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과 노동판례…군인은 모든 명령에 복종해야 할까

한경 CHO Insight
이명철 변호사의 ‘他山之石 노동판례’
온 나라가 흔들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월 3일 밤 10시 28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9년 이후 45년 만이다. 계엄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23시부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계엄사령부 포고령을 발표했다. 포고령 말미에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에 따라 처단한다고 선포하였다.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은 국방부장관의 명령에 따라 이재명 대표, 한동훈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등을 체포하라고 방첩사 수사단장에게 지시하였다. 김용현 국방부장관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의사당 출입을 통제하라는 임무를 하달했다. 곽 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의결정족수가 아직 다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하였다고 국회에서 증언했다.

계엄이 해제되자 여 사령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군인은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곽 사령관은 ‘국민 안전 문제를 고려해 항명죄인 줄 알았지만 국회에서 인원을 끌어내라는 임무를 전달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계엄선포와 계엄군의 국회진입, 정치인 체포지시 등 일련의 행위가 내란죄에 해당하는지, 탄핵사유가 되는지는 형사사법절차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판단될 것이다. 차분히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여 사령관 말처럼 군인은 틀린 명령도 따라야 하는지, 곽 사령관 생각처럼 상관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무조건 항명죄가 되는지는 짚고 넘어갈 문제이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은 먼저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명령복종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제25조). 군대는 전시에 기민하고 일사분란하게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조직이므로 명령에 대한 복종은 당연한 사명이고 군 조직의 생명과 같은 규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군인은 상관의 명령을 기계처럼 수행하는 수족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군인복무기본법은 ‘군인은 법규에 반하는 사항에 관하여 명령을 발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제24조 제1항). 법규에 반하는, 즉 위헌·위법적인 지시는 정당한 명령이 아니므로, 상관은 명령권이 없고, 설령 그러한 명령을 하였더라도 부하는 따를 의무가 없다. 군형법도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않은 행위를 항명죄로 다스리고 있을 뿐이다. 대법원도 12·12 사건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상관의 ‘적법한’ 직무상 명령에 따른 행위는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지만 ‘위법한’ 명령에 따라 범죄행위를 한 경우에는 상관의 명령에 따랐다고 하여 부하가 한 범죄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96도3376 판결).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가 보안사령관 전두환의 지시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한 행위, 제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가 여단장 최세창의 지시를 받고 부관 김오랑 소령을 살해한 후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한 행위 모두 정당행위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같은 무시무시한 상황과는 다소 차원이 다르지만 노동현장에서도 업무상 명령·지시의 정당성이 논란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A항공사는 ‘임직원 근무복장 및 용모규정’에 남자 직원의 경우 “안면은 항시 면도가 된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며, 수염을 길러서는 아니된다. 다만 관습상 콧수염이 일반화된 외국인의 경우에는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를 허용한다”라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한국인인 항공기 기장이 턱수염을 길렀다. 항공사는 기장에게 면도할 것을 지시하였으나 기장은 불이행하였다. 항공사는 감급 1개월의 징계처분을 하였다. 이 경우 항공사의 면도 지시와 징계는 정당한가. 헌법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그 파생 권리로 모든 기업은 자유롭게 사업을 경영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한 의사 결정의 자유를 가진다. 즉 회사는 사기업으로서 고객의 신뢰와 만족도 향상, 직원들의 근무기강 확립 등 필요에 따라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직원들의 용모와 복장을 제한할 수 있다. 반면 모든 국민은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가지고 개인의 생활방식과 취미에 관한 결정권이 있다. 기업경영의 자율권과 개인의 행동자유권이 충돌하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대법원은 기장의 업무 범위에 탑승객과 직접 대면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사정 등을 고려하여, 영업의 자유와 관련한 필요성과 합리성을 넘어서 직원들에게 수염을 기르는 것을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기본권의 상호조화 측면에서 지나치다고 보았다. 오늘날 개인 용모의 다양성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 등을 고려할 때 항공사 직원이 수염을 기른다고 하여 반드시 고객에게 부정적인 인식과 영향을 끼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사정도 참작되었다. 회사는 항공운항의 안전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으나 대법원은 합리적 이유와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보아 회사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다른 항공사들도 운항승무원이 수염을 기르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하지 않고 있는 등 회사의 면도 지시와 지시불이행을 이유로 한 징계는 근로자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용모규정은 근로기준법 제96조 제1항을 위반한 무효의 취업규칙이고, 징계처분 또한 위법하다고 결론을 내렸다(2017두62549 판결).

항공사 기장과 달리 승객과 직접 대면하는 객실 승무원의 경우는 어떠할까, 최근 식당에서 서빙을 하거나 매장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직원들 중 문신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도한 문신을 이유로 다른 보직으로 전보를 하거나 인사조치를 하는 것은 정당성이 있을까. 변호사가 면티셔츠를 입고 고객상담을 하거나 법정에 출석하였다면 로펌은 그 변호사를 징계할 수 있을까.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기업활동의 자유와 근로자의 행동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이익형량에 어떠한 요소를 고려할지 심도 깊은 법리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그 밖에도 버스회사의 배차지시가 정당한지(대법원 2004두10784 판결), 사고나 비위행위를 저지른 직원에게 시말서 제출을 요구한 것이 정당한지(대법원 2009두6605판결) 등 업무상 지시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고민할 사안이 많다.

해외자본의 이탈과 환율의 불안정성 등 경제불안 요소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변경이 임박하는 등 국제환경 리스크도 겹쳐서 현 상황이 국가적 위기라는 진단이 많다. 정국이 조속히 안정되고 경제도 활력을 되찾도록 모두 지혜를 모을 시점이다.

이명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