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혼란에 차세대 원전 개발 무산…업계 "겨우 살아났는데 다 죽을 판"

미래산업 R&D 예산 '줄삭감'

원전업계, 사업 올스톱 위기
민주당 집권땐 탈원전 회귀 공포
체코 원전 본계약 악영향 우려

'게임체인저' SFR 예산 감액
IT업계도 "에너지 안보 불안
전력 피크아웃 막을 건 원전뿐"
더불어민주당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개발의 필수 인프라인 차세대 원전 예산을 감액했다. 산업계 등에서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이 훼손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국회가 공전하면서 예산 협상이 사실상 중단됐기 때문이다.

9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년 새로 편성한 ‘민관 합작 선진원자로 수출 기반 구축사업’ 예산 70억원을 7억원으로 90% 삭감했다. 이 사업은 기업과 정부가 함께 4세대 원전인 소듐고속냉각로(SFR)를 설계하는 것이다. SFR은 해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미래 에너지원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이 20년 전부터 개발하는 등 해외에선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현대건설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지난 6월 양해각서(MOU)를 맺고 SFR을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빌 게이츠의 SFR 개발 기업 테라파워에 2억5000만달러를, HD한국조선해양은 3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도 SFR 예산은 감액이 아니라 증액돼야 한다는 게 산업계 의견이다.

정보기술(IT) 업계도 원전 예산 삭감을 우려하고 있다. AI 시대 전력 사용량 폭증으로 인한 피크아웃을 막을 방법은 차세대 원전뿐이어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등 해외 빅테크는 폭증하는 AI 전력을 감당하기 위해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에 앞다퉈 뛰어들었다.그러나 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원전 카르텔이 모여 결정한 사업’이라며 SFR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는 SMR 제작지원센터 구축 사업 예산을 54억원에서 0원으로 전액 삭감했다. SMR은 에너지 전문가인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반도체 전문가인 이종호 전 장관이 가장 강조한 미래 산업 필수 에너지원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고사 위기에 내몰렸던 원전업체들은 비상계엄 이후 정권 교체로 정책 방향이 또 급선회할 수 있다는 우려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남 창원에서 원전 냉각재 펌프 등을 생산하는 A업체 대표는 “원전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윤석열 세력’으로 묶여 사업이 올스톱할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했다.

체코 원전을 둘러싼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현재 체코 원전 사업은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한 ‘팀코리아’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내년 3월 최종 계약을 앞두고 있다. A대표는 “원전 예산을 삭감했다는 것 자체가 신뢰 하락으로 이어져 본계약 체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그야말로 국가적 손해”라고 혀를 찼다. 경남 김해에서 원전 핵심 부품을 생산해 대기업에 납품하는 B업체 대표는 “이제는 다시 일어설 의욕조차 안 생긴다”며 “직원들이 벌써 동요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라며 말끝을 흐렸다.복지성 사업 예산은 어김없이 늘어났다. ‘디지털 격차 해소 기반조성’ 사업은 56억원에서 333억원으로 여섯 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역 연구기관별 나눠먹기 예산 역시 애초 정부 제출안보다 일제히 늘어났다. 광주과학기술원은 연구운영비와 시설지원비를 합쳐 249억원을 더 받게 됐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과 UNIST(울산과학기술원) 예산도 각각 69억원, 66억원 늘어났다.

4500억원 규모로 신설된 ‘제조업 인공지능 전환(AX) 지역 특화 선도사업’은 내년 정부 예산안엔 없던 민주당 자체 편성 예산이다.

이해성/강경주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