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의료혁신…몇 분 만에 암 진단·치료 현실 됐다

생명硏리포트 - 강태준 바이오나노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병원에서 몇 분 만에 암을 진단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제 이런 이야기가 더 이상 공상이 아니게 됐다. 유전자를 교정하고 편집하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 기술이 코로나19 유행 이후 급속히 발전해 진단기술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이 기술은 전염병 대응에서 암 진단, 그리고 더 넓은 의료 분야까지 우리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꾸고 있다.크리스퍼는 본래 세균이 바이러스를 방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에서 영감을 받은 기술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크리스퍼 기반 진단 기술은 그 효율성과 신뢰성을 입증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신속히 검출할 수 있음은 물론 ‘셜록’(SHERLOCK)과 ‘디텍터’(DETECTR) 기술은 1시간 만에 결과를 제공해 기존 검사(PCR 방식)과 견줄 만한 성능을 보였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데 기여한 것은 물론 암과 같은 복잡한 질환의 조기 진단에도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크리스퍼 기술은 간단한 과정과 높은 정확성으로 의료 현장에서 더욱 편리하게 쓸 수 있다. 가령 휴대용 크리스퍼 키트를 통해 의사는 현장에서 바로 샘플을 분석하고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은 환자에게 빠른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최근에는 크리스퍼를 활용한 ‘스코프’(SCOPE)라는 기술이 개발됐다. 이 기술은 체액(혈액, 소변)에 든 세포 외 소포체에서 유전자를 검출해 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다.

스코프는 기존 PCR 기술보다 민감도와 정확도가 높으며, 단 40㎕(마이크로리터)의 샘플만으로도 초기 암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스코프는 암과 관련된 유전자 돌연변이를 정밀히 분석해 암 조기 진단뿐 아니라 치료 반응 모니터링, 재발 가능성 평가에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초기 비소세포 폐암 진단에서 스코프는 높은 민감도를 보여 기존 진단법보다 적은 샘플로도 정확한 결과를 제공한다. 대장암과 같은 다른 암 유형에서도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입증했다.스코프는 소형화된 장비로 설계돼 의료진이 병원 외부에서도 간편하게 쓸 수 있다. 이는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 공중보건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크리스퍼 기술은 암 외에도 다양한 질병에 적용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와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의 초기 진단이나 항생제가 듣지 않는 세균의 유전적 변이 분석이 대표적이다. 또 농업과 환경 분야에서도 크리스퍼 기술이 기여하고 있다. 병원체를 탐지하거나 유전자 변형 작물의 특성을 확인하는 데 사용되며, 이는 식량 안보와 생태계 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크리스퍼 기반 진단 도구는 전 세계 다양한 산업과 분야에서 그 잠재력을 입증하고 있다.

크리스퍼 기술은 빠르고 정확한 진단으로 정밀 의학의 시대를 열고 있다. 이 기술은 단순히 질병을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질병의 진행 상태를 예측하고 치료 효과를 모니터링하며 환자 맞춤형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으로의 진단 기술은 질병의 조기 발견, 치료 반응 추적,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발전할 것이다. 크리스퍼 기술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 있으며 우리가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미래를 맞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