수개월이 걸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소 35%의 EU 인구를 대표하는 4개 이상 국가가 이를 채택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며 “농가에 친화적인 유럽 의회에서 이뤄지는 표결도 통과해야 한다”고 전했다.프랑스는 협정 반대 그룹을 이끌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프랑스 농가는 불공정 경쟁에 따른 자국 농축산업계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이 협정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메르코수르 국가에서는 환경 및 동물 취급, 농약 사용 등 각종 기준이 EU보다 훨씬 낮은 상태로 농축산업이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탈리아는 농민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공식적으로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밝히지는 않았다. FT는 “EU 집행위는 협정을 통과시키기 위해 협정을 분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관세 인하 등 무역 관련 핵심 조항과 투자, 노동, 환경 등의 규정을 분리해 협정의 일부라도 통과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