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 “내 대표작은 노벨문학상 이후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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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대표 작가 오르한 파묵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화가이자 조각가인 동시에 300편이 넘는 시를 쓴 시인이었다.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시를 썼다. 단편소설 '변신'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100점이 넘는 그림을 남긴 화가기도 했다.
그림 에세이집 발간
"일기는 자신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글 옆에 직접 그린 풍경화 담아
2006년 한강과 같은 나이에 노벨상 수상
"상 받은 후에도 쉼 없이 글 써
대통령에 분노하는 한국인을 응원"
최근 에세이집 <먼 산의 기억>을 번역 출간한 튀르키예 출신의 세계적인 소설가 오르한 파묵(72)은 국내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들의 사례를 들며 "문학과 그림의 간극이 벌어진 건 비교적 현대의 일"이라며 "내 마음속에도 화가가 살고 있다"고 말했다. <먼 산의 기억>은 파묵이 14년 동안 쓴 일기와 그 옆에 직접 그린 그림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일종의 '그림 일기장'인 셈이다. 파묵은 튀르키예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건축가 집안에서 태어나 건축가 겸 화가를 꿈꾸며 이스탄불 공과대학에 진학했지만 자퇴하고 소설가가 됐다. 추리소설 <내 이름은 빨강> 등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파묵은 모친으로부터 일기장을 선물받은 일곱 살 때부터 일기를 써왔다고 고백했다. 요즘은 작은 몰스킨 다이어리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틈이 날 때마다 메모를 한다고. 일기장엔 전 세계를 여행하며 겪은 일, 가족에 관한 일화, 글 쓰는 과정, 고국과의 복잡한 관계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파묵은 "일기는 가장 비밀스러운 나만의 세계이자, 나 자신으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라며 "일기를 쓰다 보면 스스로와 대화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강조했다.
파묵은 독자들에게도 일기 쓰기를 권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어라"라며 "계속 쓰다 보면 서서히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글쓰기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발전시키고, 그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라며 "글을 쓴다는 건 세상 앞에 수동적이고 무의미하게 서는 대신에, 능동적이고 활동적으로 맞서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파묵의 일기장 각 페이지는 그가 마주보고 있는 풍경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는 작업실과 바다, 먼 산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경관이 담긴 풍경화를 다이어리에 직접 그렸다. 일기 내용과 연결되는 그림도 있긴 하지만 드물다. 풍경화와 글은 별개의 작품으로 존재한다. 20대에 그림을 그만두고 30년이 지나 다시 붓을 잡기 시작한 파묵은 "여전히 내 마음 속엔 내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화가가 살고 있다"며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강했던지 떨쳐버리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2006년 튀르키예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묵은 한강 작가와 같은 나이인 54세에 상을 받았다. 파묵은 "T.S. 엘리엇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좋은 작품을 쓰지 못했다는 말을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며 "상을 받은 후에도 쉬지 않고 계속 글을 썼고, 그 가운데 발표한 <순수 박물관>은 내 작품 중 가장 인기 있는 소설"이라고 밝혔다. 그는 "약간의 책임감이 생겼을 뿐 상 자체로 무언가를 의미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이미 읽었고, 터키어로 번역된 다른 작품들을 구입해놔 곧 읽을 예정이라고도 했다.
인권 운동과 정치적인 발언에도 적극적인 파묵은 한국의 탄핵 정국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파묵은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문제를 비판했다가 정치적 탄압을 받은 바 있다. 파묵은 "나도 두려울 때가 있다"며 "튀르키예에선 많은 작가들이 감옥에 갔는데, 아마도 노벨문학상이 나를 보호해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한국에선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들의 바람에 존경을 표하고, 원하는 것을 얻길 바란다"고 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