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를 만나러 가는 순례길 일번지 '몬세라트'

[arte] 유승준의 내 인생의 가우디 ②

건축 거장 가우디가 영감을 얻은 곳이자
조각의 거장 수비라치가 작품을 남긴 곳,
스페인 카탈루냐 몬세라트(Montserrat) - 1부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 중 하나로
카탈란 길(Camino de Catalán)이라 불려

'천국의 계단'으로 알려진 수비라치의
'라몬 룰 기념비(Monumento a Ramon Llull)'와
성 조르디(Saint Jordi)의 조각상 볼 수 있어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다

돌들이 구름 아래서 헤엄치고 있었다. 푸른 하늘 밑에 불쑥불쑥 돋아난 하얀 돌들이었다. 기차는 직진하고 있었으나 내 마음은 벌써 산 위를 날았다. 에스파냐 광장 역에서 몬세라트행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려왔을 때 갑자기 창밖에 펼쳐진 경이로운 풍경이 펼쳐졌다.몬세라트 역(Monistrol de Montserrat)에서 산악열차로 옮겨 타고 수도원으로 향했다. 가파른 돌산을 기차를 타고 굽이굽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약 20분 동안 절경이 꿈결처럼 시야를 스치고 지나갔다. 열차에서 내려 바깥으로 나오면 수도원이 눈에 들어온다.
안개가 드리운 몬세라트의 아침이 신비롭다. 성모 마리아 수도원의 아치형 입구에 아직 전등불이 꺼지지 않았다. 한밤중과 이른 새벽 수도원을 찾아 홀로 조용히 기도하는 순례자들도 많다. / 사진. ⓒ김혜경
카탈루냐인들은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고 신앙심을 회복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 기도한다. 가우디 역시 틈틈이 산에 올라 영성을 수련하면서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멀지 않기에 관광객들은 당일치기로 이곳을 다녀간다. 해가 뜬 뒤 올랐다가 해지기 전에 내려가려면 빠른 걸음으로 다녀야 하고 때로는 뛰어다니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몬세라트의 진면모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몬세라트는 며칠 묵으면서 천천히 걷고 사색하고 묵상하는 곳이다. 가우디가 체험했던 깊은 영성과 예술혼을 조금이나마 직접 느껴볼 수 있는 현장이다. 그래서 가우디를 만나려면 여기를 먼저 와야 한다. 몬세라트는 가우디와 함께하는 순례길 일번지다. 시간이 없다면 최소한 하룻밤이라도 묵는 게 좋다.

먼저 자연을 마주하고 싶었다. 몬세라트의 심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산 호안(Sant Joan, 성 요한) 성당으로 올라가는 푸니쿨라(케이블카)를 타고 협곡 속에 멀어지는 수도원을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상부에 있는 정거장에 도착한다. 산 호안 성당 방향으로 잘 닦인 길이 보인다. 꼭 등산화를 신고 배낭에 음식과 음료수를 챙겨두어야 한다. 여름이라면 뜨거운 태양을 가릴 수 있는 모자도 필수다. 산 좀 탄다는 사람은 최고봉인 산 헤로니(Sant Jeroni, 성 히에로니무스, 1,236m)까지 갈 수도 있겠으나 등산이 아닌 순례가 목적이라면 산타 막달레나(Santa Magdalena,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전망대까지만 갔다 와도 충분하다. 쉬엄쉬엄 걸으면 왕복 두어 시간 정도 걸리지만, 음악도 듣고 기도도 하며 걷는다면 시간을 잴 필요가 없다.
산 호안 성당으로 가는 길. 몬세라트의 봉우리들은 톱니처럼 날카롭다기보다는 버섯이나 뭉게구름처럼 다정하고 편안하다. 왼쪽 봉우리 아래 산 호안 성당 터와 기도처가 보인다. / 사진. ⓒ김혜경
산봉우리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순례자들. 크고 작은 봉우리들의 파노라마 속에 잠기면 벅찬 감격이 밀려온다. 한여름 땡볕 아래 우리는 그늘을 찾지만, 유럽인들은 드러눕는다. / 사진. ⓒ김혜경
멋진 산세를 만끽하며 산허리를 걷다 보면 능선을 따라 자그마한 산 호안 성당 부속 건물이 나타난다. 바위 위에 건축된 기도처다. ‘카페야(Capella)’는 카탈루냐어로 ‘작은 성당 또는 예배소’라는 뜻이다. 수도자들이 이곳을 찾아 신과 대화했다. 조금 더 오르면 뒤 봉우리 자락에 1812년 프랑스 군대의 침공으로 파괴된 산 호안 성당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가파른 절벽과 난간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좁다란 길을 따라 무너진 돌담, 계단, 샘물처럼 고여 있는 돌로 된 수조, 테라스 등 산재한 잔해를 볼 수 있다. 은둔의 수도자들이 기도하던 바위굴도 보인다. 악천후로부터 보호하고 좋은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산기슭에 천연 동굴을 이용해 지은 성당이었기에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산 아래 정경이 운치 있기 그지없다.
산 호안 성당 기도처. 세례 요한을 기념하기 위해 빛이 침투하는 얕은 자연 동굴에 자리한 바위 쉼터를 이용해 지어진 본래의 성당이 파괴된 후 19세기 들어 새로 지은 건물이다. / 사진. ⓒ김혜경
20세기 들어서도 몬세라트에는 계속해서 시련이 밀어닥쳤다. 스페인 내전이 벌어지는 동안 23명의 수도사가 목숨을 잃었다. 이후 40년 동안이나 무도한 철권통치를 자행한 프랑코 총통의 독재에 저항하던 사람들이 몬세라트로 숨어들었다. 수도사들은 이들을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항거의 선봉에 섰다. 독재정권이 카탈루냐어 사용을 금지했을 때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카탈루냐어로 미사를 드렸다. 몬세라트가 카탈루냐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건 이 때문이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크고 작은 동굴을 보며 그때 수도사들과 저항 세력들이 여기 숨어지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외국 군대에 의해 폭격당하고 독재자에 의해 박해받으면서도 그들은 도망하지 않고 이곳에 숨어 무슨 기도를 드렸을까?긴 돌계단을 오른 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쯤이면 산타 막달레나 성당 터가 나온다. 이곳 역시 1812년 프랑스 군대의 침략 때 파괴되었다. 전망대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왜 여기까지 올라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신이 빚은 기묘한 선과 원초적 색의 어울림에 탄성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다. 먼 옛날 6만여 개의 해저 융기로 이루어졌다는 울퉁불퉁한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위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수평으로 난 잔잔한 물결무늬가 눈에 띈다. 암반으로 굳어지기 전 수면의 출렁거리는 힘이 돌의 표면에 쓸린 흔적이라고 한다.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며,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
가우디의 말이 떠올랐다. 그가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이곳에 오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르셀로나 그라시아 거리 명물인 카사 밀라의 옥상. 바위가 파도치는 듯한 이 건물을 지키고 서 있는 파수꾼은 환기구와 굴뚝들이다. 가우디가 몬세라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 사진. ⓒ김혜경
천국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등산이 나와의 투쟁이라면 하산은 나에 대한 배려다. 사색의 시간이다. 어느 시인은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내려갈 때 보았다고 했다.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면 다시 푸니쿨라 정거장이다. 하부 정거장으로 내려갈 수도 있고, 산 미겔 성당 방향으로 직진할 수도 있다. 천천히 30여 분 내려가면 돌과 흙으로 지은 아담한 산 미겔 성당이 등장한다. 그림 같은 집이다. 바깥에 앉아 기도할 수 있는 의자도 있다. 이정표를 따라 걷다 보면 드디어 절벽 위에 우뚝 선 검은 십자가가 보인다. 산 미겔 전망대(Mirador de Sant Miguel)다.
까마득한 절벽 위의 산 미겔 전망대. 수도원 입구의 아바트 올리바 광장에서 연결되는 길도 있고,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 산 호안 성당 맞은편 쪽으로 내려오는 길도 있다. / 사진. ⓒ김혜경
산 미겔은 성 미카엘을 뜻한다. 성경에 나오는 대천사 미카엘의 스페인어 표기다. “누가 하느님 같으랴?”라는 뜻으로, 천국에서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에 맞서 싸울 당시 그가 외쳤던 말이라고 한다. 사탄의 호적수로 여겨지는 미카엘을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의 수호천사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몬세라트 전망이 기막히다. 산에 파묻힌 수도원이 아스라하다. 3층 기단 위에 철 십자가가 장엄하게 서 있다. 몬세라트를 수호하고 있는 듯하다. 십자가에는 꽃이 매달려 있고 각국 언어로 글이 적혀있다. 자신들의 간절한 소원을 담았을 터이다. 떨어지지 않게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기에 사람들은 안심하고 인생 사진을 찍는다.
산 미겔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 숨 막힐 듯한 자연의 대서사시다. 몬세라트와 수도원과 가을 그리고 석양이 완벽하게 어울린다. 발아래 펼쳐진 도시의 자태가 더 작게만 보였다. / 사진. ⓒ김혜경
여기서 수도원까지는 완만한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Via Crucis)’로 바위뿐인 전망대 길과 달리 꽃과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다. 길가에 여러 조각작품이 늘어서 있어 걸음이 자꾸만 멈춰진다. 어깨를 짓누르는 시름과 상념이 남아 있다면 떨쳐버리기 적절한 시간이다. 수도원에 다다랐을 무렵 첼로를 연주하는 동상 하나가 보인다. 첼로의 성자 또는 역사로 불리는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다. 1976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세웠다. 그는 헌책방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발견해 12년 동안 연습한 후 발표함으로써 세상에 명곡을 알린 일화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카탈루냐인들에게 그는 위대한 음악가인 동시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기개 있는 민족주의자였다. 프랑코 정권 당시 카잘스는 독재의 폭압에 저항해 결연히 맞서 싸웠다. 그는 프랑코 정권을 인정하거나 독재자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나라에서는 연주하지 않았다. 또한 어려운 노동자들에게도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1달러짜리 연주를 이어갔으며, 프랑코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에게는 무료로 연주를 해주었다. 프랑코 정권을 피해 해외로 도피하기 전 몬세라트 수도원에서도 연주를 많이 했다. 조국을 그리워하며 타향에서 눈을 감은 그는 끝까지 신념과 지조를 잃지 않았던, 첼로 소리처럼 굵직한 예술가였다.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카탈루냐 출신 예술가 중 특별히 첼리스트 카잘스의 동상을 세워 기념한 것은 그가 카탈루냐의 독립을 추구하는 카탈루냐 민족주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 사진. ⓒ김혜경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만난 가우디와 수비라치

산책로를 지나 수도원 정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널찍한 광장이 나온다. 1025년 몬세라트 수도원을 건립한 아바트 올리바(Abbot Oliba, 971~1046) 주교의 동상이 있는 광장이다. 산악열차 정거장 쪽으로 내려가다 관광 안내 센터를 지나면 돌로 만든 십자가 하나가 눈에 띈다. 산 미겔 십자가(Creu de Sant Miguel)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수난의 파사드를 만든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Josep Maria Subirachs, 1927~2014)가 1962년에 설치한 작품이다. 주제는 관통과 긴장이다. 십자가 위를 감싸고 있는 사각형 돌이 한 개의 청동 심으로 이어져 있고, 아래를 감싸고 있는 갈라진 돌이 두 개의 청동 심으로 이어져 있다.
530cm 높이의 산 미겔 십자가. 옆으로 못이 박힌 십자가를 통해 예수가 겪은 고난의 의미를 처절하게 표현했다. 아래에 ‘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글이 각국 말로 새겨져 있다. / 사진. ⓒ김혜경
걷다 보면 보도블록과 이정표에서 낯익은 가리비 모양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가 산티아고 순례길(El Camino de Santiago)인 까닭이다. 산티아고는 성인을 뜻하는 ‘San’과 야고보의 존칭인 ‘Diego’의 합성어로 성 야고보를 의미한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에서 활동하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헤롯왕에게 참수당해 순교자가 됐다. 제자들은 그의 시신을 수습해 배에 태워 보냈는데, 마침 배가 스페인 북부 해안에 닿았다. 놀랍게도 야고보의 시신은 수많은 가리비 껍데기에 싸여 손상되지 않은 채 보존돼 있었다. 이로인해 가리비 껍데기는 야고보의 상징이 됐으며, 지금은 그가 복음을 전하려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 순례자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출발지에 따라 다양하다. 대표적인 길로는 프랑스 루트, 스페인 루트, 영국 루트, 포르투갈 루트가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길은 프랑스 남부 도시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야고보의 유골이 안치된 스페인 갈리시아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걷는 약 800km의 코스다. 기독교인들은 물론 종교가 없는 사람들조차 일생에 꼭 한 번 걸어 보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길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몬세라트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 중 하나다. 이 길을 카탈란 길(Camino de Catalán), 즉 카탈루냐 길이라고 한다. 몬세라트에서 출발해 타레가까지는 77.4km에 달하며, 여기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산타 실리아 데 하카까지는 243km이고, 엘 부르고를 거쳐 사라고사까지는 206km에 이른다.

카탈루냐 사람들이 야고보 사도를 떠올리며 걷던 길이라 생각하니 평범해 보이던 보도블록 위를 한 발짝 두 발짝 내딛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고 헤롯왕에 의해 죽임을 당한 세례 요한을 기리는 성당이 몬세라트 위에 세워져 있고, 사도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한 야고보를 묵상하는 길이 몬세라트 아래 닦여 있다는 것이 의미심장했다.
보도블록에 표시된 노란색의 가리비. 산티아고 순례길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몬세라트 곳곳에 있는 이정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카탈루냐인들은 자신들만의 카탈란 길을 걷는다. / 사진. ⓒ김혜경
이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갑자기 눈앞에 거대한 돌계단이 등장했다. 거칠지만 절도 있게 잘려 나간 직사각형의 돌들이 회전하듯 각기 다른 모양으로 층을 이루고 있다. 바로 아래는 천길 벼랑이다. 맨 위에 놓인 돌 위로 하늘이 닿을 듯하다. 수비라치의 1976년 작품이다. 카탈루냐 출신 조각가인 그는 몬세라트에 여러 작품을 남겼다. ‘천국의 계단(Stairway to Heaven)’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공식 이름은 라몬 룰 기념비(Monumento a Ramon Llull)다. 카탈루냐인들이 존경하는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라몬 룰(1232~1316)은 우주가 돌, 불꽃, 식물, 짐승, 인간, 천국, 천사, 신 이렇게 여덟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이를 반영해 수비라치는 커다란 기단 위에 여덟 개의 계단을 쌓아 천국에 이르도록 한 것이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높이 870cm의 ‘천국의 계단’. 부채꼴처럼 상승하는 다른 계단 모양은 전부 불규칙한데, 마지막 계단만은 완전한 정육면체다. 하느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 사진. ⓒ김혜경
반대편 길로 되돌아가 수도원 정문을 지나 조금 들어가면 왼쪽 벽에 조각상 하나가 나타난다.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인 산 호르헤(Sant Jorge)다. 통상 성 조르디(Saint Jordi)로 불린다.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한 기사 조르디의 전설을 구현했기에 오른손에 삼각형 방패를 왼손에 긴 칼을 들고 서 있다. 역시 수비라치가 만들었다. 재미있게도 이 조각상은 음각으로 만들어져 있어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기사의 눈이 보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우디는 조르디의 전설을 카사 바트요 안과 밖에 모두 표현해 놓았으며, 수비라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내부에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조각상을 설치해두었다.사제 간이었던 요한과 야고보가 죽은 뒤 몬세라트에서 다시 만났듯, 가우디와 수비라치도 사후에 몬세라트에서 조우했다. 생전에 같은 하늘 아래서 볼 수 없었던 건축과 조각의 두 거장을 만나게 해준 곳이 몬세라트다. 수비라치는 가우디의 예술혼이 살아 있는 이곳에 자기 흔적을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몬세라트는 삶과 죽음이 천연히 교차하는 공간이다.
2m 높이로 세워진 성 조르디 동상. 높은 부조와 낮은 부조가 번갈아 나타나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단순하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가 특유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하다. / 사진. ⓒ김혜경
유승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