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즈가 고온에 강한 토마토를 연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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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전반적 기온 상승과 잦아진 폭풍 등 이상기후 현상으로 기후 적응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미 식품 기업은 고온과 가뭄에 견디는 품종을 개량하기 위해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상기후에 대응하는 인프라 시스템 구축도 중요한 과제다.[한경ESG] ESG NOW - 글로벌 기업의 기후 적응 사례 고온에 강한 토마토, 기후 저항성이 높은 아라비카 커피 품종 개발 등은 기후 적응(climate adaptation)의 대표적 사례다. 기후 적응이란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할 위험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비해 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기후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 일련의 노력을 뜻한다. 즉 기후변화를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기후에 적응하는 최적의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기후변화에 적응해 사람과 생산물이 지속적으로 가능케 하는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기후 적응은 이미 국가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세계적 보험회사 스위스리는 2050년까지 지구 기온이 3.2°C 상승하면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18%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의 연방 기관들은 2024년 중반 행정명령 14008에 따라 ‘기후 적응 및 회복력 기획(CARF)’을 일제히 발표했다. 한국도 저탄소녹색성장 기본법에 따라 2021년부터 2025년까지 ▲기후 위험 적응력 제고 ▲감시·예측 및 평가 강화 ▲적응 주류화 실현을 골자로 하는 3차 기후변화 적응 대책을 수립한 바 있다.
기후 적응은 국가뿐 아니라 기업에도 시급한 과제다. 더위, 가뭄 등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조달 및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고려해야 기업이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4년 4월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기후 적응과 회복력을 위한 가이드’를 내고 비즈니스 리더들이 기후 적응 능력을 구축하고, 새로운 사업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적응은 기업에 이익이기도 하다. 세계은행은 기후 적응에 투자한 1달러당 평균 4달러의 수익이 발생한다고 봤다. 기후 적응과 관련해 취약한 인프라 및 서비스를 지원하는 글로벌 적응센터(GCA) CEO 패트릭 페르코이언은 “기후 적응은 비용이 아닌 투자”라며 “적응은 좋은 비즈니스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통해 구체적으로 농업 생산 증대, 재난 피해 감소, 투자 수익률 증가가 이어질 수 있다. 하인즈, 더위에 강한 토마토 품종 개량
미국 캘리포니아의 케첩 브랜드 크래프트 하인즈는 지난 150년간 개발한 토마토 품종 ‘하인즈 시드’를 농부에게 재배하게 해 토마토 페이스트로 가공해 판매해왔다. 지구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 매년 기록을 경신하는 가운데 하인즈의 연구는 기후변화에 집중돼 있다. 37℃ 이상 기온에서는 토마토의 생장이 어려워 수확량에 타격을 입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하인즈는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 재배 기간을 견뎌낼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약 800개의 토마토 품종을 대상으로 점차 유망한 품종을 선별해 초기 시험부터 대량 재배까지 오랜 기간 지켜보고 실험한다. 하인즈는 가뭄에 강한 토마토를 찾으면서 물을 덜 사용하도록 재배 방식도 바꾸었다. 지난해 중순 하인즈는 기후변화에 따른 수확량 감소를 20% 혹은 그 이상 수준으로 예측한 바 있다. 하인즈의 목적은 고온으로 인한 수확량 감소를 최소화하고 품질을 유지하는 품종을 개발하는 것이다. 네슬레 역시 기후변화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20종 이상 커피 중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70%에 해당하는 아라비카 커피는 기온에 대한 내성이 낮고, 다른 종보다 질병에 취약하다.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로 커피 재배지가 줄어들고 있는 데다 물 부족으로 수확량이 감소하는 추세다. 네슬레는 2024년 7월 질병과 가뭄에 저항력이 강하고 수확량이 높은 아라비카 품종 ‘스타 포(Star 4)’를 개발했다. 콩 크기가 더 크고, 커피 잎병에 강하면서도 수확량이 많아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품종이다.
세계적 홍차 브랜드 립톤 역시 2024년 6월부터 영국 생명공학 및 생물과학 연구위원회와 영국 차 협회의 지원을 받아 케냐에서 질소 비료로 인한 탄소배출을 줄이고 가뭄에 강한 차 품종을 육종하는 솔루션 개발 실험을 진행 중이다. 드론 이미지와 분석을 이용해 작물 관리 개선, 정밀 농업을 통해 기후 회복력이 뛰어난 차 품종을 개발하면서도 더 나은 품질의 차, 더 적은 낭비, 더 낮은 환경발자국을 갖추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니레버는 2024년 3월 30만ha의 농지에 재생 농업을 시작하는 기후 스마트 농업 프로그램을 새롭게 론칭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기후 적응과 함께 저탄소 제품 생산에 초점을 맞춘다. 기후변화로 인한 작물 및 공급망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2023년 유니레버는 프랑스에 발생한 홍수로 머스터드를 생산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번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유니레버의 수프·조미료 브랜드인 크노르는 탄소배출량과 물 사용량을 30% 줄이는 동시에 생물다양성, 토양 건강 및 농부의 생계를 개선하는 50개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기후 적응과 복원력 강화하는 기업
기후 적응은 식품회사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독일의 지멘스는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홍수, 폭염, 강풍에 강한 에너지 및 인프라 시스템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멘스는 스마트 그리드 기술을 통해 전력망의 기후 회복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통합 시스템에 대한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다. 기후 회복력 솔루션이란 기후변화로 손상될 수 있는 도로, 전력 시설 등 인프라를 예측하고 이들의 내구성을 높이는 기술을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 기후 목적 R&D는 극단적 기후 상황에서도 도시와 인프라가 기능을 유지하고, 에너지의 지속가능성과 공급 안정성을 보장하고자 한다.
IBM은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및 컨설팅 솔루션을 기업에 제공한다. 운영 및 지속가능성 관리자에게 지리 공간, 날씨·기후 데이터를 제공해 보다 현명한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환경 인텔리전스 솔루션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유럽의 DSM-피르메니히사는 IBM의 환경 인텔리전스 솔루션을 이용해 작물의 미코톡신 오염을 예측, 농업 산업에서 매년 수백만 유로를 절약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에퀴노르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폭풍 증가에 대비해 해상풍력발전소의 내구성을 강화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극한 기후 조건에서도 운영 가능한 재생가능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고, 기후 적응을 위한 기술적 혁신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의 항공 기업 에어버스는 기후 악조건 속에서도 사용 가능한 항공기와 항공 부품 설계에 투자하고 있다. 최근에는 열가소성 플라스틱을 사용해 항공기 동체 무게를 10% 이상 줄인 항공기를 선보였다. 이와 함께 에어버스는 코페르니쿠스 위성을 통해 극지방 해양의 얼음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으며, 기후변화로 인해 증가하는 허리케인이나 폭우 등 자연재해 상황에서도 효과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위성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