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소급 소송 제한…"대법원 말 믿어도 되나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1년만에 통상임금 법리를 바꾼 가운데 법조계와 인사·노무업계에서는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판결의 적용을 두고 혼란을 빚고 있다. 특히 대법원이 바뀐 판례 법리의 소급효를 제한하고, 원심의 핵심 쟁점인 '재직 조건'에 대해선 구체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은 점도 후속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법원은 지난 19일 한화생명보험 전현직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재직자만 주는 조건(재직조건)’이 붙은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대법원은 통상임금으로 인정받기 위한 세 가지 요건(정기성·일률성·고정성) 중 고정성 요건을 삭제했다. 고정성이란 ‘근로할 당시 별도 조건을 갖출 필요 없이 지급 여부가 확정됐다’는 뜻이다. 이에 따르면 '재직 중'이라는 '조건'을 갖춰야 지급하는 상여금은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이 아니다. 대법원이 고정성을 삭제하면서 앞으로 재직 조건과 관계 없이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하지만 정작 원심에서 핵심 쟁점은 '재직 조건이 유효한지' 여부였다. 2심 서울고등법원은 '재직 조건' 자체가 '무효'이므로 통상임금이라는 취지로 판단해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대법원은 고정성 요건을 삭제하면서 '재직 조건' 자체가 무효인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재직 조건이 무효라면 앞으로 지급일 전에 퇴직한 '퇴직자'도 상여금을 받아갈 수 있다. 예를 들어 3월 31일에 지급되는 1분기 정기 상여금은 2월 말에 퇴직하는 근로자에게도 지급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인사담당자들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내년 상여금 지급 기준을 다시 작성해야 하는데 해석이 어렵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판단하지는 않았지만 재직 조건이 유효하다는 점을 전제로 판단하는 판시 내용이 보여 재직 조건이 무효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소급효 제한" 대법 판결, '소송 리스크 억제' 맞나

대법원이 사회적 혼란을 막겠다면서 바뀐 판례 법리의 '소급효력'을 제한한 점도 추후 법적 논란이 예상된다. 대법원은 이 판결이 "수많은 집단적 법률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새로운 법리는 이 판결 선고일 이후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번 한화생명보험 사건과 현재 다른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 중인 '병행사건'에만 소급 적용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최초로 병행 사건까지 소급효과를 미치도록 해서 법적 안정성을 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이런 판단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법원 출신 한 변호사는 "판례의 변경은 소급효가 있는게 원칙"이라며 "법률 등의 소급효 제한은 입법부의 몫이며 사법부에 명확한 법적 근거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다른 법원 출신 변호사도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해 소급효를 제한하는 '변형 결정'을 했는데, 국민의 소송할 권리 등 기본권을 제한할 법적 근거는 빈약하다"며 "노동조합이나 개별 근로자들이 대법원의 소급효 제한 판단을 따를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소급효 제한 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근로자 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통 노조 등에서 통상임금 소송을 낼 때엔 소송 비용 등을 아끼려 근로자 중 일부만 소송을 제기하고 승소 시 나머지 인원들이 추가 소송을 진행한다. 결국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대기 중이던 나머지 직원들이나, 승소 근로자들과 같은 임금체계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은 대법원의 소급효 제한으로 구제를 받지 못한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형평성 침해 등을 이유로 후속 소송이 제기할 수 있다"며 "대법원의 '추가 해명'이 없다면 사업장에선 당분간 '과도기적 혼란'은 불보듯 뻔하다"라고 덧붙였다.고용부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현장에서 질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곧 통상임금 해석 관련 지침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곽용희 좋은일터연구소 연구위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