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 통과 '안갯속'…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 되나

탄핵 부결로 정국 냉랭
韓총리 "민생경제 적기 회복" 호소

10일 본회의 상정 '데드라인'
與, 지도부 사퇴로 '리더십 공백'
野, 감액 예산안 처리 강행 가능성

만약 12월31일까지 처리 불발땐
정부 기능 최소 유지 예산만 편성
< 부총리·장관들 긴급 성명 >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왼쪽 다섯 번째)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장관들과 함께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정부는 경제 안정을 이루고 대외 신뢰를 확보할 수 있도록 국회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솔 기자
계엄 사태로 윤석열 대통령이 2선으로 후퇴하고 정치권에 탄핵 공방이 불거지면서 677조원 규모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안개 속에 갇혔다. 윤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을 맡게 된 한덕수 국무총리와 경제팀을 이끄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예산안의 조속한 통과를 야당에 연이어 요청했다. 하지만 탄핵 소추안 부결로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여야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예산안 심의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악의 경우 사상 초유의 준(準)예산 편성 가능성도 거론된다.

무기한 중단된 예산안 협상

한 총리는 8일 발표한 담화에서 “비상시에도 국정이 정상 운영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과 부수법안 통과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예산안이 조속히 확정돼 각 부처가 제때 집행을 준비해야만 어려운 시기에 민생경제를 적기에 회복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부총리도 이날 관계부처 합동 성명을 통해 “예산이 내년 초부터 정상 집행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신속히 확정해 달라”고 호소했다.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제출한 677조4000억원 규모 내년도 예산안에서 4조1000억원 감액한 673조3000억원 규모 수정 예산안을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단독으로 강행 처리했다. 예결특위에서 예산안이 야당 단독으로 처리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야당은 정부가 제출한 4조8000억원의 예비비 중 절반에 달하는 2조4000억원을 감액했다. 대통령실을 비롯해 검찰·경찰·감사원 특수활동비는 전액 삭감했다. 전공의 복귀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도 3678억원에서 2747억원으로 깎였고, 505억원으로 편성된 동해 심해 가스전(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은 불과 8억원만 남았다.

애초 예산안 수정안은 이달 2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었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이 10일까지 예산안 관련 합의를 해 달라며 직권으로 상정을 미뤘다. 하지만 예산안 논의는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속에서 무기한 중단됐다.

민주당은 내년도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아직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전날 밤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이 예산안 처리를 할 때냐’는 의견과 ‘감액 예산안을 처리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결정된 바는 없다”고 했다.

최악의 경우 준예산 편성

여당인 국민의힘은 예산안 협의와 관련해 어떤 입장도 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과 예산 협상을 해야 할 추경호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가 일제히 사퇴한 상황에서 협상 대상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산 증액 권한을 가진 기재부는 탄핵 정국에서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극적으로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재개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촉발한 계엄 사태로 인해 주도권을 야당에 완전히 내줬다는 점은 정부와 여당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특히 야당이 전액 삭감한 대통령실 검찰 경찰 등의 특활비 예산 복원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때문에 우 의장이 여야 협상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10일에 민주당의 감액 예산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진정성 있는 증액안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10일에 예정대로 처리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민주당이 요구한 민생사업 예산은 내년 초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반영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여야 협상이 제때 진행되지 않을 경우 준예산 편성 가능성도 거론된다. 준예산은 직전 회계연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하면 최소한의 정부 기능 유지를 위해 전년도에 준해 편성하는 예산이다. 준예산이 편성되면 공무원 인건비, 국고채 이자, 국민연금, 생계급여 등 기본적인 예산 집행만 가능하다.

강경민/한재영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