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女 만나고 싶은데…" MZ들 속 털어놓는 상담사 정체 [유지희의 I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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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 상담 창구로 챗GPT 이용하는 사례 속출
연애·진로 뿐 아니라 소소한 일상 고민까지 나눠
Q. 전 남친에게 내 안에 있는 못 다 한 이야기를 다 해버리고 싶어 (20대 대학생 이 모씨)
A. 그 마음 정말 이해해, 헤어진 사이에서도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면 그게 마음속에 계속 남아 답답하고 힘들 수밖에 없어.Q. 좋아하는 여자 어떻게 꼬실까? (30대 직장인 정 모씨)
A. 누군가에게 관심을 표현하거나 가까워지려면 진지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모든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편안함과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2030세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고민을 상담하는 창구로 챗GPT를 이용한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연애, 진로 등 무거운 주제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고민을 챗 GPT와 나누며 위로받고 있다.
"챗 GPT는 나만의 '거울치료' 도구"
최근 만나던 남자친구와 이별했다는 대학생 이 모씨(25)는 챗GPT를 본인의 '거울 치료 도구'라고 불렀다.그는 "친구들에게 연애 상담을 할 때마다 그 친구의 시간을 뺏는 거 같고 답이 정해진 질문을 하는 거 같아 신경 쓰였는데 챗 GPT와 상담을 하니 그런 부담이 없다"며 "챗GPT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상담을 해주다 보니 친구들과 할 때 보다 더 맞는 말을 해줄 때가 많고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따뜻한 말투로 상담을 해줘서 좋았다"고 말했다.
얼마 전 소개팅으로 만난 여성에게 차였다는 직장인 정 모씨(31)도 "업무할 때 종종 사용하던 챗GPT에 그녀의 마음을 다시 얻을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봤다"며 "편안하게 다가가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물어봤는데 '긍정적이고 밝은 태도 유지하기', '공통된 관심사 찾기' 등 디테일하고 명쾌한 솔루션을 줘서 이를 참고해 다시 그녀를 잡아보려 한다"고 말했다.젊은 세대들은 최고 관심사인 연애뿐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고민도 챗GPT의 답변을 참고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병원 치위생사로 일하는 김 모씨(28)는 "이번 주말 직장 동료의 결혼식이 있는데 결혼식을 마치고 고향을 내려갈지, 결혼식에 축의금만 보낼지 고민이 됐는데 챗 GPT가 이 두 가지 경우를 모두 고려해 각각 답변을 내려줘서 명쾌했다"며 "솔직히 뭘 더 추천하냐는 질문에 "못 간다고 하고 돈 보내는 걸 추천해"라고 하길래 그렇게 하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챗GPT는 김 모씨에게 '나름대로 친한 동료'의 경우 축의금 3만원, '자주 만나고 가까운 동료인 경우'엔 축의금 5만원을 책정해줬다.
'내년 3월 14일'…기자에게 솔로 탈출 날짜 알려주기도
챗GPT에 대한 쏟아지는 칭찬에 기자도 챗GPT를 이용해 상담을 요청해봤다. 2030세대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연애'로 주제를 잡고 여러 가지를 질문했다. 다양한 대답을 듣기 위해 일부 질문엔 '팩트폭행', '친구' 컨셉을 학습시켜 답을 받아봤다."기자로 일한 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애하지 못했는데 무엇이 문제인 거 같냐"는 질문에 "정신이 번쩍 들게 솔직하게 말할게, 남자친구가 없는 건 네가 기자라서도 바빠서도 아니야, 문제는 네가 연애에 얼마나 진심이었냐는 것"이라며 "연애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상대를 너무 따지고 기준을 높게 잡지 말고 핑계 대지 말고 네 태도를 바꿔라"라는 단호한 조언을 했다.
언제쯤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은지 날짜를 짚어달라는 질문에는 '2025년 3월 14일 화이트데이'를 꼽았다. 챗 GPT는 "그날 네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 나타나서 네게 작은 선물을 건네며 '같이 시간 보내보자'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려진다"면서 "네가 너 자신을 더 사랑하고 네 삶을 즐기고 있다면 그 날짜는 조금 빨리질 수도, 늦어질 수도 있지만 꼭 올 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위로했다.
답변의 정확성은 내년 3월 14일 알 수 있겠지만 챗GPT는 "그 날짜가 지나도 안 나타난다면 진짜 완벽한 사람이 나타나려고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라며 이렇게 생각하면서 멋진 삶을 계속 만들어 가자"고 용기를 북돋웠다.
2030세대 우울증 환자 수 35만명…AI 챗봇 이용률도 높아
업계에서는 이같이 최근 20~30대 젊은 세대에서 AI를 통한 상담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건 우울증·심리 치료에 대한 수요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지난 1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 100만32명 중 2030 우울증 환자 수는 약 35만명으로 전체의 35.9%를 차지했다.
또한 1회당 평균 5~15만원 선인 개인 심리 상담 대신 챗GPT 유료 버전 구독료(월 20달러)를 지불하면 무한 상담이 가능하다는 점도 수요 증가 원인으로 꼽혔다.
윗세대와 달리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기술을 쉽게 사용하고 이를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통합하는 경향이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발간한 'AI 챗봇 인지도 및 이용행태' 보고서에 따르면 연령대별 AI 챗봇 이용률은 20대와 30대가 각각 26.0%, 26.5%로 전 연령에서 가장 높았다.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고민이 많은 2030 세대들은 AI를 통해 상담하면서 자신의 비밀이 유출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덜게 된다"며 "또한 상담가보다 챗 GPT가 더 많은 정보다 데이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명쾌한 답변을 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