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직장 내 괴롭힘' 간부 감싼 농정원…피해자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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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언·폭행에도 가장 낮은 징계 '견책' 처분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공공기관인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농정원)에서 상급자 1명이 부하 직원 3명을 대상으로 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사측이 가장 낮은 수준의 징계인 '견책' 처분을 내려 논란이 커지고 있다. 피해자가 여러 명임에도 가해자에 대한 징계가 지나치게 가볍다는 게 피해자들의 불만이다. 사측에 요구한 가해자와의 분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인사위원회 1/2 원장이 임명
원장도 직장내괴롭힘으로 신고돼 있어
피해자들 조산 위험·불안 증상 호소
28일 농정원 노동조합에 따르면 농정원 B차장과 C대리는 지난 7월 A실장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 이후 D과장에 대한 폭행 사건이 추가로 발생해 D과장도 지난 11월 A실장을 신고했고, 현재 인사위원회를 앞두고 있다. 피해자들은 A실장이 평소 직책이나 존칭 대신 "야", "너" 라고 부르며 폭언을 일삼는 등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고 주장했다.지난 5월 8일 A실장은 당시 임산부였던 B차장이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기간이었음에도 퇴근 시간 이후에 본부장 보고를 함께 들어가게 하고 "B차장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본인이 다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B차장이 지나치다고 항변하자 A실장은 B차장을 단둘이 있는 회의실로 불러 약 1시간 동안 고성과 폭언을 퍼부었다. 이후 B차장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복통을 느껴 병원을 방문하고 이후 조산 위험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D과장 역시 이 실장으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렸다. 이 실장은 D과장에게 과도한 업무를 부여해 주 52시간이 넘도록 업무를 하게 하면서도 "일을 효율적으로 안 한다", "업무 스피드가 딸린다"는 등의 모욕적 언사를 했다. D과장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업무 관련자들에게 "쟤(D과장) 때문에 저희 다 야근해요"라고 말하는 등 공개적으로 비하하고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D과장이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언으로 눈물을 흘리자 "쇼 하지 말라"고 화를 냈고 11월 1일에는 A실장이 D과장의 얼굴에 볼펜을 던지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결국 D과장은 세종남부경찰서에 특수폭행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현재 D과장은 수면 장애와 불안 증상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C대리에겐 휴가 중에 "필요한 물건이 있으니 가져와 달라"는 등 수시로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사적인 용무를 지시했다. 또 C대리가 복통으로 점심을 거른 상황에서 회식 자리 참석을 고압적으로 강요했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인사팀으로부터 '피해자가 여러 명일 경우 가중 처벌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고, 농정원 규정에도 '징계 혐의자에게 서로 관련이 없는 2개 이상의 비위가 경합한 경우 가중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음에도 가해자가 가장 낮은 수준의 징계를 받은 점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C과장은 "사내 관계자들은 이 실장의 괴롭힘을 단순 실수로 치부하고, 경찰 수사에 필요한 CCTV 제공에도 미온적이었다"며 "A실장이 볼펜을 던져 문제를 제기했지만 다시 볼펜이 날아온 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온몸이 떨리고 공포스럽다"고 토로했다.지난 3월엔 농정원에서 발생한 또 다른 직장내 괴롭힘 사건에선 사측이 조사위원회의 징계 결과를 뒤집고 무혐의 처분을 내려 고용노동부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는 일도 있었다. 농정원 노동조합 관계자는 "농정원은 올해에만 4건의 직장내 괴롭힘 사건이 고용노동부에 신고됐다"며 "직장내 괴롭힘에 대해 회사 경영진의 안일한 인식으로 직원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전했다.
직장 내 괴롭힘 이후 사측의 '솜방망이 처벌'과 부실한 피해자 보호는 농정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6월 설문 조사한 결과 "객관적 조사와 피해자 보호 등 회사의 의무가 제대로 이행됐다"고 답한 비율은 36.1%에 불과했다.
이같은 문제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자체의 허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법은 괴롭힘 발생 시 회사 자체 조사를 통해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농정원의 경우에는 징계에 관한 사항의 심의·의결을 위한 인사위원회에서 위원장을 제외한 위원의 2분의 1 이상을 원장이 위촉하도록 규정돼 있다. 문제는 이종순 농정원 원장 역시 직장 내 괴롭힘 혐의로 신고된 상태라는 점이다. 농정원 인사팀 관계자는 "원장님에 대한 조사와 징계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인사위원회 업무에서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어 "A실장에 대한 신고 건에 대해선 변호사, 노무사 등 법률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의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사측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의 한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홍 노무법인 들꽃 노무사는 "현행법 안에서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지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사측에 기울어진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선 조사위원회 구성 요건에 대한 명확한 법적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