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가 단숨에 곡 붙인 괴테의 ‘마왕’ [고두현의 아침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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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괴테
누가 늦은 밤 말을 달려?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 아이를 품에 안고,
품에 안고 달리네, 따뜻하게.아가, 무엇 때문에 떠느냐?
아버지, 마왕이 안 보여요?
검은 옷에다 관을 썼는데?
아가, 그것은 안개란다.
“예쁜 아가 이리 오렴!
함께 재미있게 놀자꾸나.
예쁜 꽃이 피어 있단다.
너에게 줄 예쁜 황금빛 옷”
아버지, 아버지, 들리잖아요?
저 마왕이 속삭이는 소리.
진정하거라 진정해, 아가야!
낙엽이 날리는 소리란다.“예쁜 아가 나랑 가지 않을래?
예쁜 내 딸이 너를 기다려.
너와 함께 밤 강가로 갈 거야.
함께 춤추며 노래 부를 거야.”
아버지 아버지 보이잖아요?
마왕의 딸이 서 있는 것이?
아가 아가 보고 있단다.
그것은 오래된 나무란다.
“네가 좋아, 네 아름다운 모습,
네가 싫어해도, 데려가야지.”
아버지 아버지 나를 덮쳐요!
마왕이 나를 끌고 가요!아버지 급히 말을 달리고
그의 품 안에 신음하는 아기.
간신히 집에 이르렀으나
품속에서 아이는 죽고 말았네.
------------------------------ ‘마왕(魔王, Erlkonig)’은 괴테가 서른세 살 때인 1782년에 쓴 시입니다. 소재는 덴마크 설화인 ‘마왕 이야기’이지요. 괴테가 이 얘기를 처음 접한 것은 동시대 독일 문학가 헤르더의 번역서 《마왕의 딸(Erlkonig Tochte)》을 통해서라고 합니다. 덴마크 설화를 담은 이 책에서 영감을 받은 괴테는 환상적이면서도 소설적인 이야기 형식을 빌려 시를 완성했습니다.
작품의 등장인물은 4명이지요. 전반적인 상황을 알려주는 내레이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이, 그 아이를 안고 어둠 속에서 말을 달리는 아버지, 병든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끊임없이 유혹하는 마왕입니다. 음울한 들판을 배경으로 이들의 운명과 슬픔, 비애의 정조를 입체적으로 그려낸 게 특징입니다.
이 작품은 슈베르트의 명곡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슈베르트가 시를 읽고 흥분해서 단숨에 곡을 붙인 게 1815년이었으니 그의 나이 18세 때였습니다. 작곡 당시 일화가 슈베르트의 친구인 요제프 폰 슈파운(Joseph von Spaun)의 서술로 전해져 옵니다.
‘1815년 12월 어느 오후 빈의 힘멜포르트그룬트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슈베르트를 방문했다. 그는 괴테의 시 ‘마왕’을 흥분 상태에서 큰 소리로 읽고 있었다. 책을 한 손에 들고 몇 번이고 방안을 서성거렸고, 그 후 급히 의자에 앉아 무서운 속도로 오선지에 곡을 써 내려갔다.’
슈베르트는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각기 다르게 변주하며 주제를 극적으로 표현하려 했습니다. 이른바 통절형식(가사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른 가락으로 노래하는 것)과 대화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서주의 반주부에 등장하는 말발굽 소리, 아버지의 저음, 공포에 질린 아들의 고음 등을 번갈아 쓰며 음악적 효과를 극대화했지요. 마왕의 음성 부분에 말발굽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처리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신의 음악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괴테의 시에 70여 편이나 곡을 붙였습니다. ‘마왕’의 작품 번호는 1번입니다. 그가 600여 편의 가곡에 활용한 텍스트도 동시대 시인, 작가들의 것이었습니다. 괴테 시 ‘마왕’은 슈베르트 외에 칼 뢰베와 요한 라이하르트의 곡으로도 만들어져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지요.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괴테
누가 늦은 밤 말을 달려?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 아이를 품에 안고,
품에 안고 달리네, 따뜻하게.아가, 무엇 때문에 떠느냐?
아버지, 마왕이 안 보여요?
검은 옷에다 관을 썼는데?
아가, 그것은 안개란다.
“예쁜 아가 이리 오렴!
함께 재미있게 놀자꾸나.
예쁜 꽃이 피어 있단다.
너에게 줄 예쁜 황금빛 옷”
아버지, 아버지, 들리잖아요?
저 마왕이 속삭이는 소리.
진정하거라 진정해, 아가야!
낙엽이 날리는 소리란다.“예쁜 아가 나랑 가지 않을래?
예쁜 내 딸이 너를 기다려.
너와 함께 밤 강가로 갈 거야.
함께 춤추며 노래 부를 거야.”
아버지 아버지 보이잖아요?
마왕의 딸이 서 있는 것이?
아가 아가 보고 있단다.
그것은 오래된 나무란다.
“네가 좋아, 네 아름다운 모습,
네가 싫어해도, 데려가야지.”
아버지 아버지 나를 덮쳐요!
마왕이 나를 끌고 가요!아버지 급히 말을 달리고
그의 품 안에 신음하는 아기.
간신히 집에 이르렀으나
품속에서 아이는 죽고 말았네.
------------------------------ ‘마왕(魔王, Erlkonig)’은 괴테가 서른세 살 때인 1782년에 쓴 시입니다. 소재는 덴마크 설화인 ‘마왕 이야기’이지요. 괴테가 이 얘기를 처음 접한 것은 동시대 독일 문학가 헤르더의 번역서 《마왕의 딸(Erlkonig Tochte)》을 통해서라고 합니다. 덴마크 설화를 담은 이 책에서 영감을 받은 괴테는 환상적이면서도 소설적인 이야기 형식을 빌려 시를 완성했습니다.
작품의 등장인물은 4명이지요. 전반적인 상황을 알려주는 내레이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이, 그 아이를 안고 어둠 속에서 말을 달리는 아버지, 병든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끊임없이 유혹하는 마왕입니다. 음울한 들판을 배경으로 이들의 운명과 슬픔, 비애의 정조를 입체적으로 그려낸 게 특징입니다.
이 작품은 슈베르트의 명곡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슈베르트가 시를 읽고 흥분해서 단숨에 곡을 붙인 게 1815년이었으니 그의 나이 18세 때였습니다. 작곡 당시 일화가 슈베르트의 친구인 요제프 폰 슈파운(Joseph von Spaun)의 서술로 전해져 옵니다.
‘1815년 12월 어느 오후 빈의 힘멜포르트그룬트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슈베르트를 방문했다. 그는 괴테의 시 ‘마왕’을 흥분 상태에서 큰 소리로 읽고 있었다. 책을 한 손에 들고 몇 번이고 방안을 서성거렸고, 그 후 급히 의자에 앉아 무서운 속도로 오선지에 곡을 써 내려갔다.’
슈베르트는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각기 다르게 변주하며 주제를 극적으로 표현하려 했습니다. 이른바 통절형식(가사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른 가락으로 노래하는 것)과 대화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서주의 반주부에 등장하는 말발굽 소리, 아버지의 저음, 공포에 질린 아들의 고음 등을 번갈아 쓰며 음악적 효과를 극대화했지요. 마왕의 음성 부분에 말발굽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처리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신의 음악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괴테의 시에 70여 편이나 곡을 붙였습니다. ‘마왕’의 작품 번호는 1번입니다. 그가 600여 편의 가곡에 활용한 텍스트도 동시대 시인, 작가들의 것이었습니다. 괴테 시 ‘마왕’은 슈베르트 외에 칼 뢰베와 요한 라이하르트의 곡으로도 만들어져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지요.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