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어 가장 좋은 건 시간이 부족한 것이라우" [서평]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에세이집
국내 독일 문학 번역 1인자
삶의 문제 헤쳐나가는 자세와
바르게 사는 태도를 강조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73)의 번역을 거쳐 국내에 소개된 독일 고전은 70권이 넘는다. 국내 독일 문학 번역의 1인자로 꼽히는 전 교수의 별명은 '괴테 할머니'다. 평생을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연구에 바친 그는 2011년 아시아 여성 최초로 '괴테 금메달'을 받았다. <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은 경기 여주시에서 괴테마을을 운영하고 있는 전 교수의 새 에세이집이다. 전 교수는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낮에는 정원의 잡초를 뽑고 밤엔 괴테의 글을 번역하는 소박한 일상을 공개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에세이집엔 전 교수의 잔잔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실려 있다. 그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괴테를 언급하며 삶의 문제를 헤쳐나가는 자세를 설명한다. 전 교수는 "괴테가 문제를 감당해가는 방법은 그 문제와 정면 대결을 하는 것"이라며 "수학 문제와는 달리 인생의 문제엔 답이 잘 없지만,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면 그것을 감당하는 힘이 생긴다"고 강조한다. 괴테는 맞닥뜨린 문제와 정면 대결을 하면서 그것을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뛰어넘어 훌쩍 성장해 나갔다는 설명이다.

바르게 사는 것의 가치도 강조한다. 전 교수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도 살아지고, 작은 결단들에서 언제나 선한 결단 쪽을 택해서 묵묵히 가노라면 그것이 쌓여 마지막에는 무엇이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이 들어감의 소중함을 전하기도 한다. 전 교수는 나이들면서 가장 좋은 점이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한다. 그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좋은 이야기할 시간도 부족한데, 싫은 사람을 만나서 마음에 없는 말할 시간은 정말로 없다"며 "그런 일들이 자연스레 제거되니 매 순간 좋은 일로 가득해 늘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독문학자이자 시인이기도 한 전 교수는 독서의 가치도 강조한다. 그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내 옆의 좋은 이웃만 만나는 게 아니라 몇백 년 전의 어느 누구까지 만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문학은 여러 인생을 살아볼 수 있도록 돕고, 결국 한 사람의 세계를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에세이집엔 괴테와 헤세, 카프카 등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문장마다 어떤 고민을 거쳤는지부터 부모로서의 고민, 괴테마을을 운영하면서 겪은 소소한 일화 등도 담겨 있다. 특별히 색다른 내용의 가르침이나 조언이 있는 건 아니다. 노교수의 연구실에 초대받아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일상적인 안부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