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방랑자와 죄스러운 희망을 안고 사는 여자의 어떤 사랑

[arte] 서정의 머나먼 나라의 책 읽기

귀족 계급의 무능력과 타락
이반 투르게네프

행복에 대한 인간의 권리와 겸손의 필요성
19세기 러시아 귀족의 무책임함과 도덕적 부패 비판
레핀이 그린 '투르게네프 초상화' (1874)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우수에 찬 귀족

이반 투르게네프는 중편 <첫사랑>(1860)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삼각관계를 섬세하게 그린다. 친구들의 요청에 따라 중년의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는 그의 첫사랑을 회상한다. 16세의 나이에 그는 연상의 영락한 이웃 귀족 처녀 지나이다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녀는 그와 시시덕거리고, 심지어 그의 감정을 시험하기까지 하나 분명히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고통에 시달리던 화자는 지나이다가 아버지의 정부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고, 그들의 잔혹한 이별을 목격한다.작가는 이 자전적 이야기에서 한 귀족 청소년이 겪는 첫사랑의 시작과 끝을,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과정과 그 아름다움에 대한 환멸과 아쉬움을 당대 최고의 미문에 담아 묘사하고 있다. 일본의 인문학자 이즈쓰 도시히코의 평가대로 투르게네프에게서는 “장대한 톨스토이의 서사시적 정신의 격류나 도스토옙스키라는 극적 천재”를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산문은 “그립고도 냉철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중편 소설 '첫사랑'에 대한 보리스 드미트리예비치 그리고리예프(B. D. Grigoriev)의 일러스트레이션. / 사진출처. 러시아 위키피디아
장편 <귀족의 둥지>(1859)는 진보적 문예지 <동시대인>에 발표되었던 가장 유명한 러시아 소설 중 하나다. 비평가들은 투르게네프가 <귀족의 둥지>를 쓸 때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두 작품 모두 저명한 귀족이 어느 지방에 도착하고 그 지방의 청초하고 독립적인 소녀를 매료시킨다. 그러나 곧 그 주인공들 앞에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제목 <귀족의 둥지>는 투르게네프가 ‘지적이며 고상한’ 귀족의 점진적인 퇴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을 가리킨다. 주인공 표도르 이바노비치 라브레츠키는 투르게네프의 특징을 많이 가진 귀족이다. 영국의 아버지와 어린 시절 돌아가신 어머니의 아들로 아버지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란 라브레츠키는 시골 저택의 엄격한 이모 손에서 자랐다.라브레츠키는 모스크바에서 학업을 계속했고, 오페라 극장에서 아름다운 소녀 바르바라 파블로브나를 만난다. 표도르 라브레츠키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선언하고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두 사람은 결혼하고 신혼부부는 파리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바르바라는 매우 인기 있는 살롱의 주인이 되고 단골손님 중 한 명과 ‘낭만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라브레츠키는 연인이 바르바라 파블로브나에게 쓴 쪽지를 우연히 읽게 되면서 아내의 외도에 대해 알게 된다. 아내의 외도에 충격을 받은 그는 아내와의 모든 연락을 끊고 자신이 자란 가족 영지로 돌아간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땅을 갈아엎는다”

러시아로 돌아온 라브레츠키는 사촌 마리아 드미트리예브나 칼리티나를 방문했다가 큰딸 리자에게 즉시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리자의 진지한 성격과 기독교적 도덕 원칙은 그녀를 아내 바르바라 파블로브나와 구별시킨다. 점차 사랑에 빠지게 된 라브레츠키는 어느 날 프랑스 잡지에서 바르바라 파블로브나가 죽었다는 기사를 읽고, 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리자의 마음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바르바라 파블로브나가 라브레츠키의 집에 나타난다. 잡지에 실린 글은 오보였다. 리자는 ‘도덕적 원칙’에 따라 개인적인 행복을 희생하며 수도원에 들어가고, 라브레츠키는 아내와 함께 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남은 생애 동안 자기 영지에서 땅을 일군다.농노제, 관료주의적 부패와 사회적 조건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억압받는 자와 억압자 모두의 정신을 불구로 만드는지를 우울한 색채로 묘사한 살티코프 셰드린식의 풍자적 글쓰기 전통에 비해 투르게네프는 이 주제들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제시한다. 그는 주로 어떤 상황의 영향 아래 인간이 형성되는가 보다는 그 인간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하는가에 관심이 있다.

투르게네프가 그의 오랜 친구 네크라소프와 문예지 <동시대인>과 근본적인 갈등을 겪게 된 것은 투르게네프가 그 지면에 실린 “허무주의자”(당시 러시아의 반대파는 무신론적 사회주의 이념을 가진 이들을 이렇게 불렀다. 이는 유신론적 사회주의가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이상을 ‘기독교적 사회주의’로 명명하기도 했다) 도브롤류보프, 체르니솁스키와 거리를 두려는 태도와 관계가 있다. 투르게네프가 일반적으로 문학을 사회 교육의 수단으로 만드는 것은 미적 자질이라고 믿었던 반면, 그의 반대자들은 예술을 직접적인 선전의 도구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낭만적 관념론자의 한계
'귀족의 둥지' 표지(2022) / 사진출처. © Wildberries
그럼에도 1850년대 비평가와 작가들이 이견 없이 인정한 것은 주인공의 인격을 통해 “땅에 대한 애착”과 “인민의 진실 앞에서의 겸손”을 묘사하려 한 투르게네프의 열망이었다. 이 소설은 1861년에는 프랑스어로, 1862년에는 독일어로, 1869년에는 영어로 번역판이 출간되었다. 덕분에 투르게네프의 소설은 19세기 말까지 해외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러시아 문학 작품 중 하나였다.

<귀족의 둥지>는 지난 수백 년 동안 발전해 온 러시아 귀족의 삶에 관한 이야기, 서로 다른 신분 간 관계, 러시아와 서방 간 관계에 대한 설명, 러시아의 가능한 개혁 방식에 대한 논쟁, 의무의 본질, 도덕적 책임에 대한 철학적 추론을 유기적으로 포함한다. “자네는 회의론자도 아니고, 환멸가도 아니며, 볼테르주의자도 아니네.” 라브레츠키와 그의 대학 동기 미할레비치 사이의 논쟁에서 시사적인 문제들이 특히 드러난다.

1840년대 관념론자 세대를 대표하는 유형, 시대정신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공감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가장 큰 재능인 인물 미할레비치는 “슬픈 얼굴의 기사”를 명백히 연상시키는 영원한 방랑자이다.

투르게네프에게 미할레비치는 아름답고 순진한 돈키호테다(투르게네프의 유명한 연설 <햄릿과 돈키호테>는 <귀족의 둥지> 직후에 쓰였다). 셀 수 없이 사랑에 빠지며 자기 연인들에게 시를 써서 바치는 인물이기도 하다.

순결하고 경건한 공포

한편, 리자의 어머니 마리아 드미트리예브나 칼리티나는 프랑스 책들만 읽었으나, “조르주 상드에 대해서는 화를 냈고, 발자크에 대해서는 피곤함을 느꼈지만 존경했으며” 보다 대중적 소설가들을 숭배하고, 가장 통속적 소설가를 좋아하면서도 “그의 이름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사실상 문학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으나 또한 문학 없이는 살 수 없었던 그녀와 다른 곳에 리자의 유모 아가피야가 존재한다. 작가가 주목했던 ‘민중의 진실’, 이것 없이는 ‘거짓에 대항할 수 있는 용기’도 있을 수 없는 그 진실이 태어나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기구한 운명의 아가피야는 리자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고르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성모의 생애를, 은둔자와 성자와 거룩한 순교자의 생애를 이야기해 주었다.” 아가피야는 삼 년여간 리자를 돌보다가 경박한 프랑스 처녀 가정교사가 그 자리를 대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순례를 위한 휴가를 얻어 떠나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분리파 교도의 암자로 숨어들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 나쁜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그녀가 “리자의 마음속에 남긴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토양에서 리자는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다.
영화 '귀족의 둥지'(1969) 스틸컷 / 사진출처. © CineModa
긍지에 찬 귀족의 퇴락

표도르 라브레츠키는 투르게네프가 형상화한 모든 주인공 중에서 가장 상세한 족보를 가지고 있는데, 독자는 그의 부모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증조부로부터 시작해서 라브레츠키 가족 전체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그것은 러시아와 귀족의 역사이다. 그 가문의 전체 역사는 폭력 위에 세워져 있으며, 소설 말미에서 라브레츠키는 자신을 “외롭고 집 없는 방랑자”로 여긴다.

리자의 아버지 역시 그녀의 어머니를 굴복시킨 잔인하고 “약탈적인” 사람이었다. 리자는 과거에 대한 책임감을 라브레츠키보다 더 강하게 느낀다. 리자가 겸손과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내면의 나약함이 아니라, 자신의 죄와 함께 다른 사람들의 죄까지 속죄하려는 의식적이고 사려 깊은 열망과 관련이 있다. “저의 죄도, 남의 죄도, 그리고 아버지가 어떻게 재산을 모았는지도 모두 알고 있어요. 이 모든 것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만 해요.” 타티아나(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의 여주인공)의 후예인 리자는 라브레츠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죄스러운 희망”이라 부르며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위한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 세상을 등진다.

시대의 과제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민중적 진실에 대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실행력으로 ‘우수에 찬 귀족’ 라브레츠키는 리자에 미달한다. 모든 것이 빛나고 영감으로 자라다가 아름다움으로 시들고는 녹아내리는 음악, 지상에서 소중하고 비밀스럽고 거룩한 모든 것에 관한 그것에 종종 위로받을 뿐이다. 리자와 라브레츠키 사이의 주요 논쟁은 행복에 대한 인간의 권리와 겸손의 필요성에 관한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에게 종교라는 주제는 매우 중요한데, 비신자인 라브레츠키는 리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투르게네프는 그들 중 어느 편이 옳은지 결정하려 하지 않고, 의무와 겸손이 모두에게 필요하며, 특히 투르게네프의 주인공들과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귀족의 미래

소설 속의 러시아 귀족은 고급문화의 담지자일 뿐만 아니라 수 세기 동안 서로를 억압해온 대표자들로 묘사된다. 8년 후 라브레츠키는 칼리틴가를 방문하여 리자의 성장한 여동생 엘레나, 친척, 친구 등 쾌활한 젊은이들을 보게 된다. 여전한 모습을 간직한 ‘귀족의 둥지’에서 그는 자기 삶을 더듬으며 개인적 비극에서 어떤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또한, 과거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대는 비로소 행복을 향해 나아간다고 그는 생각한다. 소설의 말미에서 라브레츠키는 젊은 세대에게 정신적 독백을 건넨다.

“그리고 너희는 일을 해야 해, 일해, 그러면 우리 형제, 노인의 축복이 너희와 함께 있을 거야.”
도모가츠키가 그린 '귀족의 둥지' 삽화(1981) / 사진출처. © CPRF regional branch (kprforel.ru)
라브레츠키의 이 바람이 현실화했는가, 우수가 극복되었는가에 대해서 간단히 답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의 고모가 그에게 상기시켰던 ‘정직함’을 귀족이 잃어버리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 계층의 운명은 결정되는 것이었다. 그 덕성은 진실에 대한 태도이며, 명예에의 헌신을 가능케 한다. 명예 없이 고상함은 유지될 수 없다. 고상함을 잃어버린 귀족은 더 이상 지배계급일 수 없다. 투르게네프의 통찰대로 이 원칙은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적용되는 것이다. 덕성이 땅의 진실과 관계되듯 영원은 현실에서 자라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