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를 오롯히 추앙한 파리지앵 피아니스트 '타로'
입력
수정
[arte] 이진섭의 한 판 클래식피아노로 리듬과 색채를 더한 바흐의 연주곡
알렉상드르 타로(Alexandre Tharaud)
바흐 피아노 연주곡 모음 [BACH THARAUD]
우아하면서도 진중한 연주를 들려주는 알렉상드르 타로는 피아니스트로서 이상적인 면모를 지닌 아티스트다. 1968년 파리의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난 알렉상드르 타로는 다섯 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열네 살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 니키타 마갈로프(Nikita, Magaloff), 클로드 엘페르(Claude Helffer), 레온 플라이셔(Leon Fleisher) 등을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끊임없는 창작욕과 수련으로 자신을 꾸준히 단련하는 피아니스트로 정평이 나 있는데, 현재까지 약 30장의 앨범을 발매했으며, 다양한 형태의 협연과 독주, 영화 음악 등에 참여해 음악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음반을 녹음하기 전 그는 몽파르나스 묘지에 있는 엠마누엘 샤브리에의 무덤에 가서 꽃을 놓고 오는 습관이 있다. 그는 “심오하고도 가벼운 엠마누엘 샤브리에의 음악은 프랑스의 정신”이라고 말한 적도 있는데, 음반 녹음 전 샤브리에에게 헌사하는 것이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모든 작곡가의 아버지인 바흐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 알렉상드르 타로
알렉상드르 타로가 샤브리에 외에도 음악적 우상으로 삼는 음악가가 바로 J.S 바흐다. 이번에 J.S 바흐를 테마로 앨범 [BACH THARAUD]도 타로가 품어온 음악정신과 맥락이 닿아있다. 앨범에는 <루테 모음곡 (Lute Suite in E Minor, BWV 996)>, <마태 수난곡 (Matthaus-Passion, BWV 244)>, <관현악 모음곡 3번 라장조 (Orchestral Suite No. 3 in D Major, BWV 1068 - II. Air)> 등을 포함해 그가 사랑했던 바흐의 음악들이 담겼다.(디지털과 CD 앨범은 총 25곡을 수록했고, LP의 경우 매체 특성상 총 16곡을 담았다)
앨범 [BACH THARAUD]는 오랜 시간 동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바흐의 복잡한 대위법, 정확한 테크닉 그리고, 심오한 감정표현에 대한 타로의 탐구가 반영되었다. 그는 바흐가 생전에 지녔던 성스러운 음악적 영혼에 애정과 존경을 표하며, 곡을 해석하고 혼신을 다해 연주했다고 밝혔다.앨범의 큰 특징 중 하나라면, 평소 피아노 편곡으로 잘 연주되지 않는 <마태수난곡 아리아>와 <요한수난곡 합창>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인데, 바흐의 성악곡이 타로의 손에서 어떤 분위기의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는지 원래 버전들과 비교 감상하는 것도 감상 포인트다.첫 곡 <Concerto For Keyboard in D Minor BWV 974 - II. Adagio (After Marcello's Oboe Concerto in D Minor)>이 영화처럼 시작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파벨만스>에서 주인공 미치가 피아노 앞에서 이 곡을 연주한 장면이 계속 연상되는데, 타로는 피아노로 자신만의 바흐 스토리를 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루트로 연주하는 곡을 피아노에 맞게 편곡한 <Suite For Lute in E Minor, BWV 996 - V. Bourree>는 원곡의 바로크적 분위기보다 낭만주의적 감성에 더 가깝게 다가온다. 성스럽고 엄숙한 합창곡인 <요한 수난곡 (Johannes-Passion, BWV 245, "Herr unser Herrscher")>은 힘을 뺀 채 자연스럽고 담담한 어조로 연주한다.
<Sonata For Flute in E-Flat Major, BWV 1031 - II. Siciliano>에서 타로는 원곡에서 사용된 플루트의 섬세하고 맑은 소리들을 피아노의 아르페지오를 활용해 음악적 맛을 살린다. <Suite For Keyboard in A minor 818a>에서 타로는 피아노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힌 듯, 매 순간 찬란한 연주로 연주를 이끌고 간다. 특히, 바흐가 표현하려고 했던 아름다운 멜로디와 다면적인 감정표현은 피아노 소리 하나로 집중도를 높인 느낌이 든다. 우리에게 익숙한 마태 수난곡의 <Matthaus-Passion, BWV 244, 'Aus Liebe will mein Heiland sterben'>과 G선상의 아리아로 알려진 곡 <Orchestral Suite No. 3 in D Major, BWV 1068 - II. Air>에서 우리는 미소년의 활기가 깃든 피아노 연주를 경험할 수 있다. 타로가 품어 온 바흐에 대한 시선과 감정을 담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연주한 <Fantasia and Fugue in C minor, BWV 906: Fantasia>, < Concerto For Organ in D Minor, BWV 596 - III. Largo e spiccato 'Siciliano'>는 신사적이기까지 하다.전반적으로 이 앨범은 우리가 경험했던 바흐의 음악들에 색채감과 리듬을 더해 미묘한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원곡들과 비교하면서 타로가 어떤 해석을 가미했는지 틈틈이 즐겨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라면 재미다.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의 작고 큰 소망들을 하나씩 계획할 때, 이 음악은 편안한 소리 터전이 되어 줄 것 같다. 아르떼 독자분들도 음미하는 한 해 되시길 소망한다.
Happy New Year
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