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성장 아세안, ESG 고민도 늘었다

아세안 지역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ESG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별로 보면 ESG 적용 속도, 정부 규제, 투자 환경 등이 다양하다. 그렇다면 아세안 지역이 진정한 ESG 투자처로 주목받으려면 어떤 조건이 수반되어야 할까.
[한경ESG]-한-아세안센터
한-아세안센터는 2023년 11월 23일, '한-아세안 ESG 포럼'을 개최했다. 한국 및 아세안 ESG 관계자들이 참석해 주요 이슈 및 활용 방안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 /한아세안센터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하 아세안) 회원국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에 적극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한-아세안센터가 최근 발간한 〈한-아세안 ESG 현황: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방안〉에 따르면 싱가포르·태국·베트남·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10개국이 모인 아세안은 인구 6억6400만 명에 3조3500억 달러의 경제 규모에 달한다. 아세안 지역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ESG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아세안 국가별 ESG 활동을 보면 싱가포르는 지속가능한 금융과 탄소 서비스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으며, 인도네시아·태국·베트남은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필리핀은 상장사들이 자사의 온실가스배출량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중소기업들이 ESG를 적용하도록 장려하는 계획에 착수했다.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개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채권을 점점 더 많이 발행하고 있다. 브루나이는 태양광발전을 확대하기 위한 국가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도입했고, 미얀마는 환경보호 강화에 주력하는 등 아세안 국가 전반에서 ESG 이니셔티브가 실행되고 있다.
한-아세안 ESG 가이드북 국문본 발간 세미나가 2024년 11월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됐다. 민간과 공공 부문의 ESG 관계자들이 모여 ESG 가이드북 국문본 출간을 기념하고 전문가 토론을 통해 한국과 아세안의 ESG 동향 및 모범 사례를 논의했다. /한-아세안센터
아세안 국가들, 규제 프레임워크 개발 통해 ESG 확장〈한-아세안 ESG 현황: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방안〉에 따르면 아세안 국가들은 지속가능금융을 위한 아세안 분류체계(택소노미)처럼 아세안 전체에 적용되는 규제 프레임워크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프레임워크는 해당 분야에 통일된 정의와 규제 구조를 제공하면서 개별 회원국이 자체적으로 일정과 기준을 설정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에너지 부문에서 아세안 국가 간 협력이 늘어나는 추세다. 아세안 사무국과 회원국은 ESG 활동과 관련한 역량강화, 지식 공유 및 자금조달을 위해 국제 파트너들과 적극 협력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지속가능한 금융과 사회적 금융, ESG 서비스 제공업, 건설 및 부동산, 인프라 및 운송, 제조, 전기차, 농업 및 임업, 에너지, 폐기물 관리 등 ESG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ESG 활동을 하면서 인식 결여와 역량 부족, 높은 비용 등이 직면한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특히 회원국들이 ESG 활동을 장려하고 있지만, 비용 문제 등 한계에 봉착하기도 한다. 이는 아세안 국가들이 환경문제와 경제적 불평등, 빈곤, 역량강화, 경제개혁 등의 문제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아세안의 인구와 온실가스배출량을 고려할 때 향후 몇십 년간 아세안 지역은 경제성장으로 인해 온실가스배출량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이유로 아세안 국가들은 선진국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환경적·사회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하지만, 여전히 재정이나 지배구조 역량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린워싱 문제도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몇 년간 에너지 기업인 셈브콥, DBS은행, 전자상거래 회사 라자다 등이 연루된 그린워싱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앞으로 ESG 기준이 더욱 적용되면 그린워싱 스캔들이 두드러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분석이다. 그린워싱에 연류된 기업이 경과나 범위, 검증 가능성 등 중요한 정보를 생략함으로써 지속가능성 성과를 과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경제적·사회적으로 다양한 아세안 국가들이 ESG 문제에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아세안 분류체계는 ESG 활동에 맞는 공통언어와 프레임워크를 제공하지만, 각 회원국의 구체적 기준과 실행 시기에 대해선 차이를 두고 있다. 아세안 분류체계를 통한 정책 접근 방식은 아세안 국가의 이익과 지역적 협력 및 정책 간 균형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아세안 정책 분야에서는 일방적 정책 접근 방식에서 점점 더 지역 협력으로 전환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지속가능한 금융뿐 아니라 아세안 전력망 같은 다른 분야에서 실질적 진전이 나타나고 있다. 아세안 전체 전력망을 통해 아세안 회원국은 비용 절감, 배출량 감소, 안정적 전력 공급도 보장받게 된다.

ESG 적용을 위한 아세안 방식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개방형 지배구조 프레임워크다. 개방형 지배구조 접근 방식으로 좀 더 신속하게 ESG 관련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한-아세안센터 관계자는 “아세안 관계 기관은 상호 이익이 되는 영역에서 다른 국제기구와 자주 협력한다”며 “이는 공식 개발원조의 일환인 보조금 형태나 역량강화, 지식 공유를 통해 이뤄지며, 일부 회원국은 한-아세안센터, 일-아세안센터, 중-아세안센터 같은 기관을 통해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세안 지역, ESG 투자처 확산 여부 주목

ESG 활동이 아세안 전역으로 퍼지고 있지만, 적용 속도는 국가와 부문마다 다양하다.

아세안 국가들은 금융·수출 부문은 외국 바이어와 투자자, 현지 규제당국의 압력으로 ESG 적용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내수 중심인 경제 부문은 지속가능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제한적인 이유 때문에 ESG 적용 속도는 느린 편이다.

ESG 분야를 목표로 하는 기업들은 순수 국내시장보다 수출 지향 부문과 금융 부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대다수 회원국이 저소득 인구가 많기 때문에 비용에 민감하다. 이는 ESG를 실행하는 데 고가 정책이 필요한 서비스에 제공할 상업적 인센티브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아세안에서 ESG 물결을 타고자 하는 투자자들은 ESG 기준이 높은 국가에서 먼저 사업을 구축한 후 이러한 ESG 활동이 다른 아세안 회원국으로 확산될 때 후발 주자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후발 주자들은 초기에 ESG를 채택한 회원국의 프레임워크를 그대로 복제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반해 규제 압력으로 인해 한 아세안 국가에서 퇴출되는 기업은 다른 회원국에서도 유사한 규제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

〈한-아세안 ESG 현황: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방안〉 가이드북을 발간한 한-아세안센터는 2009년 한국과 아세안 10개 회원국 정부가 경제·사회·문화 부문에서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설립한 국제기구다. 최근에는 ESG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지역 내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