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예쁜 게 억울했을 신민아, 여배우 진화론을 검증한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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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믿기지 않겠지만 여배우 신민아가 나이 마흔이 됐다. 거기까지는 괜찮다. 이제 며칠 있으면 마흔한 살이 된다. 이제부터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여자, 여배우가 나이를 먹는 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이 칼럼을 통해 늘 얘기하는 것이지만 여배우들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40대이다. 그것도 40대 초반 때이다.
예쁜 외모로 과소평가 된 연기력
선입견을 이겨 나간 배우 신민아
드라마·영화를 넘나들며
또 다른 연기 세계를 구축
그건 미국의 다이안 레인이 그랬고, 프랑스의 소피아 로렌이 그랬으며 홍콩의 장만옥이 그랬다. 이탈리아의 ‘뇌살(?)’적인 외모가 휘황찬란하게 빛났던 ‘007 스펙터’ 때의 모니카 벨루치는 그녀의 나이 50이 넘어서이다. 여배우의 나이는 40부터이다.신민아의 연기가 저평가돼있다는 감독 육상효의 지적은 맞는 것이다. 신민아는 연기력이 출중함에도 영화 쪽에서는 글쎄, 하는 표정이 지배적이었다. 솔직히 그건 신민아가 너무 예뻐서이다. 예쁜 여배우는 주로 뷰티 제품 광고에 많이 나가고 얼굴과 몸매가 클로즈업되며 그녀가 지닌 내적 에너지, 내면은 오히려 감춰지기가 쉽다. 그보다 진짜 이유는 CF 광고로 자주 보는 모델을 영화 속의 다양한 캐릭터로 만나는 데에 일정한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 대중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모델이 연기를 하면 얼마나 하겠느냐는, 오해와 편견의 외피를 한 꺼풀 안고 연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그 같은 선입견을 이겨 나가려 했던 신민아의 노력이 돋보였던 작품이 바로 ‘디바’이다. 신인 감독의 작품’답게’ 영화는 뒤로 갈수록 다소 갈팡질팡하고 그래서 정리가 잘 안되고 또 그래서 대체 어떻게 됐다는 거야, 라는 관객들의 불만을 샀으며 결국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냐는 핀잔까지 나오면서 영화는 흥행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두 여배우 신민아와 이유영의 연기 투혼은 평타 이사의 점수를 얻었다. 두 사람이 특히 그랬던 건 신민아는 신민아대로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었고 이유영은 이유영대로 연인이었던 김주혁의 죽음, 그리고 결혼 이후 첫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런 ‘어드밴티지(?)’를 지니고 있는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던 건 순전히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졌던 탓이다.영화 ‘디바’는 라이벌 관계의 두 수영선수의 이야기이며 그중의 한 명이 실종된 후 끝내 시신으로 발견된다는, 미스터리 스릴러극이다. 주인공들이 수영선수인 만큼 물속의 이미지, 물과 뭍의 교차 편집, 이른바 수면 하(下)의 의미가 지닌 인간 내면의 복잡성, 선악의 모호성을 그린 내용이다. 신민아는 잘했지만, 감독은 잘하지 못했다. 뒤늦게 질타해서 미안한 얘기지만.
신민아의 존재 증명, 그 낙관(落款)을 확실하게 찍은 작품은 옌볜(연변) 조선족 출신의 감독 장률의 복잡미묘한 영화 ‘경주’(2014)이다. 장률은 사회주의와 반사회주의, 자본주의와 반 자본주의의 사이에 서 있는 이념적으로 변태적(?) 성향을 지닐 수밖에 없는 경계인의 감독이었고 그래서인지 공간과 특정 지역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많이 찍었다. ‘경주’ 외에도 ‘군산 : 거위를 노래하다’가 있고 ‘후쿠오카’ 같은 작품도 있다.
‘경주’에서 신민아는 고도(古都) 경주에서 찻집(다도 집)을 운영하는 윤희를 연기한다. 상대 남자는 북경대에서 교수 ‘짓’을 하며 살아간다는, 감독 장률만큼 수상한 남자 최현(박해일)이다. 최현은 장률의 얼터 에고(분신)인 셈이다. 최현이 윤희의 찻집을 찾은 이유는 옛날 그 집에 춘화가 걸려 있었다는 기억 때문이다. 최현은 자꾸 윤희에게 춘화 얘기를 한다. 춘화가 걸려 있었을 법한 벽 앞 테이블에 앉아 두 남녀가 고즈넉이 차를 마시는 장면은 기이하게도 배치되지 않고 상충한다. 세상은 그렇게 기이하게 중첩되고 어울린다는 식의 내면을 보여주는 장면이자 그런 영화였다.경주를 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거기에는 ‘오릉’ 같은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다섯 개의 능이 있고, 놀랍게도 영화는 그 오릉 꼭대기에 주인공 박해일을 올린 후 그 밑에서 신민아가 올려 보는 컷을 찍었다. 보통 아무리 유명한 영화라도 국가유산청이 촬영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어려운 컷이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그 장면이 좋다. 기억에 남는다.장률이 속으로 갖고 있는 기이한 성적 판타지(이건 순전히 사회주의 체제의 억눌린 정서 때문일 것인데)를 극 중 주인공 최현 교수가 발산하는데 우아하고 섬세한 이미지의 찻집 주인 윤희는 그를 통해 자신의 억눌린 욕망을 발견해 간다. 그 민감한 연기를 신민아가 해냈다. 영화 ‘경주’는 그 이전의 ‘10억’ 같은 싸구려 상업영화에서 자칫 소모될 뻔했던 신민아를 재발견하게 해 준 작품이다. 무엇보다 신민아 자신이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특이한 것은 ‘경주’ 이후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2011)와 ‘우리들의 블루스’(2022) 사이에 일정한 갭이 발생하는데 아마도 그것은, 뇌피셜상, 연인이자 배우인 김우빈의 비인두암 투병 기간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민아는 이 기간에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치중했으며 활동 폭 자체가 크지는 않았다. 김우빈은 현재 암을 완치시킨 상태이다. 둘은 여전히 연인이다. 둘 사이에 낳은 아기는 과연 어떤 외모를 지니게 될까? ‘서브스턴스’의 마가렛 퀄리 같을까? 엄마인 앤디 맥도웰의 우수 유전자를 타고 난 아이 같을까? 세상은 참으로 언페어(unfair)한지고.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는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의 리메이크 드라마 버전이니만큼 크게 할 얘기는 없다. 딱 하나. 신민아가 푼수 연기의 일품을 보여줬고, 그녀가 많은 부분 내려놓고 있음을 보여줬으며 그래서 연기력이 급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신민아의 연기 덕에 이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는 시청률 12%를 찍었다.‘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신민아는 블루칼라 남자(이병헌)의 사랑을 받는 화이트칼라 여성 역할을 한다. 이 드라마는 이 커플 얘기가 좋다.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 준다. 둘의 사랑이 끝내 완성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해피엔딩스럽지도 않다. 둘의 애매모호한 관계처럼 세상사, 인생사 모두 그런 것이다, 라는 점을 보여 준다. 신민아는 드라마 속에서 몇 번을 죽으려 하는데 그 처연한 연기, 우는 연기가 일품이었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연기자 신민아는 그동안 과소평가 돼 왔다.육상효의 영화 ‘3일의 휴가’에서 신민아는 못된 딸이지만 알고 보면 착한 딸 역할을 오가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딸은 엄마가 가면서 꼭 가져가라고 요것 저것 반찬을 해 주는 걸 귀찮아하면서 소리를 빽빽 지르며 신경질을 부린다. 이런 거 뭣 하러 했어, 힘들게 이런 거 하지 말랬잖아, 라며 패악질을 부린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혼자 그 찬을 먹을 때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댄다. 참으로 자신이 그렇게 ‘븅신’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늙은 엄마를 만나면 또다시 신경질을 부리기 일쑤다. 이런 빈곤의 악순환은 그러다 덜컥 엄마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영화에서 엄마(김해숙)는 그런 딸을 두고 나오면서 문자로는 차를 잘 탔다고 하고 혼자 버거킹 집에 앉아 아이스크림이 녹는지도 모른 채 앉아 있는다. 바보천치 같은 딸은 후회하며 뒤를 쫓아 나왔다가 그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선다. 신민아가 ‘3일의 휴가’에서 사람들을 철철 울게 만든 건, 세상의 모든 딸이 대체로 다 공동정범의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3일의 휴가’는 신민아의 또 다른 연기 세계를 구축한 작품이다.이 글을 쓰는 내내 신민아의 용모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연예지들은 대체로 이렇게 쓴다. ‘작은 얼굴과 꽉 찬 이목구비, 우월한 비율.’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안다. 그런 거 다 소용없다는 거. 세월은 가는 것이고 사람은 늙는 것이며 남는 것은 자신의 마음과 내면뿐이라는 걸. 신민아가 그걸 깨달아 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신민아의 제일 큰 장점은 늘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무엇보다 배우는, 그리고 여배우는 진화해야 하는 법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