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톱7 건설사도 못 버텼다…"이러다 지방은 초토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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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도 일감도 없다"…건설사, 폐업·부도 공포아파트 브랜드 ‘오투그란데’로 알려진 제일건설이 이달 초 7억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 처리됐다. 전북 지역 대표 건설사로 익산시 남중동(298가구·공정률 83%)과 함열읍(259가구·76%)에 아파트를 짓다가 자금난에 처했다. 공사비 급등, 미분양 증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에 이어 대통령 탄핵 사태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며 건설 생태계 기반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공사비·미분양 급증
수주금액 12% '뚝'
10월까지 문 닫은 곳
작년 전체와 비슷
건설업종 종사자
11년來 최대폭 감소
2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경기 불황으로 중소 건설사의 폐업과 부도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문을 닫은 종합건설사는 394곳으로 지난해 전체(418곳)와 맞먹는다. 건설업 종사자도 급감했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0월 기준 국내 건설업 종사자는 206만1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줄었다. 건설업 종사자 감소율이 4%대를 기록한 것은 2013년 2월 이후 11년8개월 만이다.
건설시장이 크게 위축된 것은 경기 부진과 부동산 침체 장기화로 건설사 실적이 나빠져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건설기성액(업체가 자체 평가한 공사 실적)은 건축(-12.0%)과 토목(-1.9%) 모두 줄어 작년 같은 기간보다 9.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 수주액도 작년 동기 대비 11.9% 줄었다. 건설업계에서 “자금도, 일감도 없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
내년 건설 투자 전망도 어둡다. 박선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건설업계는 공사 물량 감소, 경쟁 심화, 이익률 저하 등으로 크게 위축된 상황”이라며 “내년 건설 투자는 올해보다 감소해 금액 기준으로 300조원을 밑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치솟는 공사비 못 버티고 '부도'…부산 중견건설사마저 문닫았다
올해 문닫은 업체 대부분이 지방…종합건설사 폐업 1년새 21% ↑
대전 가양동의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은 작년 12월 공사가 중단된 뒤 1년째 방치돼 있다. 한 차례 공사비 인상 후 시공사가 늘어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또다시 공사비를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조합의 거절로 중사 중단이 장기화하고 있다. 돈을 받지 못한 하도급업체는 현장에서 철수했고, 일부 전문건설업체는 일감 고갈로 문을 닫았다.건설 경기가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전국 곳곳의 공사 현장이 멈춰 서고 있다. 한때 지역을 대표하던 중견 건설사도 부도 처리되거나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경기 불황에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사태 등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며 건설업계는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 중견 건설사도 잇단 부도
2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강원 춘천시 근화동 춘천 시온 숲속의아침뷰 아파트는 최근 시공사가 부도났다. 지난 6월에서 내년 2월로 미뤄진 입주 시기는 시공사 부도로 또다시 내년 7월로 연기됐다. 민간 임대 아파트 계약자(318가구)는 입주 지연으로 월세살이를 이어가고 있다.지역에서 알짜 회사로 인정받던 중견 건설사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 부산의 신태양건설(시공능력평가 105위, 부산 7위)은 최근 230억원 상당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 처리됐다. 이 회사는 1995년 설립 이후 20년 넘게 흑자와 무차입 경영을 이어오던 곳이어서 부산 건설업계의 충격이 작지 않다는 후문이다.중소 건설사는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공사비 급증, 공사 미수금 증가, 부동산 PF 부실 등이 맞물리며 경영난이 심화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9일까지 부도 처리된 건설업체는 30곳에 이른다. 작년 전체 부도 업체(21곳)는 물론 2020년(24곳) 수치를 훌쩍 넘어섰다.
올해 부도 처리된 건설회사 대다수는 지방 업체다. 폐업도 속출하고 있다. 올해 1~10월 폐업한 종합건설사는 394곳, 전문건설사는 1710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0.85%, 8.9% 늘었다.
○ “내년에도 건설 경기 악화 지속”
문을 닫는 건설업체가 늘어나면서 건설업 종사자는 줄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올해 2분기 임금근로 동향’에 따르면 건설업 일자리는 1년 전에 비해 3만1000개 감소했다. 작년 4분기(-1만4000개), 올해 1분기(-4만8000개)에 이어 세 분기 연속 줄었다.경기 침체, 미분양 증가 등으로 그나마 있던 공사 현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중소 건설사뿐만 아니라 대형 건설사도 신규 공사가 감소하며 현장 인력이 갈 곳 없는 처지에 놓이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몇몇 대형 건설사는 실적 악화로 임원을 크게 줄이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러다가 국내 건설업 생태계가 붕괴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건설업계 체감 경기를 나타내는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는 지난달 66.9까지 하락했다. 전달보다 4.0포인트 급락한 것이다. CBSI는 100을 밑돌면 건설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문제는 이 같은 흐름이 내년 상반기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지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출 규제, 부동산 PF 부실, 높은 공사비 등이 건설 경기 회복의 제약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안정락/김소현/유오상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