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年7000억 소상공인 지원…은행권 '상생금융 정례화'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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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고통분담 압박에은행권이 소득이나 신용도가 낮아 대출을 연체할 우려가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이자 부담을 매년 차주당 121만원씩 덜어주기로 했다. 폐업하려는 소상공인이 짊어진 대출은 저금리·장기 분할 상환 방식으로 전환해 매년 103만원씩 이자를 깎아준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민생금융 압박에 마련한 이번 지원 방안을 이행하기 위해 매년 6000억~7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사실상 은행권에 ‘횡재세’가 도입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민생금융 시즌2' 돌입
연체우려 차주에 맞춤 채무조정
年 10만명이 121만원 부담 덜어
폐업 예정자 30년 저리 분할상환
재기 의지 있다면 추가 보증대출
시즌1 추진 땐 '일회성'이라더니
최소 3년간 2조원대 고정비 지출
"사실상 법적 기반 없는 횡재세"
▶본지 11월 28일자 A1, 5면 참조
○선제적 채무조정 지원
조용병 은행연합회장과 국내 20개 은행장은 23일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은행권 소상공인 금융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민생금융 시즌2’로도 불리는 이번 대책은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은행권이 자발적으로 발표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마련됐다. 이날 간담회엔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참석했다.이번 금융 지원 방안은 맞춤형 채무조정, 폐업자 지원, 상생 보증·대출, 컨설팅 등 네 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핵심은 네 가지 프로그램 모두 대출 연체가 발생하지 않아도 금리 감면 등의 지원이 이뤄진다는 점이다.우선 맞춤형 채무조정 프로그램(119 플러스)은 ‘연체 우려 차주’가 진 빚을 만기가 최대 10년인 장기 분할 상환 대출로 전환해 주는 내용이 핵심이다. 분할 상환을 꺼리는 소상공인이라면 만기만 연장할 수 있고, 이자만 납부하는 ‘거치 기간’을 최대 3년 부여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연체 우려 차주는 대표의 연소득이 3500만원 이하인 저소득 개인사업자, 영업적자를 보고 있는 법인 소상공인 등을 의미한다.
보통 채무조정이 이뤄지면 대출 금리가 오르지만 은행들은 이번 119 플러스에 따라 새로 적용하는 금리는 기존 대출 금리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매년 소상공인 10만 명이 평균적으로 121만원의 이자 절감 혜택을 볼 것으로 금융당국은 추산했다.
○“밸류업 계획 차질 불가피”
은행권은 폐업 예정 소상공인이 정상적으로 상환 중인 개인사업자대출(신용·보증·담보대출)도 만기가 최대 30년인 저금리·분할 상환 대출로 대환해 주기로 했다. 폐업 예정 차주의 금리는 1억원 이하 대출 잔액에 연 3%대로 낮게 적용한다. 이에 따라 연간 폐업 차주 10만 명이 103만원의 이자 부담을 덜어낼 것으로 전망된다.상생 보증·대출은 연체가 없고 재기 의지가 있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추가 대출을 공급하는 지원 프로그램이다. 이를 위해 은행권은 3년간 해마다 서민금융진흥원과 신용보증재단중앙회에 각각 1000억원(총 6000억원)을 출연한다. 20개 은행은 또 전국에 깔린 영업 점포를 활용해 소상공인에게 경영 자문, 세무·회계 상담, 상권분석 등 맞춤형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네 가지 프로그램을 위해 은행들은 연간 6000억~7000억원을 부담할 전망이다. 맞춤형 채무조정에 연간 1210억원, 폐업자 지원에 연간 3150억원, 상생 보증·대출에 연간 2000억원이 투입된다는 게 은행연합회와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이는 프로그램별 신청률이 20~30%에 그칠 것으로 가정한 결과다. 예상보다 신청률이 높으면 은행권 부담은 커진다.
문제는 정부 압박에 따른 소상공인 지원 비용이 매년 고정적으로 추가되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작년 말 2조원 규모 ‘민생금융 시즌1’을 추진할 당시만 해도 소상공인 지원이 ‘일회성’이라고 강조했다. 일회성 지원인 만큼 금융회사의 주주가치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하지만 최소 3년간 매년 고정비용 6000억~7000억원이 발생하는 소상공인 지원을 강제하면서 정부에 의한 민간은행의 주주가치 훼손이 불가피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임의 횡재세’가 사실상 시행됐다”며 “‘밸류업’ 계획에 차질이 생긴 점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의진/최한종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