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득의 ASEAN 돋보기] 동상이몽 속 격화되는 남중국해 분쟁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올해 10월 라오스에서 열린 제25차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국과 아세안은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989년 한-아세안 관계 수립 이후 최고의 파트너십 관계 설정이며, 다양한 의제들이 공동성명에 포함됐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중국의 영유권 주장으로 동남아 국가들과 분쟁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에 대한 내용이었다. 공동성명에서 아세안은 남중국해에서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고 국제법에 따른 '항행의 자유'에 대해 지속적인 지지를 천명하며 중국에 공동 대응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아세안에 별 관심 없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다시 당선되고, 대만을 포함한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 훈련과 순찰 활동이 강화되면서 남중국해 분쟁이 점점 격화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가장 첨예하게 대립해 온 나라는 필리핀과 베트남이다. 필리핀의 전임 두테르테 대통령은 영토를 양보하진 않겠지만 중국과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친중적인 성향을 보였다. 하지만 2022년 친미 성향의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취임하고 올해 6월, 중국 해경에 의한 필리핀 해경 손가락 절단 사건으로 전국민적인 반중 의식이 높아지며 상황이 바뀌었다. 당시에는 비록 긴급 차관급 회담으로 평화로운 상황 관리를 합의하긴 했지만 지난 12월 4일 다시 양국 해경은 물대포를 쏘며 충돌하였다. 이틀 뒤였던 12월 6일, 필리핀이 중국 보란 듯이 미국, 일본과 연합 해상 훈련에 참여하고 12일에는 미 공군과 연합 훈련을 실시하자, 중국은 지난 20일 남중국해 진입한 필리핀 항공기를 쫓아내며 다시 긴장이 높아졌다.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은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해군을 배치하지 않겠지만 영해를 지키고 어민들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면서 당분간 양국 간에 남중국해는 중요한 분쟁 이슈가 될 전망이다.
남중국해 상공에서 연합 훈련 중인 미국-필리핀 공군 (출처: Official United States Air Force Website)
남중국해에 있어 또 다른 이해 당사국인 베트남은 필리핀의 대응과 다소 다르다. 베트남은 필리핀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면서 남중국해에서 공동 순찰 및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공동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지난 10월 23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BRICS 확대 정상회의에서 베트남 Pham Minh Chinh 총리는 중국 시진핑 주석에게, 베트남은 항상 중국과의 관계 발전을 외교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다며 중국을 띄워주고 여러 경제 교류 활성화에 대한 협력에 합의했다. 실제로 중국과 베트남의 경제 협력 교류는 어느 때보다 순항 중이다. 올해 베트남을 방문한 중국인들은 전년 동기 대비 3배나 증가했고 중국은 베트남의 670억 달러 규모 고속철도 사업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두 나라는 해묵은 남중국해 문제로 경제 협력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실제로 중국과 베트남 해경은 올해에도 영유권 분쟁지역인 남중국해 베이부만(北部灣, 베트남명 통킹만)을 2차례 공동 순찰했고, 중국 해경 대표단이 지난 16~21일 하노이를 방문해 실무회담을 갖고 해상 충돌을 적절하게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남중국해의 또 다른 직접 당사국인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는 목소리는 내지만, 실제 대응은 다소 미온적이다. 2025년 아세안 의장국을 맡은 말레이시아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는 회원국 간 상호 협력과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원칙론적 입장을 견지해 왔고 중국과도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올 6월 리창 중국 총리가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여 남중국해 관리에 대해 양자 대화를 요청했고, 지난 9월 베이징을 방문한 말레이시아 이브라힘 국왕은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과 협력할 준비가 되었다고 화답했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을 뒤에 두고 격하게 대립하는 필리핀보다 온건한 말레이시아, 베트남과 경제 협력을 앞세우며 남중국해 문제는 분리 대응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역내 최대 영토와 인구를 보유한 인도네시아의 대응 역시도 남중국해 분쟁과 경제 협력을 분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인도네시아는 영해 북단에 있는 North Natuna Sea가 중국이 주장하는 영해에 다소 겹치지만, 충분히 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지난 정부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도 초기에, 나포된 중국어선들을 폭파하며 강력한 대응 의지를 보였지만 이후 조용히 상황을 관리했다. 그리고 새로 취임한 프라보워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지난 11월 9일 첫 해외 순방지로 중국 베이징을 찾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방문하였다. 회담 이후 두 정상은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이 중복되는 지역의 공동 개발에 대한 이해에 도달했다"며 공동 개발을 발표했는데, 이는 2016년 국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한 중국의 ‘남해 9단선(南海九段線)’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쳤다. 반면, 중국에 이어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남중국해에 있어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미국과 중국을 사이에 두고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을 선택한 실리 외교라지만 자칫 위험해 보이는 줄타기 외교다.이렇듯 올 한해 내내 남중국해를 두고 중국과 아세안의 수 싸움이 치열했지만 2025년 새해에 남중국해 문제는 1월 20일 취임하는 ‘트럼프’라는 가장 큰 변수가 있다. 트럼프 1기 시절,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내내 2017년 아세안 정상회의에만 참석했으며 주 아세안 미국 대표부 대사도 임명하지 않았다. 별 재미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고, 한국, 일본, 유럽 동맹국마저 안보 무임승차라며 비용을 따지는 트럼프에게 여러 나라가 얽힌 남중국해 분쟁은 돈만 많이 드는 골치 아픈 문제다. 트럼프 스타일로 본다면, 미국이 주장해 온 ‘항행의 자유’를 보장받으면 시진핑 주석과 빅딜도 가능하며 이는 남중국해 관련된 아세안 국가의 분열 및 중국의 역내 통제권 강화를 가져올 수 있다.

중국의 눈은 항상 대만을 향해 있는 듯하지만, 손가락은 막대한 자원과 해상 운송로가 지나가는 남중국해에 대한 주판을 열심히 굴리고 있다. 대만 해협 위기에 비해 남중국해는 뉴스도 뜸하고 우리와는 별 상관없다 생각될 수 있지만, 대한민국 수출입 물동량의 40%, 원유 천연가스 수입의 90% 가 남중국해를 지나온다. 다음 달 새로운 미국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남중국해 분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우리도 세심히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성득 인도네시아 UNAS경영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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