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한 동네로 유명해지더니"…철공소 거리 '비명' 터져나온 이유 [현장+]

"100만원 올려달라" 임대료 폭탄
문래동 철공소 사장님의 눈물

60만원 하던 공장 월세, 200만원으로 '껑충'
유명세에 술집 몰려들며 임대료 고공행진
'임대료에도 허덕이는데'…통째 이주 먹구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집적단지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문래동 철공소들은 원래 한 달에 100만원 하던 임대료가 200만~300만으로 올라 숨이 막히는 상황입니다. 폐업을 고민할 지경이에요."

문래동2가의 금속가공업체 대교철강의 임주학 사장은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토로했다.

'설계도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는 말로 유명했던 문래동 철공소 거리가 소멸 위기에 처했다. 10년 새 3배 이상 치솟은 임대료와 재개발 압박 탓이다.20일 영등포구청에 따르면 구는 문래동 1~6가 철공소 1200여 곳을 수도권 그린벨트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문래동은 금형과 주조, 가공, 용접, 열처리 등 금속 가공의 모든 작업이 가능한 철공소들이 모여있는 지역이다. 특히 수도권 소성가공 업체의 약 40%가 문래동에 몰려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 뿌리산업의 메카를 통째로 이전해 유지한다는 것이 구의 구상이다. 이전 대상지로는 경기 김포·시흥·안산 등이 거론된다.

"매번 월세 올리라니 쫓겨날 수밖에"…90%가 임차 공장

하지만 최근 찾은 문래동에서는 이전에 대한 기대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철공소 사장들은 당장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탓에 이주가 본격화하기 전 쫓겨나는 업체가 대부분일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머시닝 가공 업체 고성테크는 지난달 문래동 2가에서 문래동 4가로 공장을 이전했다.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때문이다.
문래동 머시닝 가공 업체 고성테크 노창훈 사장이 새로 이전한 공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노창훈 고성테크 사장은 "2년 전에 월세를 30만원 올렸는데 건물주가 또 20만원을 높이자고 했다"며 "월세가 계약할 때마다 수십만원씩 오르길 반복하고, 올리길 꺼리면 나가라면서 사람 속을 뒤집으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사비용으로만 1000만원이 들었다"며 "지금 건물주는 재개발이 예정돼 있으니 임대료를 올리지 않겠다고 하는데, 만에 하나 마음이 바뀐다면 또 쫓겨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토로했다.영등포구청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래동 철공소 가운데 90.2%는 임차 공장이다. 철공소 사장들 사이에서 '내 공장 갖기' 운동도 일었지만, 영세 소상공인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이제는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리면 그대로 쫓겨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문래동 4가 서진특수주물 우복자 사장은 "이 주변을 보면 몇 년 전까지 60만원, 80만원 하던 월세가 140만원, 200만원으로 계속 오르고 있다"며 "2년마다 월세가 수십만원씩 오르니 오랜 기간 함께했던 이웃들도 하나둘 가게 문을 닫고 떠나고 있다"고 토로했다.
폐업한 문래동의 한 선반 가공업체에 임대 안내문과 함께 인근 카페 메뉴 사진이 붙어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그는 "구청에서는 이 동네를 재개발하고 철공소는 이전한다고 하던데, 지금은 1년에 한 번씩 임대료를 올리는 곳도 있다"며 "건물주들이 앞다퉈 임대료를 높이니 이주가 본격화할 시점에서 남아있는 철공소가 얼마나 될까 싶다"고 지적했다. 또 "끝까지 남더라도 환경 규제를 감안하면 이주가 쉽진 않을 것"이라며 "일부가 이주에 성공하더라도 문래동 철공단지는 사실상 소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임대료에 허덕이는 영세 소상공인…이주는 희망고문"

대교철강의 임주학 사장도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임대료를 매번 높이던 건물주가 급기야 공장을 비우라고 통보한 탓이다. 그는 "재작년에도 130만원이던 임대료를 170만원으로 올렸다"며 "이제는 젊은 사람들한테 임대주면 적어도 100만원은 더 받을 수 있다며 그만큼 올려줄 것 아니면 나가라 한다"고 푸념했다.

문래동은 2010년 중순부터 저렴한 임대료와 지원금을 찾는 예술인들이 유입됐다. 철공소와 공방, 카페가 어우러진 '힙한' 분위기에 제2의 성수동으로 유명해지자 본격적으로 술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문래동 금속가공업체 대교철강의 임주학 사장이 주문받은 제품을 가공하고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임 사장은 "예술가들이 온다니 철공소와 잘 어울릴 거라 기대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전부 술집으로 변했다"며 "그나마도 자리를 잘 잡으면 다행인데, 열에 일곱은 몇 달 버티지 못하고 나간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년들은 문래동 임대료가 원래 200만~300만원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그만한 상권이 아니니 못 버텨 폐업하고, 철공소들은 원래 100만원 하던 임대료가 200만~300만으로 올라 숨이 막히는 상황"이라며 "건물주와 부동산 업자들만 즐거워하고 있다"고 호소했다.구청에서는 저렴한 대체 부지로 문래동 철공소들을 통째 이전해 자기 공장을 갖게 하면서 명맥을 존속시킨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일선 철공소 사장들은 "비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당장 임대료가 옥죄는 상황에서 이주 계획이 구체화하기까지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임 사장은 "이주도 매출이 나오고 자금에 여력이 있는 업체가 가능한 일"이라며 "당장 수십만원씩 오르는 임대료도 감당하기 어려운 영세상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고 선을 그었다. 노 사장도 "몇 년 안에 된다는 보장이 없지 않으냐"며 "임대료는 계속 오르는데, 준비된 것도 없는 이주를 기다리라는 것은 희망 고문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