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오페라'라더니…'투란도트' 뚜껑 열어보니 총체적 난국

22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첫 공연
이탈리아 연출자, 제작사측과 갈등으로 전격 하차
"권위주의적 강요, 내 작품으로 인정못해"

예매한 좌석 사라지고, 음향 디자인도 미진
화난 일부 관객들 환불 요구 줄이어
"한국 공연 전반 이미지 타격 불가피"
오페라 '어게인 2024 투란도트' 커튼콜 / 사진=음악평론가 장일범 SNS
지난 22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오페라 ‘어게인 2024 투란도트’는 국내 오페라 팬들에게는 올 연말 최대 기대작이었다. 2003년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공연돼 신드롬급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품을 실내 공연장에서 재현한 작품으로, 주최측은 ‘세계 최고의 오페라 스타들이 영혼을 쏟아내는 세기의 오페라’라고 홍보했다. 티켓 가격도 최대 100만원(VIP석 기준)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총체적 난국’ 그 자체였다는 평가다. 연출가와 제작사간의 갈등, 관객에 대한 배려와 기획력 부재 등으로 한국 오페라에 대한 불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란도트를 둘러싼 파행은 22일 첫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에 이탈리아 연출가 다비데 리버모어가 “수준 미달의 투란도트를 내 작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결별을 고하고 한국을 떠나면서 시작됐다. 그는 “제작사측은 과거 2003년 장이머우 감독의 공연무대 동선을 복사할 것을 강요했다”며 “이는 협력이 아닌 아마추어 수준의 권위주의적 강요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박현준 총예술감독이 합의된 계약상의 지급 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고도 했다.의도했던 연출을 할 수 없게 된 것과 더불어 객석 문제도 불거졌다. 주최측은 시야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갑작스레 좌석수를 6800석에서 4000석으로 줄였다. 이로 인해 티켓을 예매하고도 공연을 볼 수 없게된 관객들이 생겨났다. 좌석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일부 관객이 환불을 요구했고, 항의성 고성이 이어지는 등 입구에서부터 난리통이 벌어졌다. 클래식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에서는 “2층 좌석을 예약했는데, 2층 객석이 통째로 사라졌다”, “1층 20열을 예매했는데 막상 가보니 19열까지만 좌석이 마련돼 있어 놀랐다”는 등의 증언이 올라왔다.

간신히 공연장에 앉은 관객들 사이에서도 불만은 터져나왔다. 비싼 티켓 가격을 지불했으나 행사용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야했고, 객석에 단차마저 없어 공연 몰입이 어려웠기 때문. 코엑스 대형 전시장을 특설무대로 꾸민 데 따른 연출의 한계, 음향 디자인의 미진함도 드러났다. 세계적인 테너 출신 지휘자인 호세 쿠라, 투란도트 역의 소프라노 아스믹 그리고리안,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의 훌륭한 가창이 이어졌지만, 앞선 파행으로 이번 공연 전반에 대한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오페라 '어게인 2024 투란도트' 기자간담회 / 사진=연합뉴스
이번 공연은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마지막 국내 공연이었다. 화려한 무대, 세계적인 출연진 등장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제작자와 연출자 간의 갈등,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공연장의 한계 등으로 관객에게 깊은 실망을 안겼다. 연출자가 떠나버린 상황에서 이번 공연을 기획한 박현준 총감독이 급작스레 공연 연출을 맡게 되면서 향후 공연에 대한 기대감도 낮아졌다.박 감독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한국을 떠난 연출자에게 이번 공연이 20여년전 상암 월드컵 경기장서 열린 ‘투란도트’의 실내 버전이라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다”며 “연출자와 그의 어시스턴트 모두 제작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개런티 전액 선지급을 요구한 것은 잘못된 관행”이라고 해명했다. 박 감독에 따르면 연출진은 한달로 약속한 연습기간에 단 한 시간도 참석하지 않았으면서 개런티 전액을 선지급 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객석이 조정된 부분에 대해 현장에 있던 한 관객은 “당초 6800석으로 잡아뒀던 객석을 줄이면서, 낮은 등급 고객의 좌석을 업그레이드 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비상계엄 여파로 취소표가 발생해 좌석을 조정했지만 예매 사이트에 반영이 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계엄령이 불과 몇시간만에 해제된데다 2000석이 한꺼번에 사라진 원인으로 보긴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익명을 요구한 공연계 인사는 “이번 사태로 한국의 공연 제작 능력에 대한 전반적 불신이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연에 참여했던 성악가들이 한국의 공연 제작 시스템의 미흡함을 거론할텐데 이는 오페라 공연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