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소멸과 월세 시대…경기 부진 주범입니다 [심형석의 부동산정석]
입력
수정
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서울 아파트 월세가 고공행진하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울의 평균 월세는 133만7000원입니다. 강남구 평균 월세는 무려 253만원에 이릅니다. 평균 월세도 높지만, 보증금 규모를 고려하면 이미 선진국 수준입니다. 서울 아파트 월세 평균 보증금은 2억원 수준이고 서초구는 4억5000만원이 넘습니다. 이 보증금까지 월세로 전환하면 국내 월세 수준은 세계에서 손꼽힐 수준입니다.
강남 3구의 경우 이미 월세화가 상당 부분 진행돼 매매가격으로 계산해도 수익률이 3%에 가깝게 나옵니다. 은행에 예금을 하는 것보다 똘똘한 한 채를 사서 월세를 주는 것이 수익률이 높아질 정도입니다. 은행의 예금은 시세차익이 없지만, 서울 주거 선호 지역 아파트는 가격도 오르기 때문입니다. 월세로 인한 수익과 시세차익을 합치면 대략 10% 수익률이 나오니 어떤 투자상품보다 안정적이며 유망합니다.자산가들에게는 행복한 이야기지만 국가 경제적으로 좋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월세 상승은 내수경제에 큰 타격을 줍니다. 우리나라에서 주거비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15%인데, 자가 주거비까지 포함하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1인 가구의 주거비 지출 비중은 20%가 넘고, 1인 가구의 월세 비중은 42.3%로 전체 가구의 2배가 넘습니다. 전체 가구 유형에서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점을 고려하면 주거비 부담은 계속 늘어날 겁니다.식비 다음으로 많은 돈이 들어가는 주거비가 오르면 소비도 줄어들게 됩니다. 국내 경기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인 소비 감소는 주거비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저소득층의 소비는 자산가보다 주거비 증가의 영향을 훨씬 더 받습니다. 저소득층의 경우 소득 대부분을 소비로 지출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에는 주거비가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자가 주거비가 포함되기도 하지만, 월세가 지속해서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의하면 2022년부터 2023년 사이 주택 소유자와 임차인 모두 주거비용이 올랐다고 합니다.부동산 중개플랫폼인 레드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주택 가격 상승으로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면서 임대 가구 수가 주택 소유 가구 수보다 3배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수요가 늘어나니 임대료도 급등하는 추세입니다. 미국 임차인 5명 중 1명(22%)은 수입 전액을 임대료 납부에 사용하는 처지입니다. 세입자 7명 중 1명(14%)은 친척에게 받은 돈으로 임대료를 지불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임대료를 내려 부업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전세가 없는 일본에서는 정년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일으켜 주택을 구입합니다. 하지만 장기수선 충당금이나 관리비가 비싸서 상당한 추가 지출이 발생합니다. 월세 임차 또한 매월 지불하는 금액이 많고 정년 후에는 비용지출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문제로 인해 주거도 숙박시설에서 장기 투숙하는 구독형 서비스로 점차 바뀌고 있습니다.특히 호텔의 경우 과거에는 비싸다는 인식이 컸지만, 주거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역에서 가깝고 가전제품이 구비되어 있으며 정기적으로 청소도 해주는데 조건을 감안하면 일반 주택보다 저렴하다는 것입니다.이렇게 주거비 부담이 증가하자 오히려 일본에서 한국의 전세 제도를 연구하기까지 합니다. 전세는 과세나 월세 부담이 전혀 없어 임차인에게 유리한 제도입니다. 아파트를 기준으로 보면 자가주택에 거주하는 비용이 100이라고 했을 때 전세는 50, 월세는 110 내외로 나타납니다.
전세는 주거비 부담이 낮아 임차인에게 유리한 제도이지만, 국내에서는 찬밥 신세를 넘어 공포로까지 인식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전세보증금 미반환의 문제까지 사기로 몰아붙이니 그나마 남아있던 정상적인 전세마저 소멸할 위기로 가고 있습니다. 정부나 HUG에서 추진하는 보증 시스템 전면 개편과 같은 다양한 정책들도 임대차 시장의 월세 전환을 가속할 가능성이 큽니다.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는 시대적 흐름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정부와 공적 기관까지 나서서 월세 전환을 서두르는 것은 자칫 내수경기 회복을 막고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을 늘릴 수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는 속도가 빠를수록 우리 경제에 커다란 부담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부담은 저소득층에게 집중될 것입니다. 전세의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월세 전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