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 칼럼] 왜 매번 희생은 경제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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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오판으로정치 실패의 뒷감당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경제 몫이 됐다. 대통령의 오판 하나로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국격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정부가 경제 회복을 위해 애써온 일들도 수포로 돌아갔다. 뛰는 환율을 잡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허물며 달러당 1400원 밑으로 잡아두려던 노력이 물거품이 됐고, 한국은행이 환율 리스크에도 당장 무너지는 경제 회복이 급해 기준금리를 15년 만에 2연속 인하한 효과도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정부가 밸류업 한답시고 기업들의 팔을 꺾어 수조원을 투입해 간신히 끌어올린 주가도 불과 며칠 만에 박살이 났다. 체코 원전 수주, K방산 수출이 위험하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소리가 딱 이 짝이다. 미국 경제미디어 포브스가 “대통령의 계엄 시도 대가를 5100만 국민이 할부로 치르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는데, 지금 우리 상황이 예고대로 흘러갈 판이다.
모든 게 한순간 무너져
탄핵이든, 자진 하야든
상당 기간 혼란 불가피
정치로부터 경제 분리해
여·야·정 비상경제팀 꾸려 대응해야
정종태 한경닷컴 대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라고 국민의 손으로 뽑아준 대통령이 거꾸로 국가의 리스크요, 국민의 안위를 무너뜨리는 존재가 될 줄을 누가 미처 생각했을까. 더욱 아찔한 건 겨우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려다. 경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인데, 그 불확실성은 지금 최고조에 달해 있다. 여당 대표와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장’을 호기롭게 외쳤지만 그 질서 있는 퇴장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또 그걸 내놓는다고 해서 혼란이 잠잠해질 것인지 모든 게 불확실하다. 야당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어코 탄핵을 밀어붙일 태세고, 당장 며칠 안에 여론이 수긍할 수 있는 질서 있는 퇴장 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번주 토요일 탄핵은 불가피해 보인다.앞으로 벌어질 혼란, 이로 인해 경제가 치러야 할 비용은 상상하기 힘들다. 시장에서 당장 우려하는 건 제2의 외환위기다. 외국인은 지금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한국을 투자 위험국으로 지목하고 있다. 여차하면 언제든지 돈을 빼갈 태세다. 외환보유액 4000억달러가 안전판이라고 하지만, 그건 우리가 이만큼 보유하고 있다는 위세용이지 그 둑이 무너지는 순간 환율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외자 이탈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기업들이 직접적으로 볼 피해는 이미 가시화했다. 불안을 느낀 해외 바이어의 주문이 취소되거나 투자 계약이 보류 또는 파기되는 사례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불확실한 대외변수 때문에 내년 사업계획도 못 짜고 있는 판국에 전혀 예측 못한 대형 폭탄이 터지니 망연자실이다. 정치는 사고치고, 그 피해는 경제가 뒤집어쓴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국민들은 또다시 진지하게 묻는다. 정치 실패의 책임을 언제까지 경제가 져야 하냐고?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 이른바 정치 전문가란 사람들이 대통령제 폐지-내각제 개헌 등을 외치지만 속어를 쓰자면 ‘불싯(bullshit)’이다. 정치 제도를 아무리 그럴듯하게 만들어놔 봤자 무슨 소용인가. 3류, 4류 정치인들이 그대로 있는 한 아무리 멋진 제도도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돼버릴 텐데….탄핵으로 가든, 대통령의 하야 후 거국내각으로 가든 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 최선이겠지만 어느 경우든 권력 다툼이 치열할 게 뻔하고, 상당 기간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새로운 리더십을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에게 급한 것은 무너지는 경제부터 붙잡는 것이다. 안 그래도 사방이 악재로 가득하고 모든 지표는 역대급 내리막길인데 여기서 더 무너지면 ‘20년 장기불황’ 우려가 현실로 닥칠지 모른다.
다음 리더십을 세울 때까지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대응했으면 한다. 정치 혼란과 별개로 경제는 정상 궤도로 굴러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경제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여야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외교, 통상까지 포함한 비상경제대응팀을 꾸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시급히 봉합하지 않으면 큰일 날 현안부터 처리해야 한다. 예산은 마중물이다. 지금처럼 내수가 극도로 얼어붙은 상황에선 마중물 집행은 빠를수록 좋다. 개혁과제 법안 처리는 기대도 안 한다. 기업 발목 잡는 법안이라도 제발 스톱해달라는 게 시장의 간절한 요구다. 정치가 이렇게까지 민폐를 끼칠 줄은 예상 못했지만, 국민들은 이제 정치에 기대를 접었다. 오로지 희망하는 것은 하나! 사고 치지 말고 제발 가만히 있으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