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억 재산 자식 물려주려다가…강남 부자, '한국 탈출' 러시 [고정삼의 절세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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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율 상속·증여세에 자산가들 韓이탈
'미국·싱가포르·UAE' 세부담 낮아 선호
세금 회피 목적으로 이민 계획 세웠다면
자산 모두 처분하고 '비거주자' 전환돼야
"비거주자 요건 충족 어렵다면 사전증여"
<고정삼의 절세GPT>에서는 독자들이 궁금해할 각종 세금 관련 이슈를 세법에 근거해 설명해줍니다. 4회는 우리은행 자산관리센터에서 세무 컨설팅과 기업 대상 절세 세미나를 진행하는 호지영 과장(세무사)과 함께 과도한 상속·증여세 부담에 해외 이민을 고민 중인 자산가들의 사례와 절세 방법을 소개합니다.>
60대 자산가 A씨는 최근 국내 자산을 모두 처분하고 자녀들이 거주하는 미국으로의 이민을 계획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증여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A씨는 자산 규모 200억원대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공장과 강남 아파트 등 50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 자산을 자녀에게 물려줄 경우 상속세만 단순 계산(과표 구간 30억원 초과분 50% 적용 기준)으로 115억원을 내야 한다. 최근 '비상계엄 사태'로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하고, 정치 불안에 투자 계획마저 차질이 빚어지자, A씨는 미련 없이 해외로 떠날 결심을 했다.
A씨의 사례와 같이 국내 자산가들이 지나치게 높은 상속·증여세 탓에 '탈한국'에 나서고 있다. 보유 자산을 전부 처분하고 상속·증여세가 낮은 해외로의 이민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상속·증여세 부담을 낮춰줄 세법 개정안이 부결됐고, 정치 불안에 투자 불확실성마저 커지자 자산가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어 우려가 커진다.
초고율 상속·증여세 원인…미국·UAE 이민 선호
호지영 과장은 25일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자산가들이 과도한 상속·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국내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해외로 떠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며 "최근 비상계엄에 더해 상속·증여세 완화를 골자로 한 세법 개정안이 부결되는 등 정치·사회적으로 불확실성이 커지자 해외 이민에 대한 자산가들의 상담 요청이 늘었다"고 말했다.자산가들의 해외 이탈은 초고율의 상속·증여세 탓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1999년 45%에서 50%로 상향된 후 25년째 이 같은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최대주주 할증이 적용되면 세율은 최고 60%로 뛴다.
상속·증여세 부담을 낮추기 위한 세제 개편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최근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이 또다시 부결돼 원점으로 돌아갔다. 우리나라는 부부합산 15억원까지는 상속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반면 미국의 경우 상속·증여 통합 한도가 한 사람당 약 180억원으로, 부부 합산 시 360억원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공제 차이가 무려 24배에 달하는 셈이다. 이에 자산가들은 국내 자산을 모두 처분하고 상속·증여세가 낮은 해외로 이민을 떠나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호 과장은 "과도한 상속·증여세 부담, 치열한 입시 경쟁, 사회·정치적 불안과 이 부분이 투자에 미치는 불확실성 등의 이유로 국내 자산을 해외로 이전하려는 자산가들의 수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산가들이 선호하는 지역으로는 미국·싱가포르·아랍에미리트(UAE) 등이 꼽힌다. 이들 국가는 상속·증여세가 낮거나 없고, 교육·생활 환경이 우수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호 과장은 "싱가포르는 상속·증여세가 없고, 소득세와 법인세도 우리나라보다 낮아 세 부담이 적다는 게 자산가들이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라며 "UAE는 상속·증여세뿐 아니라 소득세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아부다비와 두바이 등 높은 생활 수준의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곳이 각광받고 있다"며 "UAE 정부에서도 해외 이주민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점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법상 '비거주자' 핵심…"자산 모두 처분해야"
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해외 이민을 계획하는 자산가들은 국내 자산을 모두 처분할 필요가 있다. 세법상 재산을 물려주려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비거주자'여야 과세를 피할 수 있어서다. 이때 거주자는 국내 재산 보유 여부로 판단되기 때문에 국내 자산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내 주택을 보유한 상태에서 해외로 이주할 경우 다시 국내로 돌아올 수 있는 것으로 간주돼 거주자로 판단되고 상속·증여세 부과 대상이 된다.호 과장은 "막대한 세금 때문에 해외 이주를 계획해도 평생 살던 나라를 떠난다는 것은 자산가들에게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그래서 자산가들은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해외로 이전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집 한 채를 남겨둘 수 있는지 등 국내로 돌아왔을 때의 세금 관련 내용을 가장 많이 궁금해한다"고 말했다.이어 "비거주자는 체크리스트상 정해진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판정되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사실관계가 전체적으로 고려된다"며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의 국내 거주 여부, 국내 자산 유무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재산을 증여할 당시 완전하게 비거주자로 판정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각 상황의 사실관계에 따라 다르겠지만, 국내에 부동산 등 재산이 남아 있거나, 해외 이주 후 짧은 기간 머물고 다시 국내로 돌아오면 거주자로 볼 여지가 있어 세무 리스크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거주자 요건 충족 어렵다면 사전 증여 필요"
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해외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면 상속 시점까지 비거주자 요건의 충족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호 과장은 "재산을 증여하는 시점에서 증여자와 수증자가 모두 세법상 비거주자이고, 증여하는 재산도 국외 소재 재산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증여세를 부과하는 게 불가하다"며 "해외로 이전해 비거주자 신분으로 국외에 있는 재산을 증여했다면, 당장의 세금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해외로 이주해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과세할 것이 없다"며 "다만 당장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해 국외로 임시 이주해 거주하다가 다시 국내에 남겨둔 주택으로 돌아온다면 증여세가 과세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사실상 비거주자로 전환되는 게 어려울 경우 해외에 거주하는 자녀에게 사전 증여하는 절세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호 과장은 "이때 증여를 받는 사람이 비거주자인 경우 증여자가 증여세를 대신 낼 수 있어 납부액만큼 절세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고정삼 한경닷컴 기자 js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