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日·中·北 콕 집어 "좋은 관계"…한국은 철저히 '패싱'

플로리다 팜비치서 당선 후 첫 기자회견
기자회견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한반도 주변 강대국과의 정상외교에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내년 1월 20일 취임까지 한 달여 남겨 놓은 시점에서 16일(현지 시간) 당선 후 첫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강대국 정상과의 활발한 소통을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안 해 한국이 거대한 외교 지형 변화 속에서 철저히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현지시간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 이들 국가의 정상들을 모두 거론했다. 가장 많이 언급한 정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었다.트럼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러시아 군인들이 천문학적으로 희생되고 있다"면서 "우리는 푸틴,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와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을 향해 "(종전을 위한) 협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 전쟁에 러시아를 돕기 위해 북한군이 파병된 것과 관련, 김 위원장에 대해 "내가 잘 지내는 또 다른 사람"이라며 운을 띄웠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때 김 위원장을 3차례 직접 대면했다. 또 북한의 핵 위협을 종식하기 위한 북미 대화가 결렬된 이후에도 이른바 '러브레터'로 불리는 서한외교를 이어왔다. 그는 올해 대선 과정에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 위원장과 사이가 좋다"고 언급해왔는데, 재집권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도 두 사람 사이의 친분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에 대해서도 '좋은 관계'라고 주장했다. 이미 대통령 취임식에 시 주석을 초청한 트럼프 당선인은 "시 주석의 취임식 참석 여부는 알지 못한다"면서도 "코로나19 전까지 좋은 관계였고, 코로나19는 그 관계를 끝내지 않았다"고 했다. 아울러 "미국과 중국은 세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시 주석과 특히 편지로 아주 좋은 대화를 나눴다. (시 주석은) 내 친구였고, 놀라운 사람"이라고 덧붙였다.트럼프 당선인은 동맹국인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는 취임 전이라도 회동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아키에 여사를 통해 이시바 총리에게 책과 몇몇 다른 물건을 보냈다"며 각별히 챙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당선 후 첫 회견에서 북한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의 정상을 모두 거론한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한반도 안보 상황을 바라보는 트럼프 당선인의 시야에서 한국이 배제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직후부터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을 압박하고, 한국산 제품에 대해 10∼20%의 보편 관세를 물릴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한국의 탄핵 정국으로 인해 양국 정상 간 네트워크 구축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에 대해 미국 내에서도 우려와 경고음이 나온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한국 석좌는 "모두가 마러라고나 백악관에 가서 개별 협상을 시도하는 데 한국에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트럼프 당선인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직접 대화를 집권 2기 행정부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한반도 안보 지형의 '새판짜기'를 시도할 경우 북핵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이 '패싱'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