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사운드를 제공할 뿐 만 아니라
디자인, 인터페이스 등 창의적인 감흥을 줄 수 있어야
하이엔드 오디오라 할 수 있어
2016년 6월의 일이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배경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재판이 열렸다. 콩스탕탱 브랑쿠시라는 조각가의 독특한 금속 조형물이 재판관 앞에 놓여있고 양쪽 변호인이 서로 자신의 의뢰인을 위해 변호하고 있었다. 이 재판의 이름은 '브랑쿠시 VS 미국’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으로 당시 세간에 화제가 되면서 금속 조형물에 대한 관심을 이끌었다. 이것은 실제 재판은 아니다. 1928년 미국 법원에서 있었던 미술품 관세 관련 재판을 다시 재현한 것이다.
'브랑쿠시 vs 미국'. 1928년 미국 법원에서 있었던 미술품 관세 관련 재판이 2016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재현됐다 / 사진출처. WIX 홈페이지이 조각품을 당시 한 사진작가가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옮겨오다가 세관에서 금속 상품으로 분류하면서 엄청난 세금을 물어야 했고 이에 작가가 법원에 이의를 신청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원래 면세품으로 신고했으나 그것을 세관은 예술품으로 보지 않았던 것. 이를 미국으로 옮기려 한 사람은 에드워드 스타이켄으로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부장을 맡았고 보그 같은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미국의 대표적인 픽토리얼리즘의 대가로 칭송받게 되는 인물이다. 1926년 스타이켄이 옮기려 했던 조각품은 그의 절친인 루마니아 출신 작가 브랑쿠시의 것이었다. 그중 관세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공간 속의 새’. 당시 시대 상황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미니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청동 조각으로 완성되었고, 고도로 함축적인 모양의 이 예술품은 일반에겐 당시 예술의 바운더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주방용품으로 분류되었던 브랑쿠시의 작품은 마르셀 뒤샹 및 여러 예술가의 탄원을 거쳐 결국 판사의 결정으로 관세를 면제받게 되었다.
이 작품은 브랑쿠시가 갑자기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 연원을 따라 올라가면 그가 태어난 루마니아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19세기 초반 루마니아의 전설의 새 마이아스트라가 그 주인공이다. 이 새는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마법의 새로 눈부신 깃털을 가졌고 브랑쿠시에게 어떤 모티프로 작용해 '공간 속의 새’로 형상화된 것이다. 눈부신 황금빛 깃털은 황동 재질을 소재로 표현되면서 브랑쿠시의 작품은 새로운 예술로 태어났다.
현대 조각의 거장 콩스탕탱 브랑쿠시의 '공간 속의 새'(1928)음향 분야는 과학과 이론을 기반으로 하지만 실증과 리스닝, 그리고 디자인을 통해 상용화된다. 케프의 Blade를 처음 보았을 때 그 형상은 마치 어느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을 법한 조형물을 연상시켰다. 쭉 뻗은 몸매에 옆에서 보면 마치 칼날이나 날개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것에서 소리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었고 그것은 디자인이 멋진 스피커 중 하나가 아니라 거대한 조형 예술품인데 음악도 재생할 줄 아는 그 어떤 것이었다.케프 Blade의 디자인은 바로 현대 조각의 창시자 브랑쿠시의 작품 ‘공간 속의 새’에서 영감받은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를 디자인한 건 세계적 디자이너이자 미국 뉴욕에서 에코 디자인을 이끌고 있는 에릭 챈이다. 뮤온에서 러브그로브와 일했던 케프가 Blade에선 또 다른 탑 클래스 디자이너와 협력한 것. 단순히 ‘공간 속의 새’라는 희대의 예술품의 모양에서 영감을 얻는 것으로 좋은 스피커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리도 나오는 멋진 조형물이 아니라 멋진 디자인에 더해 뛰어난 사운드를 가진 스피커여야 한다. 그것이 Blade다.
케프의 Blade One Meta. 케프 Blade의 디자인은 현대 조각의 창시자 콩스탕탱 브랑쿠시의 '공간 속의 새'에서 영감받았다. 사운드는 물론 디자인까지 뛰어난 스피커다.하이엔드 오디오의 깃발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확장된 데엔 예술의 힘이 지대했다. 그래서 유럽 여러 나라에선 오디오와 예술이 만난 경우는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스위스 하이엔드 브랜드 골드문트의 스피커 Apologue는 전대미문의 존재로 지금도 회자된다. 이 스피커의 역사는 1987년으로 올라간다. 채널당 총 다섯 개의 캐비닛으로 분리된 이 스피커는 출시와 동시에 경악할만한 디자인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이탈리아의 클라우디오 로타 로리아가 디자인한 이 스피커는 기하학적 금속 프레임 안에 비대칭 알루미늄 캐비닛 다섯 개를 매달아 놓았다. 음향적인 부분과 안정성에 더해 현대적 미학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이 스피커는 당시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될 정도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스위스 하이엔드 브랜드 골드문트의 스피커 아폴로그(Apologue)의 SE 모델그리고 정확히 이 스피커는 25년 후에 애니버서리 버전으로 재등장하며 이때는 오리지널의 3웨이에서 6웨이로 확장되고 6개의 앰프가 탑재되어 총 3800와트 출력을 자랑하는 액티브 스피커로 진화했다. 그리고 올해 Apologue는 'Apologue Ultimate Pinel et Pinel & Cyril Kongo’ 에디션으로 다시 등장했다. 이름이 복잡해진 데엔 이유가 있다. 고급 트렁크 제작 브랜드 ‘Pinel et Pinel’과 협업을 통해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뒤에 'Cyril Kongo’가 붙은 이유는 프랑스 출신으로 일명 거리의 예술가로 불리는 시릴 콩고의 작품들이 스피커 표면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에디션은 트위터 한 개와 슈퍼 트위터 한 개, 그리고 7인치 미드레인지 두 개와 12인치 우퍼 두 개를 사용했다. 게다가 트위터 등 모든 드라이브 유닛에 각각 별도의 앰프를 장착해 구동하도록 설계했다. 트위터에 300와트, 미드레인지에 300와트 앰프 두 개, 그리고 베이스 우퍼에 700와트 이런 식이다. 결국 이 스피커는 6웨이 액티브 스피커로 태어났다.
흥미로운 건 무엇보다 외부 마감이다. Pinel et Pinel은 파리 아틀리에에서 만든 16미터 길이의 가죽을 사용해 한쪽 스피커마다 약 15개로 나누어 입혔다. 여기에 그래피티의 연금술사 시릴 콩고가 모두 개별적으로 물감을 칠해 완성했다. 에르메스 같은 브랜드와 작업하면서 그래피티와 럭셔리 디자인을 연결한 그는 이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하이엔드 오디오와 접목하면서 창조적 감성을 일깨우고 있는 모습이다.
아폴로그(Apologue)의 'Ultimate Pinel et Pinel & Cyril Kongo’ 에디션. 고급 트렁크 제작 브랜드 'Pinel et Pinel'과 아티스트 '시릴 콩고'와 합작으로 탄생했다.'하이엔드 오디오’라는 말이 시대의 흐름과 함께 너무 무책임하게 남발되고 있다. 말 그대로 하이엔드 오디오는 돈과 관계없이 극한의 사운드를 추구한 음향 기기다. 하지만 여기서 생략된 내용이 있다. 일반 가전과 달리 음향은 물론이며 디자인, 인터페이스 등에 있어서도 음악 애호가에게 그 이상의 진보적이며 창의적인 감흥을 얻을 수 있는 오디오라야 한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가치, 반세기가 넘어도 여전히 그 아름다움이 퇴색되지 않는 디자인과 소리. 되레 그 옛날의 JBL 파라곤 같은 오디오가 더 하이엔드 오디오에 걸맞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케프 Blade나 골드문트 Apologue는 지금 시대에 하이엔드 오디오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흔치 않은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