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로스 3대가 샹파뉴에 구축한 샤르도네의 성지 '르 아비제(Les Avisés)'

[이진섭의 음미(吟味)하다]

자크 셀로스 와이너리 ‘르 아비제 (Les Avisés)’ 방문기

셀로스 집안에서 3대째 운영중인 와이너리
와이너리와 호텔이 결합된 샴페인 하우스로 자리잡아

작황, 샴페인 재고에 따라
자크 셀로스 대표 샴페인 섭스탕스, 로제 등 경험

명성에 비해 일관성 없는 서비스는 아쉬워
샹파뉴 남부 아비제로 향하다

넓게 펼쳐진 포도밭에 태양이 솟아오른다. 대지가 연녹색으로 달궈지고 농익은 포도들이 한 송이, 한 송이 농부들의 손에 쥐어진다. 수확 마지막날 샹파뉴 전 지역이 분주했다. 샹파뉴 북부지역 랭스에서 차를 몰아 남부 지방 아비제로 향했다.
자크 셀로스의 빈야드에서 바라본 아비제 / 사진. © 이진섭
샹파뉴 북부에 위치한 랭스가 적포도 피노누아의 왕국이라면, 샹파뉴 남부 지방의 아비제는 화이트 와인의 주재료로 사용되는 청포도 샤르도네의 성지다. 포도가 자라나는 토양, 기후, 지형, 환경종의 다양성을 통틀어 떼루아(Terroir)라고 하는데, 아비제의 떼루아는 신이 선물했다고 할 정도로 완벽한 앙상블을 자랑한다. 이곳의 순수한 백악질 토양은 샴페인이 풍부한 표현력을 가질 수 있도록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아비제와 함께 크라망(Cramant), 오제(Oger), 르 메스니 쉬르 오제(Le Mesnil-sur-Oger), 슈이리(Chouilly) 등이 그랑 크뤼(Grand-Cru, 최상위 등급의 포도밭)에 속하며, 에페르네 남쪽에 위치한 이 지역을 통틀어 '꼬뜨 드 블랑(Côte des Blancs: 흰색의 언덕)’이라 한다.

가족 사업 기반으로 레꼴땅 마니퓰랑 샴페인의 표본 만들어
혁신적 샴페인 메이커 앙셈 셀로스가 세계적 수준의 샴페인 생산
아비제를 방문한 건 레꼴땅 마니퓰랑(Recoltant Manipulant, 자신이 직접 재배한 포도로 만드는 샴페인 와이너리) 샴페인의 끝판왕, 자크 셀로스(Jacques Selosse) 때문이었다. 자크 셀로스가 운영하는 와이너리 '르 아비제 (Les Avisés)’에서 샴페인 제조 과정을 살펴보는 것부터 자크 셀로스 샴페인을 시음해보는 것까지 직접 경험하며 지적 허영심을 채우고 싶었던 이유도 있다.

르 아비제는 셀로스 집안이 3대째 운영하고 있는 와이너리다. 자크 셀로스는 1950년 아비제에 터를 잡고 포도 농장을 일궜으며, 1960년 자체 생산한 최초의 샴페인을 내놨다. 1980년 이후부터 그의 아들 앙셈 셀로스(Anselme Selosse)가 가업을 이어받아 세계적인 샴페인으로 자크 셀로스의 명성을 드높였고, 현재 앙셈의 아들 기욤 셀로스(Guillaume Selosse)와 함께 와이너리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초기에는 포도 농장과 양조장 형태였으나, 2011년부터 현재 위치에 자리잡고, 와이너리와 호텔이 결합된 샴페인 하우스의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자크 셀로스 샴페인을 제조•숙성하는 카바는 오크통으로 가득 차 있다 / 사진. © 이진섭
르 아비제는 자크 셀로스가 직접 경작하는 포도 농장, 샴페인 양조 공장, 호텔 등이 모두 있어 샴페인 애호가들이라면 꼭 방문하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까지도 자크 셀로스 샴페인이 만들어지는 전 공정에 세심하게 관여하는 앙셈 셀로스는 혁신적인 샴페인 메이커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양조학의 명문인 '리세 비티콜 드 본 (Lycée viticole de Beaune)’에서 수학하고, 브루고뉴에 있는 도멘 코쉬 뒤리(Domaine Coche Dury)와 르플레브(Domaine Leflaive)에서 경험을 쌓은 후, 아비제로 돌아와 최초로 브루고뉴의 와인제조법을 샴페인 양조 기술에 접목했다. 발효시 스틸 탱크 대신 오크통을 사용하며, 주정강화 와인 셰리(Sherry)를 만들 때 사용하는 숙성 방법으로 매년 날씨의 변덕에 따른 작황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고안된 솔레라 시스템을 샴페인 제조에 적용했다.

솔레라는 와인이 들어있는 오크통들을 3-4단으로 쌓아놓고, 맨 위 칸에서부터 조금씩 새로 만든 와인을 채워 기존에 있는 다른 빈티지 와인들과 섞는 것인데, 각 오크통이 파이프로 연결되어 있어서 맨 아래 칸에서 와인을 조금씩 꺼내면 위에 있는 통의 와인이 자연스럽게 아래 와인과 섞인다. 자크 셀로스는 오크통을 2단으로 쌓고, 자신들의 노하우와 레시피대로 와인을 블렌딩해 샴페인을 만든다.
자크 셀로스 샴페인을 블렌딩하는 직원의 모습 / 사진. © 이진섭
이 방식으로 만든 샴페인이 바로 자크 셀로스 '섭스탕스(Substance)'다. 진한 향과 함께 다채롭고 선명한 풍미가 가득해 '크룩(Krug)'과 더불어 최고의 샴페인으로 평가받는 섭스탕스는 한 해에 2,000-3,000병만 생산한다. 원산지인 이곳에서도 병당 500 유로의 살인적인 가격에 마실 수 있으며, 시중에서는 웃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들 정도로 희귀하다. 즉, 르 아비제는 자크 셀로스 샴페인의 면세 구역 같은 곳이기도 하다.
다이닝 룸과 객실로 이뤄진 단촐한 구성의 호텔 아비제
자크 셀로스 샴페인을 경험할 수 있는 다이닝룸

자크 셀로스의 전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선 호텔 아비제에서 숙박을 해야 한다. 앙셈과 기욤이 시간에 따라 와이너리 투어를 진행한다. (방문했을 때, 수확 마지막 날이라 와이너리 전체가 정신없이 바빠 투어가 취소되었다.) 호텔 아비제의 리셉션은 소박했다. 2층의 아담한 집에 객실과 다이닝 룸이 모두 들어가 있어, 프랑스 남부의 가정집에 방문한 느낌을 주었다.
[차례대로] 호텔 아비제의 외부와 내부 / 사진. © 이진섭
호텔은 자크 셀로스의 와이너리를 전, 후경으로 감상하면서 지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으나, 시설이나 서비스가 부족한 편이다. 단 어메니티와 타올 등은 파리 5성급에서 나오는 제품들로 구성해놨고, 호텔 방과 키를 샴페인을 기본 콘셉트로 한 것도 재밌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자크 셀로스 샴페인을 직접 경험하길 원해 저녁식사를 예약하고, 이 시간을 통해 자신들이 마시고 싶은 샴페인을 주문한다.

작황과 샴페인 재고에 따라 리스트와 가격 변동도 있다고 했는데, 다행히 르 아비제에 머물렀던 날에는 자크 셀로스의 대표 샴페인인 '이니시알(Initial)', 'V.O.', '섭스탕스', '로제(Rose)' 등이 모두 있었다.

종종 이니시알은 엔트리로 경험을 했었고, 섭스탕스에 대한 기대가 커서 두 병을 주문해 시간을 갖고 즐겼다.
자크 셀로스 섭스탕스(왼쪽)와 이니시알(오른쪽) / 사진. © 이진섭
섭스탕스는 솔레라 방식을 이용해 만든 샤르도네 100%의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 샴페인으로 자크 셀로스의 정체성을 대표한다. 짙은 황금빛이 감도는 샴페인의 색감과 엠버, 견과류, 꽃, 카라멜 등 풍부한 향이 감도는 섭스탕스는 명불허전이었다. 돔 페리뇽처럼 목 가장 자리를 툭 치고 올라오는 청량감보다 은은하게 감도는 청량감이 향수처럼 입안에 퍼졌다.

이니시알의 경우 멀티 빈타지 블렌딩 와인으로 만들어진 샴페인이다. 섭스탕스에 비해 무게는 다소 가볍지만, 산뜻한 오렌지 향과 목을 자연스럽게 치고 올라오는 꽃향의 느낌이 인상적인 샴페인이었다.

명성에 비해… 일관성 없는 서비스는 아쉬워

르 아비제는 자크 셀로스 샴페인을 경험하기 위해 세계에서 샴페인 애호가들이 찾는 곳이다. 이 정도의 가격과 명성이라면 자신들 나름의 매뉴얼과 프로세스가 있을 법도 한데, 여러 부분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호텔 아비제의 다이닝룸 / 사진. © 이진섭
몇 가지 경험 사례로 이곳에서만 마실 수 있는 샴페인이 있다 보니 사람들은 저녁식사 때 맛있었던 샴페인을 구매 의뢰하기도 한다. 그러나, 호텔 내에서 매니저와 다이닝 룸 매니저 간의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내 경우에도 분명 저녁식사 시 다이닝 매니저에게 구매 의뢰 후 재고 확인 및 구매 허락을 받았지만, 아침에 프론트에서 갑자기 해당 샴페인의 재고가 없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와 함께 팔지 않는단 말을 전달받았다. (실제 주방에는 재고가 있고, 프론트에는 재고가 없어서 팔지 않았다.)

자크 셀로스 와이너리가 1년에 많게는 5만병에서 6만병을 생산하는 반면, 전 세계 샴페인 애호가들이 계속 찾고 있는지라 이런 상황이 이해도 되었으나, 다른 장소도 아니고 한 건물 같은 층에서 가족 비즈니스를 하는 매니저끼리 이렇게까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될 수 있는지 매우 의아했다.아울러, 호텔에 돈을 지불한 만큼 서비스를 받으러 오는 손님들에게 들쑥날쑥한 스케줄이나 일관되지 않은 정책으로 혼란을 주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자크 셀로스 샴페인을 마셨다는 자기만족과 그동안 경험할 수 없었던 특별한 맛에 대한 좋은 기억, 그리고 아비제에 넓게 펼쳐진 그랑 크뤼 포도밭의 절경만 담고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아비제 빈야드의 모습 / 사진. © 이진섭
샹파뉴=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