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제 2의 현대차·기아 꿈꾸는 혼다·닛산
입력
수정
지면A22
노조 무파업에 日정부도 막후 지원“실패 사례가 끊이지 않는 자동차산업 재편 역사에서 현대자동차의 기아 인수는 몇 안 되는 성공 사례 중 하나다.”
경쟁력 높이려면 현대차 분투해야
신정은 산업부 기자
세계 자동차 랭킹 7위 혼다와 8위 닛산이 합병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세계 자동차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닛산이 최대주주로 있는 일본 4위 미쓰비시자동차도 합병 대상인 만큼 성사되면 도요타를 뺀 일본 2~4위가 한 식구가 되는 셈이다.100년이 넘는 자동차산업 역사에서 글로벌 기업 간 ‘합종연횡’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세기의 결혼’으로 불린 미국 크라이슬러와 독일 다임러의 합병이 그랬다. 두 회사는 기업 문화 차이로 별다른 시너지를 내지 못했고, 결국 2007년 헤어졌다. 닛산도 1999년부터 제휴 관계를 맺은 르노와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4일 혼다와 닛산 간 합병 역시 큰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1999년 현대차의 기아 인수 사례를 배워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매체는 “현대차는 아시아 외환위기 때 기아를 인수한 뒤 각자 브랜드를 유지하며 판매에선 경쟁하되 연구개발에선 힘을 모으는 식으로 실력을 키웠다”고 했다.
하지만 닛케이의 극찬에도 정작 현대차그룹은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비야디(BYD) 등 중국 전기차의 공습을 막아내기도 힘겨운 상황에서 제 2의 현대차·기아 꿈꾸는 ‘혼다+닛산+미쓰비시’란 새로운 강적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3사가 하나가 되면 판매대수(지난해 813만 대) 측면에서 현대차·기아(730만 대)를 넘어 글로벌 3위로 올라선다. ‘규모의 경제’가 생기면 생산 효율이 높아질 뿐 아니라 각종 부품 구입비도 줄일 수 있게 된다.제품 포트폴리오도 좋아진다. 하이브리드 강자인 혼다와 전기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닛산의 만남이어서다. 현대차와 기아가 그랬듯이 두 회사도 합병 이후 판매에선 경쟁하되 연구개발은 함께하는 식으로 운영할 가능성이 크다. 안 그래도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분야의 실력자들이 두툼해진 주머니로 미래차 개발에 나서면 현대차그룹엔 상당한 위협이 될 터다. 일본 기업엔 사실상 ‘파업 리스크’가 없다는 점, 일본 정부가 막후에서 이번 합병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도 현대차그룹엔 부담이다. 합병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궁합도 잘 맞으면 ‘혼다+닛산+미쓰비시’가 현대차그룹이 세계 곳곳에 쌓아놓은 둑을 터뜨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연 임직원들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진정한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중국과 일본의 협공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그룹이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도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