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철 "지역 아동·청소년 3년째 후원…약속은 선택 아닌 의무입니다"

장덕철 아산 푸드렐라 대표의 '일편단심 지역사랑'

2022년 푸드렐라 꿈 키움 멘토링 사업
형편 어려운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
매월 아이들과 동네 맛집 다니며 소통
이동 위해 자비 들여 승합차까지 구입
작년 '1사 1교 1촌' 마을 7200만원 기부

5년뒤 사재 털어 장학재단 설립 계획
현재 9명 후원…40명까지 확대
"의미 있는 기부방법 찾는 게 목표"
장덕철 아산 푸드렐라 대표(가운데)가 지난 14일 장학금 후원 대상 학생들을 위해 구입한 승합차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강태우 기자
“귀찮고 날이 춥다고 아이들을 외면하면 되나요. 저에게 아이들과의 약속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지난 14일 충남 아산시 둔포면의 식품 제조기업 푸드렐라(대표 장덕철) 2공장 주차장. 장덕철 대표가 사무실에서 나와 밝은 주황색 카니발 승합차에 올라탔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주말 영하권 날씨에도 차량은 둔포면 시골 마을 곳곳을 다니며 차례로 아이들을 태웠다. 어느새 9명의 아이로 가득 찬 차량은 둔포면의 번화가인 아산테크노밸리 음식점 거리로 향했다.이날 아이들은 ‘맘스터치 아산테크노밸리점’에서 치킨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그간 학교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 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장 대표는 아이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되는 인문학 서적 <신독, 혼자 있는 시간의 힘(당신은 혼자 있는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는가)>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전달했다.

○매월 후원 아동·청소년 만나 ‘먹방’

푸드렐라 차량이 지난 14일 학생들을 싣고 아산시 둔포면의 도로를 달리고 있다. /강태우 기자
장 대표는 올해로 3년째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아이들과 점심을 먹자’는 약속을 한 번도 깬 적이 없다. 몸이 아플 때도 직접 차량을 몰고, 아이들을 태운 뒤 동네 맛집을 찾아다녔다. 날짜와 시간, 장소는 모두 아이들이 정하는 나름의 원칙도 세웠다. 아이들은 ‘도장 깨기 먹방하는 날’이라는 이름으로 카카오톡 대화방을 개설했다.장 대표는 2019년부터 아산시미래장학회 비상임 이사로 활동하다가 2022년 8월 회사 이름을 딴 ‘푸드렐라 꿈 키움 멘토링 사업’을 시작했다. 아산시미래장학회를 통해 후원 대상 학생들을 선발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매달 30만~50만원의 장학금을 후원한다. 한 달에 380만원, 이달까지 9000만원을 기부했다. 9명의 학생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전 학년에 걸쳐 있다.

장 대표는 ‘푸드렐라 꿈 키움 멘토링 사업’ 선정 대상을 초등 5학년부터 정했다. 회사가 있는 둔포면을 중심으로 초·중·고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초등 5학년이면 고교 졸업 때까지 총 8년을 후원한다. 아동과 청소년 시기를 장 대표와 함께 보내는 셈이다. 아이들에게 그는 핏줄은 아니지만 ‘큰 아빠’와 같은 존재다. 그는 지난해 아이들을 위해 자비 4000여만원을 들여 지금의 카니발 승합차를 구입했다. 색상도 아이들이 멀리서도 볼 수 있게 밝은 주황색으로 칠했다. 2022년 자가용으로 아이들을 실어 날랐지만, 후원 학생이 계속 늘어나면서 승용차로는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다.

○‘언니·동생·오빠’ 가족이 된 아이들

후원 대상자로 선정된 아이들은 부모 중 한 사람이 사망하거나 병을 얻어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태권도 국가대표를 꿈꾸는 막내 김은혜 양(가명·초등 6학년) 역시 마찬가지다. 김양은 2년 전 가정형편이 어려워 꿈을 접으려고 했다. 아빠는 20대의 젊은 나이지만 당뇨가 심해 집에서 지내고, 엄마는 6년 전 뇌출혈로 거동까지 불편해서다. 정부가 지원하는 생활비로는 빠듯한 상황이어서 학원을 보내달라고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학교 선생님이 사연을 아산시미래장학회에 알렸고, 장 대표는 김양에게 매달 학원비 30만원을 지원했다. 김양은 올해 10월 태권도 2품 승급심사를 통과했다. 내년부터는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태권도 선수의 꿈을 이루겠다는 목표까지 세웠다.강세영 양(가명·중등 3학년)은 식품 연구원이 꿈이다. 장 대표가 지난해 아이들을 공장으로 초대한 것이 계기가 됐다. 강양은 공장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제품 생산 과정을 지켜본 뒤 식품회사에 깊은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강양은 “당시 공장을 견학하면서 다양한 소스와 음식 재료가 우리가 즐겨 먹는 냉동식품으로 탄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대학은 식품학과로 진로를 결정했고, 졸업 후에는 식품기업에서 누구도 만들지 못한 특별한 메뉴를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 대표를 통해 만난 이들은 또 하나의 가족이 됐다. 학교 생활에서부터 숙제와 운동, 청소년기 관심사와 고민을 털어놓으며 서로가 멘토·멘티 역할을 한다. ‘맏딸’ 송예지 양(가명·고등 3학년)은 내년 학교를 졸업하면 후원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동생들과의 인연은 꾸준히 이어갈 생각이다. 송양은 “남들보다 형편이 조금 어려워 보일지 몰라도 저에겐 아이들이 누구보다 밝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천사로 보인다”며 “사회에 나가서도 인연을 끊지 않고, 동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창업 후 적자에도 기부금은 그대로

장 대표는 2007년 20년간 다니던 직장생활을 접고, 식품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1987년부터 현재까지 37년간 사랑의 열매와 유니세프 등 기부단체에 매년 320만원을 후원했다. 월급이 줄거나 회사가 적자가 나도 기부금만큼은 줄이지 않았다.회사 매출의 0.2%를 기부하는 사회적 환원 사업도 빠짐없이 실천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 장학금을 포함해 ‘1사 1교 1촌’ 마을과 학교에 7200만원을 기부했다. 올해는 매출이 10% 이상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부금은 줄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현재 9명인 장학금 지원 대상자도 내년엔 1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대상자를 40명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장 대표는 5년 뒤 회사 경영진에서 물러나 사재를 털어 ‘푸드렐라장학재단’을 만들 계획이다. 장 대표는 “회사에서 나오면 그동안 모은 재산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남은 인생을 살고 싶다”며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 단순한 기부금 전달보다 의미 있게 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조일교 아산시장 권한대행은 “지역 기업 대표가 직접 나서서 아이들과 소통하고, 매월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진정한 기업의 사회공헌을 몸소 실천하는 얘기를 듣고 감동했다”며 “시에서도 많은 기업이 인재 육성과 저소득층 지원 등 사회공헌 활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아산=강태우 기자 kt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