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덩어리' 송중기와 함께 1997년 '보고타'에 뚝 떨어짐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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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중기 "극장서 보는 맛 있는 영화"해발 2,600m 안데스산맥 동부에 위치한 낯설고도 생소한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한국 영화에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낯선 땅, 보고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국인들의 파란만장한 생존기를 다룬 영화가 나온다. 송중기 주연의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의 이야기다.
권해효 "영화가 현실에 압도당하는 시대"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관객들은 주인공 국희(송중기)와 함께 1997년의 콜롬비아 보고타에 놓인다. 이 영화는 남미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마약이라는 소재를 배제하고, 의류 밀수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한인들의 치열한 생존 싸움을 그려내 흥미를 끈다. 낯선 공간에서 서로를 끊임없이 경계하고 의심하는 인물들의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첨예한 드라마를 통해 팽팽한 긴장감과 몰입감을 준다.19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김성제 감독은 "연대기 영화가 늘 근사해 보이지만 사실은 재미를 얻기가 쉽지 않아 연대기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두 시간 안에 긴 시간을 캐릭터를 통해 담아내는 것은 흥미롭고 괴로운 일이었다"며 "인물들이 다른 얼굴과 감정을 갖게 하고 퇴장하게 하는 그런 시간이 공부가 많이 됐고, 배우들을 존경하게 됐다"고 말했다.한국에서부터 이동만 최소 20시간 이상이 걸리는 콜롬비아.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콜롬비아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하게 된 것은 영화의 시작이 바로 콜롬비아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당시 콜롬비아 보고타를 방문한 적이 있는 제작사 대표는 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의 흥미로운 삶을 목격했고, 그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영화를 기획했다.기획 단계에서부터 직접 콜롬비아에 여러 차례 방문한 김성제 감독은 현지에서 터를 잡고 생활하는 한인들을 인터뷰하며 극에 리얼리티를 더해나갔다. IMF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한국인들이 생소한 타국에서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1997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현실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김 감독은 "보고타가 범죄 도시는 아닐 테지만 먼 곳으로 떠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넓은 세계로 떠난 사람들이 작은 도시에서 갈등을 빚다 보니 극단으로 가서 범죄물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일찍 어른이 된 청년의 감정을 위해 이 장르를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넷플릭스 '수리남'이 수리남을 마약과 부패에 찌든 국가로 묘사하면서 수리남 외무장관의 항의를 받은 바 있다.김 감독은 "그런 종류의 구설에 휘말릴까 조심한 건 없다"며 "포브스에도 나온 80년대에 활동한 마약왕이 93년도에 보고타에서 죽은 걸 봤다. 이 영화 속에서 내가 설정한 시간 이전의 10년은 실제로 보고타가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희가 촬영한 당시에도 여진이 남아 있는 게 사실이고, 장르적 허구를 부르려 애쓴 건 아니고 나라의 이미지를 훼손하려는 의도보다 현실적인 소재와 디테일을 가지고 서사를 다뤘다. 현지 프로덕션과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미국인들이 더 험한 작품을 만들어 우리 영화는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다"고 부연했다.송중기는 보고타의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높은 곳을 꿈꾸는 청년 국희 역을 맡아 20대부터 30대까지 한 인물의 서사를 연기했다.송중기는 "거의 매회 차 촬영이었다"며 "선배들 이야기 들어보니 재미있게 노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낯선 환경이었지만 해외 촬영은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많은 환경이라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역만리 떨어진 곳의 한국 사람들의 갈등을 다룬다는 서사에 집중하고 동료들과 부대끼면서 있다 보니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들도 많이 나온 것 같다. 힘을 많이 얻었다"고 말했다.
극 중 콜롬비아가 범죄의 온상으로 그려지는 것에 대해 송중기는 "장모님이 콜롬비아 분"이라며 "와이프 가족들이 거기 많이 살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2023년 케이티 루이스 사운더스와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이어 "가족들과 교류 하다 보니 예전엔 현지 분들이 그런 이미지를 부끄러워하거나 걷어내고 싶어 노력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지내본 콜롬비아는 굉장히 흥이 많고 정이 많고 음식이 미쳤다. 너무 맛있다"고 치켜세우고 "저는 가족도 있고 친근한 곳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촬영할 때만 해도 정보를 얻을 곳이 적었는데 요즘은 정보를 얻을 곳이 많다. 보시면 알겠지만, 요즘은 그런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았나 싶다"고 전했다.
송중기는 "'보고타'를 제일 먼저 찍고 중간에 '빈센조' 찍고 또 '보고타' 찍다가 '재벌집 막내아들', '화란', '로기완'을 촬영했다"며 "부족하지만, 드라마를 하면 다음엔 영화를 하는 게 밸런스가 맞는다고 생각했다. 국희란 캐릭터가 제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확고한 욕망덩어리라고 생각한다. 변주라고 생각했는데 귀엽게 봐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감독은 "송중기가 연기하는 국희는 세월 안에서의 변화는 유약해 보일지도 모르고 부드러워 보일지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되게 강단 있었다"며 "무대포 같은 면, '돌아이' 같은 태도가 있고 그런데 젊고 어리다, 그런 느낌을 십분 살려줬다"고 했다. 그는 "내가 상상한 것과 다른 느낌으로 풀고 가는 송중기를 보는 게 흥미로웠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충무로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희준이 한인 밀수 시장의 2인자 통관 브로커 수영을 연기했고, 한인 사회를 주름잡는 박병장은 권해효가, 그이 조카 작은 박사장은 박지환이 연기했다.
이희준은 "촬영을 안 할 때는 현지의 리듬을 느끼고 싶어 살사학원도 다녔다"며 "공간이 조금 위험할 수 있어서 안전하게 구역을 한정 지었다"고 했다.
이어 "함께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모두가 '보고타'에 대한 이야기만 했고, 어떻게 좋은 영화가 될지,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눴다"고 떠올렸다.
권해효는 "우리가 늘 있던 곳이 6구역이었는데 꽤 평화로웠다"며 "숙소에 있기보다 길거리 노천 카페에서 사람들의 호흡과 분위기를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호텔 옥상에서 태닝을 하며 현지의 분위기를 느끼려 했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대본을 집필하는 것부터 이 자리에 서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며 소회를 전했다.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송중기는 "올해 마지막 개봉작이자 2025년 첫 영화"라며 "1월 말에서 2월까지 오래 걸려있으면 좋겠다"며 "도와주십시오"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아울러 "극장에서 보는 맛이 있는 영화"라며 "맛있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권해효는 대통령 계엄사태 후 탄핵 정국을 염두에 두고 "영화적 상상력이 현실에 압도당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며 "'보고타'는 사람을 기억하는 영화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보고타'는 변화에 대한 영화다. 많은 변화 앞에 서 있는데 관객들이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지 궁금하다"며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