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처럼 술술 풀릴 2025년을 기대하며, 희극 오페라 <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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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황지원의 오페라 순례매년 찾아오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는 전통적으로 오페라 하우스와 콘서트홀의 최성수기이기도 하다. 올해도 세계 유수의 공연장들이 저마다의 전통과 관습, 예술적 지향점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전 세계 극장들의 연말연시
독일은 12월부터 그 이듬해 연초에 이르는 한 달이 1년 중에 가장 중요한 휴가 및 축제 기간이다. 평소 근면 성실하고 검박한 생활을 영위하던 이들도 연말만큼은 거리로 뛰쳐나와 맥주와 데운 포도주를 나눠 마시고, 요란한 폭죽놀이도 즐기면서 떠들썩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공연장도 이에 발맞춰 전통적인 송년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무대에 올리는데, 특히나 '질베스터’가 중요하다. 독일어로 12월 31일 섣달그믐을 '질베스터(Silvester)’라 부르는데, 요즘은 아예 12월 마지막 주를 통째로 질베스터 시즌이라 통칭하는 추세다.이 기간 독일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갖가지 축제와 공연이 열리는데, 세계적인 교향악단의 본거지답게 질베스터 콘체르트(Silvesterkonzert)라 불리는 제야음악회도 매우 인기다. 가장 권위 있고 유명한 것은 세계 최고 관현악단인 베를린 필의 송년음악회. 대개 29일에 시작해 31일까지 동일한 프로그램으로 3회 공연되는데, 특히 31일 공연은 공중파 TV로 독일 전역에 생중계된다. 올해는 베를린 필의 음악감독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봉을 잡고, 러시아 출신의 천재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가 솔리스트로 출연해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속의 관현악곡 등을 연주한다.1월 1일에는 저 유명한 '빈 신년음악회’가 우리를 기다린다. 매년 1월 1일 오전 11시 즈음에 흥겨운 빈 왈츠와 폴카 음악을 번갈아 연주하며 우리의 행복 지수를 한껏 올려주는 콘서트이다. 빈 신년음악회가 지금처럼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전 세계인의 이벤트가 된 것은 아마도 빈 필의 전설적인 악장 빌리 보스코프스키 덕분일 것이다. 1955년부터 1979년까지 25년간 신년음악회를 이끌었던 그는 일찍이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그랬던 것처럼 나긋한 바이올린 독주와 우아한 지휘를 함께 보여주면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1987년부터는 매년 지휘자가 바뀌고 있는데, 2025년은 이탈리아의 거장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봉을 잡는다.한편 미주와 유럽을 가릴 것 없이 전 세계인들의 연말연시를 가장 확실하게 책임지는 작품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Die Fledermaus)>이다. 파티 중독에 빠진 졸부 신사숙녀들의 허세 넘치는 화려한 풍류 생활을 다룬 희극으로, 불륜에 빠진 부부와 벼락출세를 꿈꾸는 하녀 등이 러시아 귀족이 주최한 가장무도회에 정체를 숨기며 참석하면서 벌어지는 요절복통 한바탕 소동을 그렸다.올해도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은 연말연시에 <박쥐> 공연을 집중 편성했는데, 특히 2막 파티 장면에서 예고 없이 등장하는 슈퍼스타 성악가들의 존재가 관객들의 기대감을 한껏 부풀린다. 1980년대 뉴욕에서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깜짝 등장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고, 몇 년 전 빈에서는 아름다운 미성의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가 통기타를 멘 채 '올드 랭 사인’을 노래하여 관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 바 있다.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Juan Diego Flórez) - 'Auld Lang Syne' and 'Guantanamera']
황지원 오페라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