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 오거나이저는 '노마드'다
입력
수정
[arte]박준수의 아트페어 길라잡이아트페어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다른 아트페어는 놀러 가면 좋지만, 일하러 가면 무척 고되다. 멀리 해외까지 출장을 간 경우에는 더욱 심하다. 한 개 갤러리라도 더 만나려고 분 단위로 미팅을 잡고 이들에게 아트페어에 나와 달라고 설득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남의 아트페어에서 이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실례라는 것을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최 측 입장에서는 한 명의 컬렉터라도 더 만나려고 비싼 부스비를 내면서 아트페어를 열었기 때문이다. 이후 남의 아트페어에서는 갤러리들과 가벼운 인사와 안부만 나눴다.
해외 출장과 2025년 주요 국내외 아트페어 일정
아트페어에 나오라고 권유하고 설득하는 것은 갤러리로 직접 방문하는 게 더 효과적이고 좋다는 사실을 깨닫고 갤러리 문턱이 닳도록 다녔다. 개인적으로는 아트페어보다 갤러리에서 보는 전시가 더 좋아서 갤러리 방문을 즐겼지만, 각각의 갤러리를 방문 하는 일은 다소 번거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정성을 들여야 한 개의 갤러리라도 더 참가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일을 해보면 금방 깨닫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트페어 오거나이저들은 일 년 내내 전 전국 방방곡곡을 넘어 전 세계로 갤러리를 찾아 떠도는 유목민처럼 살게 된다.

아트페어가 너무 많다 보니 겹치지 않게 아트페어 오픈 일정을 잡는 것도 어렵다. 아트페어 전후로 출장 일정을 잡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아트페어에는 갤러리 뿐 아니라 컬렉터와 큐레이터, 기획자를 비롯한 많은 관계자가 모이기 때문에 그들을 한 번에 만나기 위해서라도 아트페어 참석은 필수적이다.
2025년 국내외 주요 아트페어 일정은 아래와 같다.

어떤 성향의 갤러리인지 파악하면, 갤러리가 아트페어 참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작가가 젊고 작품 가격이 높지 않은 갤러리는 개인 컬렉터와 대중적 인지도를 쌓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작품 가격이 높고, 이미 유명세가 있는 작가를 많이 다루는 갤러리는 미술관이나 재단과의 연결을 원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면 좋다.
타깃이 된 갤러리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출장 전에 연락해서 미리 미팅을 잡는 것이 좋다. 하지만 모르는 갤러리에게 무턱대고 연락하면 친절하고 정중한 거절을 받을 수 있다. 요즘처럼 아트페어가 많아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메이저 갤러리 입장에서는 아트페어 참여를 권유하는 연락이 너무 많아 모든 아트페어에 참가가 어렵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도 일이다. 아트페어의 국제적 인지도가 높지 않은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그렇기 때문에 이미 자신이 운영하는 아트페어에 참가했던 갤러리 중에 해당 지역의 다른 갤러리가 있다면 그 갤러리를 통해 타깃 갤러리 담당자를 소개받아 연락하거나,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관계자를 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해외에 나가 있는 한국문화원이나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많은 갤러리를 소개받기도 했다.
갤러리에 대한 조사를 마치면 출장 준비를 한다. 출장 인원을 정하고, 항공과 숙박을 예약한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니, 출장 일수와 인원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움직이다 보니 출장지에서의 일정과 업무는 항상 빠듯하다. 현장에서 변수를 고려해 예비 인력이 여러 명 함께 가면 좋겠지만, 출장 인원이 빠진 만큼 사무국에서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 인원에 공석이 생기니 예비 인력이 없는 경우에는 서로 업무에 부하가 걸린다.
팀원 간에 신뢰가 없으면, 이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사무국에 남은 인력은 출장팀이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출장팀은 분 단위로 쉴 틈 없이 움직이느라 공항, 컨벤션, 갤러리 말고는 관광 명소 한 번 갈 수 없는 노고를 모르고 '해외 다녀와서 좋겠다'는 말을 들으면 서운해진다. 실제로 나도 저 멀리 마이애미비치까지 출장을 가서 바닷가에 발 한 번 못 담가보고, 컨벤션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만 보다 돌아온 경우도 있다. 여담이지만, 해외 출장은 결코 직원들에게 주는 베네핏이 아니다.출장을 가보지 못한 직원들은 해외 출장이 회삿돈으로 해외여행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한 번이라도 출장을 가 본 직원들은 출장을 가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연봉을 높여주고 연차를 잘 챙겨줘서 쉴 때 자유의지로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베네핏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자료를 준비한 후 갤러리나 컬렉터, 미술 관계자들과 만나면 나눠줄 선물도 준비해야 한다. 아트페어 때 제작한 에코백은 기본이고, 센스있는 굿즈나 스티커 같은 것으로 패키지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아시아권 갤러리를 만날 땐 잘 만든 젓가락을 선물하기도 하고, 한국의 특산물이나 한국적인 요소가 들어간 기념품, K-뷰티에 힘입어 코스메틱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It’s better to have it and not need it than don’t have it and need it.“
의역하자면 필요하지 않게 돼 안 쓰더라도, 준비해 놓는 것이 아무런 준비를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다. 출장뿐만 아니라 모든 업무에서도 참으로 들어맞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