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티니핑 열풍'에도 웃지 못하는 문화강국

문화강국이지만 '애니 불모지'
일본-중국 사이에서 전략 부재

원종환 중소기업부 기자
“K애니메이션이 K팝이나 K패션처럼 승승장구하는 날은 언제 올까요.”

최근 기자와 만난 SAMG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회사에 전환점을 준 ‘캐치! 티니핑’의 인기가 한철로 끝나진 않을 것 같다”면서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SAMG엔터는 중소기업 중 자체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유일한 상장사다. 요즘 가장 ‘핫’한 티니핑의 인기에도 이 관계자는 “애니메이션 불모지인 한국에서 수풀을 헤치며 길을 개척하는 심정”이라고 했다.티니핑 시리즈는 국내 애니메이션 역사를 갈아치웠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캐릭터산업백서’에서 티니핑은 절대 강호인 ‘뽀로로’를 제치고 2년 연속 ‘10세 이하 어린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8월 개봉한 영화 ‘사랑의 하츄핑’은 어른 관객까지 끌어모으며 관람객 123만 명으로 ‘역대 국내 애니메이션 관람객 2위’를 기록했다. 게다가 문구, 완구, 음료, 액세서리 등 1000여 개에 달하는 IP 협업도 활발하다. 뒤에 ‘핑’을 붙인 수많은 캐릭터가 쏟아지자 부모들 사이에서 ‘파산핑’(파산+티니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럼에도 우려가 나오는 건 전례가 있어서다. 한때 뽀로로와 아기상어도 인기를 누리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개별 회사들의 노력이 잠깐 빛을 볼 순 있지만 전체 산업이 성장하기엔 역부족이다. 한국은 K팝과 K드라마의 인기로 ‘문화강국’ 위치에 있지만 유독 애니메이션산업에선 후발주자로 평가받는다. 전통적인 강자 일본과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보다 인프라나 시장이 열악해서다.

업계에선 “캐릭터 하나 만드는 데 수백억이 드는데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연구개발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유능한 인재를 채용해 계속 좋은 IP를 개발하고 싶어도 유망한 애니메이터들이 속속 해외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전통의 강호’ 일본은 100년 전부터 장인들이 제자를 육성하는 도제식 교육으로 장인정신을 계승, 지난해 3조엔(약 28조원)에 달하는 시장으로 키웠다. 일본 정부도 ‘쿨 재팬 펀드’를 조성해 전폭 지원에 나섰다.

이를 따라잡기 위해 중국은 정부가 나서 텐레이, 미효오 같은 콘텐츠 회사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만 약 50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중국 애니메이션 기업 1878만 개 가운데 절반가량은 1년 이내 설립된 신생 기업이다. 그렇다면 장인정신과 자본이 부족한 한국은 과연 어떤 전략을 세울 것인가. ‘어린이’에서 ‘가족’으로 소비자를 확장한 티니핑의 성공 사례를 거울삼아 이 지점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