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前 한명 더…美 민주 '연방법관 알박기' 공세

민주당서 지명된 연방법관 3명
트럼프 대선 승리 후 은퇴 번복
공화당 윤리 문제 제기하며 압박

바이든, 트럼프가 첫 수혜자인
'연방판사 확충 법안' 거부권 행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을 앞둔 민주당과 공화당이 연방판사 지명권을 비롯해 사법부 주도권을 두고 다투고 있다. 연방법원과 주법원으로 구성된 이원화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미국 사법부에서 연방법원은 증권·특허법, 국제무역 분쟁, 헌법·연방법 소송과 연방정부가 당사자인 사건 등을 담당하기 때문에 영향력이 크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22년부터 보수 성향 대법관이 다수를 차지한 뒤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판례를 무효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민주당 막판 협상 성공

2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상원이 지난주 연방판사 두 명을 인준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임 기간 임명한 판사는 235명으로 트럼프 당선인이 첫 임기 때 임명한 숫자보다 한 명 많아졌다. 연말 판사들이 대거 임명된 것은 민주당이 바이든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를 최대한 많이 임명하려고 속도를 낸 결과다. 현재 민주당은 연방판사 인준 권한을 보유한 상원에서 다수당이다. 내년 1월부터는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기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들은 인준을 받기 어렵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무슬림인 아딜 망기 판사를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지명했다가 철회했다. 공화당은 망기 판사가 수감자를 위한 형사 사법 시민운동, 팔레스타인 단체 등을 일방적으로 옹호한다고 반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명을 철회하고 자리를 공화당에 내준 대신 다른 판사들의 임명을 보장받았다.

민주당 행정부에서 지명된 연방항소법원 판사 3명이 당초 은퇴 의사를 밝힌 후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달 대선에서 승리하자 이를 번복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당초 공화당은 판사들이 은퇴하면 내년 공화당 성향 판사를 후임으로 지명하는 대신 민주당이 지명한 판사들을 인준해주기로 했다. 연방판사는 임기가 없는 종신직이다. 건강 등 일신상 문제로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탄핵을 당하지 않는 한 해임되지 않는다. 공화당은 입장을 번복한 판사를 비판하며 은퇴 계획을 밝힌 다른 판사에게 이처럼 행동하면 윤리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경고했다.

‘판사 증원법’ 거부권 행사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3일엔 미국 전역에 연방판사직을 신설하는 이른바 ‘판사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여름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으로 판사 부족에 따른 재판 지연 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35년까지 연방판사직 66개를 순차적으로 신설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법이 발효되면 트럼프 당선인이 66명 중 25명을 지명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자 거부권을 행사했다.이 같은 다툼은 법원의 정치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연방 법관은 전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결정권을 갖는 일이 많다. 트럼프 당선인은 행정부 1기 시절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과 닐 고서치 대법관 등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거나 보수 성향이 짙은 대법관을 임명해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브렛 캐버노 대법관의 경우 대학 시절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 등이 제기됐음에도 임명을 강행했다.

WP는 지난달 갤럽 여론조사에서 연방 사법 체계에 대한 미국인의 신뢰도가 지난 4년 만에 59%에서 35%로 급락한 사실을 지적하며 “이는 미얀마, 베네수엘라, 시리아 등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최근 사법부의 정치화가 심해진 탓”이라고 꼬집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